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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Nov 27. 2021

처음 내 삶에 코로나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건 그 해 초였을 것이다. 퇴근 후 여느 때처럼 둘러 앉아 와인을 마시며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던 중 TJ가 문득 이런 말을 했었다.


"박쥐 바이러스 이야기 들었어? 중국에 난리도 아니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하나 둘 소란을 피우며 저마다 관련된 영상들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당시 한 영상 플랫폼에는 왜 박쥐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영상들로 들썩이고 있었다. 그 영상에는 쥐와 박쥐를 파는 중국의 시장과, 박쥐가 통으로 들어있는 수프를 먹는 중국 사람들의 영상 등이 찍혀있었다. 살아있는 쥐를 먹는 영상도 있었다. 물론 식용 쥐였겠지만 그마저도 생소한 이들에게는 경악을 금치 못할 영상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비 상식적인 식습관으로 코로나가 생겼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뭔데? 그렇게 심각해?"


그리고 보게 된 또 다른 영상. 무슨 재난 영화라도 찍는 것 처럼 사람들이 거리에서 픽픽 쓰러져 죽어갔다. 영상을 향해 절규하던 사람들, 시체 처리가 곤란할 만큼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중국에 한 지역에서 발발한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라고 했다. 


그렇구나. 심각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호주에서 중국까지는 비행기로 15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에서 벌어진 재앙일 뿐이었다. 


그 후로 여기 저기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규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염병이라고 하더니, 과연 규제가 시작되었구나. 하지만 곧 치료제도 나오지 않을까? 지금까지 거쳐간 많은 전염병처럼 이도 곧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실제로 한국에 코로나가 퍼져 한국인의 입국이 규제됐을 때조차, 호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여전히 회계 사무실에서 일했고, 새해를 맞아 연봉이 조금 더 올랐고, 아직 남아있는 연차로 이주 동안의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럼 남섬은 같이 여행하고 북섬은 혼자 갈게"

"번지점프 할까? 온천도 가자!"


반 년 전 싱가폴 이후 오랜만에 같이 하는 여행이었다. 긴 연휴를 쓸 수 없는 언니와 남섬을 여행하고 아쉬운대로 북섬은 나 혼자 여행하는 루트로 여행을 계획했다. 긴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퍽 설레는 일이다. 미래의 내가 갈 곳을 찾아보며 이동선에 따라 하나 하나 숙소와 이벤트를 예약하다보면 조금씩 다가오는 여행에 대한 기대로 생활에 활력을 준다. 일이 너무 힘든 날은 온천을 예약하고, 지루한 날은 익스트림한 활동을 예약했다. 보너스를 받아 돈이 많이 생기면 고급 숙소를 예약하고, 이번주는 돈을 많이 썼다 싶으면 캡슐 호텔을 예약했다. 


"참, 너 한국은 들어올거야?"


여행 계획을 다 짜갈 때 쯤, 언니가 물어왔다. 그래. 이제 이 월이 다가오니 슬슬 오월의 여행을 계획해야 할 때다. 


"오 월 까지만 일하기로 했어. 한국 들어가기 전에 세계여행을 할까 해. 일하기 시작하면 또 그만두기 힘드니까."


나는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나라를 거쳐 미국과 캐나다를 마지막으로 삼 개월 간의 여행을 계획했다. 나처럼 몇 달을 통째로 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저마다 원하는 나라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언니는 이태리와 독일, 토끼는 영국, 미나는 미국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여행은 끝난다. 

당장 뉴질랜드 여행이 있었기에 비행기 티켓만 끊고 자세한 계획은 여행 후에 세우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이 월 중순, 한국에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각 나라의 정부는 한국에도 입국 규제를 걸었다. 공항과 비행기에서 퍼진 코로나로 많은 승무원들이 감염되었고, 출국을 꺼린 사람들은 티켓을 취소했으며, 승객을 잃은 비행편은 줄줄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의료인인 언니는 출국 규제를 받았다. 


"특별한 사유를 제출하고 병원에 허가를 받아야 한데"


언니는 우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생긴 규율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계획했던 여행을 혼자 하는 코스로 바꾸었다. 처음부터 여행사를 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예약해 놓은 이벤트를 취소하고 숙소도 바꾸어야 했다. 


처음 내 삶에 코로나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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