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혹시 스터디 카페 다닐 일 있어? 나 취직해서 다음 주부터 일하는데 정액권이 남아서!’
오랜만에 연락해 온 친구가 희소식을 전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다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온 몇 안 되는 친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하던 이 친구는 예상을 뒤엎고 이과에 진학했고, 수학을 좋아하던 나는 문과에 진학했다. 이과에 진학했으면 나의 삶은 많이 달라졌을까? 연구하는 게 재미있다는 친구를 보며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종일 연구실에서 삼각플라스크를 잡고 있을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 온몸에 피로가 밀려오는 착각이 든다. 보안경과 마스크는 또 어떠한가. 빳빳한 가운은 또 얼마나 갑갑할까.
연구가 재미있다며 대학원까지 진학한 친구는 대학원에서 네다섯 시간을 자가며 연구에 전념했다고 한다. 교수님이 통합과정을 제시했을 때, 친구는 거절했다. 더 연구소에 있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간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몇 개월을 쉬기로 했다. 그리고 곧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전국에 확산된 것이다. 많은 회사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그만큼 매년 쏟아져나오던 채용공고도 줄어들었다. 연구소도 그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보통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연구소의 인력은 그만큼 높은 인건비가 책정된다.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일수록, 갈 수 있는 곳도 한정적이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일 년의 긴 휴식기가 이어졌다.
요즈음은 일을 쉬는 기간을 ‘취업 준비 기간’이라고 부르고, ‘백수’라 하지 않고 ‘취업준비생’이라고 한다. 특히 ‘백수’라는 말을 많이 꺼린다. 언젠가 호주에서 돌아와 놀면서 ‘나 백수야!’라고 말하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취업준비생?’하고 정정해주었다. 그들 나름의 배려였을까? 나로서는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하나같이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노는 그 행위 자체를 나타내는 ‘백수’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이 이상했다. 백수(白て)는 하얀 손, 빈손이라는 의미로 직업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에 저조한 취업률에 고생하는 청년들과 그래서 부정적인 의미로 자리 잡은 ‘백수’라는 어감이 퍽 외롭고 쓸쓸해보였다.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답변을 보내고 당장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무얼 줄까 고민하며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살 생각에 들떴다. 구두를 주자니, 취향을 탈 것 같고, 서류 가방을 선물하자니 연구직은 서류 가방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업에 종사하는 친구라면 고르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오랜만에 실용성 없고 예쁘기만 한, 내돈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것 같은 목걸이를 선물로 주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원래 선물은 그런 것 이기도 하니까. 이럴 때면 돈을 버는 행위, 혹은 넉넉한 재무 상태에 감사함을 느낀다. 기쁜 마음을 전할 선물을 부담 없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청년들이,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이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은 아직 자신의 금전적 가치를 확인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것 같다. 언제까지고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는 없다는 불안감, 좁아지는 문턱. 정확히는 스스로 그어놓은 하한선을 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오는 불안감.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에 자신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비슷하다. 일 년에 이만큼은 벌어야 한다던가, 무조건 이 직종에서 일해야 한다던가, 처음에는 대기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둥 인생의 길잡이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릴 때부터 이 길잡이를 따라온 사람들은 그걸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그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랐을 것이다. 주변에 많은 기대를 받고 자란 사람일수록 하한선을 낮추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남들의 시선은 어느새 나의 시선이 되어 있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이루기 힘든 목표로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부담을 느낀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억만장자의 투자가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사람은 없다. 생계와 연관되어 생기는 불안감이라면 눈을 낮춰 생계를 우선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대게는 그런 선택은 가장 나중으로 미루고, 자신를 옥죄며 괴로워한다. 스스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아는 동생이 최근에 울적했다며 내게 물었다.
“친구가 잘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나는 대답했다. 기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다행이고 그렇죠? 동생은 그런 내가 부럽다고 했다. 친구가 잘되면 기뻐야 하는데 자꾸 스스로가 비교되면서 자신이 못나 보이고 뒤처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사실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학창 시절 한 번쯤은 비교를 ‘당해 본’ 경험이 있다.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옆에 친구보다 등수가 높을 수 있지만, 그뿐이다. 그냥 등수가 높다, 시험 점수를 조금 더 높게 받았다. 그런 사실이 있을 뿐이다. 다만 그 비교의 결과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게 될 거라는 무서운 예언 같은 것을 우리는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 덕에 우리는 사람을 비교하는 자체를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고, 비교하는 행위는 누군가를 폄하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의 기준을 우리의 기준으로, 그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대를 또한 우리의 기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내가 품은 기대일까?
