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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Nov 17. 2021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회계사무소에서 일하고 반년이 더 흐르고, 호주에서 보내는 여섯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첫 크리스마스는 홈 파티였다. 나는 당시 꽤 유명한 요리사 부부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일, 부부는 손수 차린 뷔페로 홈 파티를 열었다. 같이 살고 있던 나도 자연스럽게 함께 참여하는 모습이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홈 파티, 맛있는 와인과 음식의 향, 북적이는 사람들. 그 사이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만 바라보고 있는 나.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첫 파티였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내가 그 파티를 즐기기에는 처음부터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삼 사십 대의 중년층이었다. 다들 자기들 분야에서 한몫하는 사람들이었고,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작은 아이들이 있었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부터는 늘 일을 하며 보냈다. 공휴일은 평일의 두 배 정도를 받을 수 있었기에, 유학 시절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하루 동안 사오십만 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고작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날려버릴 낭만적인 여유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직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온전한 연휴를 즐길 수 있었다. 5월에 입사한 나는 바쁜 시기를 모두 지나 드디어 12월에 긴 연휴를 맞이했다. 12월 24일, 회사에서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와인이나 좋아하는 주류를 마시며 회사가 빌린 전망 좋은 어느 빌딩의 최상층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이벤트였다. 물론 꼭 참석할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라 하면 많은 곳에서 파티가 열렸고, 회사의 파티는 그중 가장 낮은 우선순위에 뽑혔다. 연인과의 시간, 친구들과의 파티, 사교 모임, 그리고 회사 파티 정도. 그마저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꽤 여러 차례 겪으며 알게 된 게 있다면, 나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고,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건 회사 생활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는 축이다. 그나마 좋은 점을 꼽자면 생각 없이 가볍게 놀 수 있다는 것 정도. 노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걸 더 좋아하는 내게는 큰 메리트가 없었다. 


나는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일찍 회장을 빠져나왔다. 열한 시, 조금 있으면 미친 듯이 차가 막힐 테니, 지금이라도 얼른 집에 가야지. 지잉-지잉-. 끊이지 않는 핸드폰을 마지못해 들었다.


"어, 왜."

"야, 너는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응, 본론만."

"우리 지금 Jack네 집에서 파티하는데, 너도 와라."

"나 Jack 몰라"

"야 너 전에 한번 밥 먹었잖아. Peter랑 솔도 있어."

"나 바빠, 끊는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메시지와 같이 놀자는 연락. 성탄절 당일이 가족과 함께 하는 날이라면, 이브는 확실히 노는 날이다. 어디에 있든 그렇겠지만, 특히 호주는 크리스마스부터 연말, 연초까지 파티와 모임이 끊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파티, 연말 파티, 연초 모임 등 사실 이때쯤 되면 해에 끝과 시작을 장식하며 최선을 다해 노는 게 목표가 된다. 열심히 일한 자여 놀아라. 잘 노는 것도 실력이다. 


그러고 보면 호주는 이래저래 참 노는 날이 많다. 한국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호주의 회사는 일 년에 사 주간의 연차와 이 주간의 병가를 받는다. 쓰지 않으면 누적되고, 한 번에 몰아서 쓰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퇴사 시까지 쓰지 않거나, 본인이 돈으로 받기를 원하면 돈으로 환산해서 지급한다. 연차야 한국에도 있지만, 이 Sick leave (병가)라는 개념이 없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아침에 속이 안 좋거나 혹은 그저 나른한 날이라도 전화를 걸어 당당히 '병가'를 낼 수 있는 호주에서는 회사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별도의 병원 진찰서 같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병가를 내가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 달에 병가 하나 연차 두 개 정도가 쌓이는 셈인데, 병가는 따로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탓에 매달마다 꼬박꼬박 병가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혜택이 귀국과 동시에 사라졌다는 걸, 귀국한 지 일 년이 넘었을 때야 서서히 체감할 수 있었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방으로 올라와 창밖으로 요란한 불꽃을 바라봤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색색의 불꽃이 하늘 높이 퍼져갔다. 가장 큰 불꽃놀이는 연말에 열린다. 도클랜드의 부둣가에서, 카운트다운과 함께 몇천만 원치의 불꽃이 하늘을 장식하며 새로운 한 해를 연다. 특별히 축제라 할 게 없는 도시지만, 불꽃놀이만큼은 화려하고, 후하게 쏘아 올린다. 

달달한 와인을 마시며 몇 분 동안 끊이지 않고 터져 나가는 불꽃을 바라봤다. 와인은 혼자 살면서 찾은 작은 보상이었다. 맛있는 와인, 무거운 와인, 달달한 와인, 향긋한 와인. 호주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다. 얇쌍하고 기다란 와인 글라스는 혼술을 청승맞지 않게 도와주고, 알코올에 흠뻑 빠진 과일은 나를 기분 좋은 꿈의 세계로 안내한다. 서서히 잠식되어 기분좋게 잠드는 마법을 부려준다. 


크리스마스 당일, 우리는 느지막히 열 시가 다 되어 아래층에 모여들었다. 

"언제 들어왔어요?"

"어제 두 시쯤? 길 엄청나게 막혔어."

그래도 과음하지 않았는지 다들 멀쩡해 보였다. 탁자에는 작은 선물들이 놓여있었다. 

"이게 뭐에요?"

"크리스마스 선물"

산타할아버지가 없는 어른이들은 기쁨이라는 작은 설렘을 나눈다. 사실 선물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동그란 포장에 빨간 리본으로 묶인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니까. 우리는 뻔한 캐롤을 들으며 캐빈을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도란도란 모여 도시락을 만들었다. 에그샌드위치, 오니기라즈, 치킨 가라아게를 만들고 차가운 탄산을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삼사십 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를 위해 우리는 바다로 간다.

"어디로 갈까?" 

"세인트 킬다?"

"오늘 거기 가면 사람들한테 치여 죽는다."

"그럼 윌리엄스타운. 그나마 제일 조용할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나름 섬나라인 호주는 어느 지면에도 해변이 많다. 그중에서 도시와 가장 가까운 해변 세인트 킬다 비치, 시티에서 조금 남쪽에 위치한 포트 멜번, 그리고 한참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이동해야 나오는, 평소에는 더없이 고요한 윌리엄스 타운. 늦장꾸러기가 자리라도 잡아보려면 이런 곳을 골라야 한다. 


우리는 듬성듬성 북적이는 해변 한 편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무더운 여름, 해변은 수영복에 산타 모자를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시락을 까먹고 가방을 베고 누웠다. 나른한 크리스마스의 오후는 푹신한 모래와 따가운 햇볕, 시원한 바닷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잠에 들며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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