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된다는 것
‘약자’가 된다는 건 뭘까?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약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회적 약자, 신체적 약자,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 관계의 약자같은, 속히 말하는 ‘갑과 을’과는 조금 다른, 조금 더 연약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다.
우리는 삶에서 꼭 한번은 약자로서의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릴 적,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의 대상이 되어 국가와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19세가 되면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팽개쳐진다. 갑자기 쏟아지는 선택권과 자유 속에 갈 곳을 잃은 청소년들이 그들이 선망하던 자유가 책임이라는 굴레와 함께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을 갈고닦아, 대부분은 다시금 커다란 울타리 속으로 들어간다. 직장이라는 울타리, 새로운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렇게 자신이 약자였던 시절은 서서히 잊혀진다.
그렇게 스스로 자리 잡은, 다 큰 어른이 바로 당장 ‘약자’가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여행지’이다. 특히 홀로 하는 해외여행의 경우, 그 포지션은 극대화된다. 약자가 된다는 건 남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 어릴 때와 다른 게 있다면 여행에서 비롯된 약자의 경우는 ‘심리적 불안감’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북섬에서 머물렀을 때였다. 남섬을 혼자 여행하며 이미 어느 정도 홀로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북섬은 남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나의 불안은 공항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이용한 공항버스는 짐을 보관하는 수납공간이 따로 있었다. 타기 전 버스 아래쪽에 있는 빈칸에 캐리어를 싣고 몸만 탑승하는 구조였다. 버스에서 내리고 내 짐을 찾아 숙소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공항에서 꽤 오래 기다린 탓에 얼른 체크인을 마치고 쉬고 싶었다. 구글맵을 찾아 캐리어를 끌고 시내를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곧 지도가 가리키는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웅장하고 화려해 보였던 호텔은 곧 무너질 것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었고, 프런트에는 다소 어두워 보이는 남자(차별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상냥한 여자직원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가 나를 맞았다. 리프트는 오래되어 움직일 때마다 덜컹거렸고 우웅-하는 소리가 났다. 안내받은 방문은 묵직한 나무문으로 되어있었고, 열쇠 대신 받은 카드를 구멍에 꽂으면 문을 열 수 있었다. 과하게 넓은 방은 온통 새빨간 카펫으로 덮여 있었고, 방문 앞에 있는 싱글 침대를 지나 들어가면 커다란 침대와 체리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은 고즈넉한 가구가 놓여 있었다. 커다란 화장실에는 비단 커튼이 있는 커다란 욕조와 세면대, 등이 휑하게 놓여있었다. 모든 공간이 지나치게 넓어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창은 건물 뒤편으로 나 있어 옆 건물의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고자 침대에 앉았다. 침대 옆에서 호텔을 소개하는 짧은 문구가 적힌 명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100년 전 왕자와 공주가 묶었던 곳’이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1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웅장한 호텔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새빨간 카펫과 더불어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갑을 꺼내기 위해 캐리어를 열었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다시 맞추고 몇 번을 다시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머릿속에는 버스에서 꺼내주던 캐리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캐리어가 바뀌었다. 똑같은 캐리어가 있었던 거야. 그도 그럴 게 내가 가져온 캐리어는 여행용 캐리어로 꽤 유명한 브랜드에서 가장 무난한 검은 색 캐리어였다. 비슷한 캐리어는 물론 같은 캐리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캐리어를 자세히 훑어보니, 전에 봤을 때 보다 흠집도 훨씬 많고 지저분해 보였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나와 캐리어가 바뀐 상대방도 지금쯤 깨닫고 나를 찾고 있을지 몰랐다.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숨 가쁘게 걸으며 버스회사에 전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저녁이었던 터라 상담 서비스 시간이 아니라는 자동응답기가 들려왔다. 결국 포기하고 상대가 나와있기를 바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내린 곳을 찾아 걸었다. 정류장은 각종 루트에 버스가 정차하는 곳으로 입구부터 내가 내렸던 구역까지도 꽤 거리가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검은 캐리어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캐리어가 바뀐 걸 눈치채지 못한 걸까? 그럼 언제까지 여기에서 기다려야하는거지? 다른 승객의 정보는 알 수 없었고, 버스 회사에 상담도 불가하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여권과 카드 한 장뿐이었다.
결국,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캐리어를 빌려준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해외여행을 가는데 작은 캐리어가 없어 지인에게 빌렸다. 이 캐리어 비밀번호가 여자 친구 생일이라고 했지? 생일이 5월 21일인가? 지인은 대답했다. 5월 12일. 왜?
뉴질랜드 여행 6일 차, 이미 몇 번이나 사용한 비밀번호를 왜 착각한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비교적 한적한 낯선 도시와, 허름한 호텔 외관, 지나치게 넓은 빨간 방과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를 들으며 공황 상태에 빠졌던 게 아닐까 싶다.
자국만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의 처지에서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 과연 내가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해코지를 당해 잘잘못이라도 가리게 되면 아무래도 자국의 편에 서지 않을까? 내가 불합리한, 어쩌면 상상하기 싫은 무서운 일을 마주했을 때, 이곳의 경찰은 나를 진심으로 도와줄까. 여권이라도 잃어버리면 누가 나의 신분을 보장해줄까.
사실 이 모든 불안한 생각들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인종차별 이야기, 외국에서 동양인의 지갑을 찾아 경찰서에 건네주고 몇 달 뒤 다시 찾아가 행방을 물었으나 그런 건 접수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지인의 이야기, 언젠가 흘려들었던 뉴스에서 여행을 떠난 뒤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고리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불안감은 생각할수록 점점 살을 붙여 걷잡을 수 없이 내 정서를 지배하고 만다. 어쩌면 허탈하고 황당한 그 날의 캐리어 사건은 불안한 내 정서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