우리 집에는 기념일을 챙기는 전통이 있었다. 발렌타인데이, 로즈데이, 화이트데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빼빼로데이,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여기에 다섯 식구의 생일까지 더하면 일 년이 거의 이벤트의 향연이었다. 어쩌다 이런 사소한 기념일들을 챙기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뉴스에서 상업적인 마케팅이라고 떠들어도 다 같이 모여 시시덕거리는 순간들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썩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아빠도 그런 분위기를 마다하지는 않았다. 종종 엄마에게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간식을 건넸고, 가끔은 백화점 상품권을 내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괜히 우쭐해졌다. 뭘 이런 걸 주냐며 능숙하게 받아 드는 엄마의 얼굴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화목한 가정의 표본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곤 했다. 물론 그 시기가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많은 기념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었을까. 시간이 지나도 어떤 기억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기억은 냄새나 웃음소리 같은 분위기로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그 작은 선물들을 사이에 두고 가족이라 묶이는 서로의 이름을 조금 더 실감했다는 사실이다. 작고 달콤한 것을 빌려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의 취지에 맞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만들어 둔 작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