도클랜드(Docklands)의 초콜릿 카페에서 일하는 스페인에서 온 매니저가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서른 시간 정도만 일하고 싶어 했는데, 그보다 적은 것도 많은 것도 싫어했다. 머리를 길게 길러 항상 반으로 묶고 있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배가 나와 꼭 산타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매니저라고는 하지만 일주일에 서른 시간을 일하니, 파트타임(Part-time job), 즉, 아르바이트의 개념이었다. 나는 그에게 왜 꼭 서른 시간만 일하고 싶은지, 왜 다른 일을 찾지 않는지 물었다. 그는 더 일하면 힘들고, 덜하면 돈을 아껴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만 하다 잘리면 어떡하냐고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럼 다른 데서 하지 뭐.’
그는 라틴어와 스페인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성격이 좋아 모든 사람에게 농담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와 농담따먹기를 하러 오는 단골도 더러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사는 그는 지금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여자친구가 조금 더 바빠져서 혼자 비디오 게임을 할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건 아니었다. 집안이 특별히 유복한 것도, 다른 원조를 받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흥청망청 살아가는 ‘욜로’같은 개념과는 달라 보였다. 그에게 있어, 이런 생활은 ‘좋은 삶’이었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그는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열심히 공부해 유명한 기업에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런 사람도 있지 뭐. 하지만 스트레스는 좋지 않아.”
호주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졸업해 원하던 직종에서 일하기 전까지, 나 또한 불안을 많이 안고 있었다. 정확히는 불안이라기보다 ‘갑갑함’이었다. 일하고 있어 생계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회계사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줄곧 삶에 무언가 불만족스러웠다. 마음으로 딱 정한 건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정해진 대략적인 목표가 있었다. 연봉은 $45,000 이상, 회계 관련 직종에서 근무하는 것. 나는 호주에서 합법적인 외국인노동자였고, 딱히 이렇다 할 비교 대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직했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연봉을 받고 원하는 직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물론 취직을 할 때는 기뻤고 그 후로 ‘저 정도는 해보고 싶은데’ 같은 마음은 사라졌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구두를 신고 출근해 저녁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고, 때로 직장에서 사소한 다툼이 일기도 했으며, 문제가 생겨 스트레스로 골머리를 썩이기도 했다. 특별히 보람이 더 많이 느껴진다거나, 특별히 책임감이 막중해진다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3개월쯤 지나니 익숙해졌다.
그 후로 더욱 직업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어떤 직업도 대단하고 위대했고, 어떤 직업도 보잘것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이 이룬 성과에 크게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대단한 만큼 내 일도 대단했고, 그 사람이 사는 삶이 내가 사는 삶에 비해 유달리 행복하거나, 내가 유달리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행복이란 뭘까 고민하다 자주 찾아가는 GP(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에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행복은 사소한 곳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내가 오늘 하기로 한 일을 다 마쳤다던가, 새로운 취미를 발견한다던가, 빨래가 잘 말랐다든가 하는 그런 작은 성취에서 말이에요. 저도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200만 원을 벌다 400만 원을 벌면 행복해요. 차이를 크게 느끼죠. 하지만 400만 원을 벌다 600만 원 800만 원을 번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어요. 재물에 증가 대비 늘어나는 행복지수는 로그함수의 모양과 비슷하죠.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프랑스에 에펠탑을 봤을 때의 성취감은 일등석을 타고 간다고 더해지거나 삼등석을 타고 간다고 줄어들지 않아요. ‘에펠탑을 봤다’는 것의 성취가 크기 때문에 거기까지 얼마나 편하게 왔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거죠. 결국, 사람은 ‘성취’에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건데, 감정은 ‘기복’이 있어서 크게 올라가면 반드시 크게 내려오거든요. 그래서 엄청 힘들게 무언가를 성취하면 그만큼 허탈함이 밀려오는 거에요. 이유 없이 우울해지죠. 그래서 사람은 작은 성취로부터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말이에요.”
나는 그 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비교할 수도 없죠. 그들이 하는 일은 내가 못 하는 일이고, 대단하지만, 그런 그들의 삶이 나는 퍽 부럽지는 않아요. 나는 그들처럼 살 수도 없고, 지금 내 삶이 더 좋은걸요.’
많은 사람이 사회와 환경이, 혹은 스스로 만든 기대에 얽혀 괴로워한다. 하지만 너와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 나의 행복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인 걸까? 누군가 말하는 좋은 삶이, 멋진 삶이, 누군가 가지고 싶은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맞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그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는 다니지 않는 대학교의 단톡방을 나왔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아주 홀가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