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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Dec 03. 2022

내가 아는 카라멜 마끼아또

크리스마스가 오나 봐.



머리가 하얗게 흰 할아버지 옆에는 빨간 포장을 두른 선물 상자가 있었다. 그 장면이 예뻐 그냥 웃음이 났다. 크리스마스와 선물 할아버지는 너무 멋진 조합이다. 보는 것 만으로 따듯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초록색 머플러를 두른 할아버지는 커피를 마시며 비행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위치와 시산으로 볼 때 나와 같은 비행기인 걸까.


아직 비행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더 남았다. 핸드폰을 충전하며 리가에 어학원을 찾아본다. 얼마 전에 부탁받은 일인데, 그동안 일이 바빠 알아보지 못했었다. 따듯한 커피를 한 모금. 달달하다.


라트비아 살기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영 마음에 드는 커피를 찾지 못하던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에 정착했다.


호주에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랫 화이트만 마셨다. 멜버른의 커피는 맛있다. 우유만 넣어도 고소하고 쓰지 않게 커피의 풍미가 살아난다.


처음에는 여기서도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그러다 거품 없는 카푸치노를 마셨고, 그러다 마끼아또에 정착했다.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는 실패할 일이 없었다.


호주에서는 마끼아또를 마시지 않았다. 호주에서 마끼아또는 에스프레소에 거품을 올린 커피였다.  카라멜 마끼아또라는 메뉴는 없었다.


한 번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손님에게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받았다. 너무 바빴던 탓에 어디 물어볼 수도 없었던 그 한국 친구는 아메리카노에 카라멜 시럽을 넣어 주었다고 했다. 손님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처음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셨던 것 초등학교 고학년 때일 것이다. 학교 앞에 '커피마마'라는 카페가 생겼다.

처음에는 아이스 초콜릿을 마셨다. 그러다 그때 당시 무엇 때문이었는지 카라멜 마끼아또 열풍이 불었고, 나도 친구들과 함께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셨던 것 같다.


그때 마셨던 카라멜 마끼아또는 카라멜 시럽을 넣은 아이스 라떼였다. 위에는 휘핑크림과 카라멜 시럽을 듬뿍 뿌린 그런 음료였다.


아직 쓴 커피를 마시지 못하던 어린아이도 달달함에 이끌려 마실 만큼 달았다.


그러다 커서는 너무 달아 마시지 않게 됐다. 마끼아또 대신 카페모카나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호주에 가서 처음 제대로 커피를 알고는 라떼나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마셨다. 스타벅스에서 실패하지 않는 메뉴였다.


하지만 리가에는 스타벅스가 없었고. 좀처럼 마음에 드는 커피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쇼핑몰 안 카페에서 카라멜 마끼아또라는 메뉴를 보고 주문했던 것이 성공적이었다.


이곳의 카라멜 마끼아또는 그리 달지 않았다. 따듯한 라테에 카라멜 시럽을 조금 넣은 맛이다. 보통 라테와 같이 커피잔에 서빙되어 나왔다. 하얀 거품 위에는 카라멜 시럽으로 무늬를 그려주었는데, 한국에서처럼 엄청 뿌린다기보다 정말 무늬만 만들어 주는 정도. 이 정도 당도라면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다 보면 같은 이름이 꼭 같은 걸 뜻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도 달지 않은 마끼아또부터 한 잔을 다 마실 수 없을 만큼 달달한 마끼아또까지. 같은 이름의 다른 커피처럼 서로 공유하는 정의가 다르다.


내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의 상식도 나의 상식도 틀린 건 없다.


리가는 벌써 몇 주 전부터 눈이 내렸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졌다. 나는 이제 곧 서른이 된다.

이십 대에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삼십 대가 되면 더는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는 걸까. 더는 아직 어리다는 말을 듣지 못할 나이가 되어간다.


크리스마스가 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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