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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Mar 31. 2017

세상에는
소셜 투자하는 계모임도 있다

조금 특별한 소셜 투자 모임 '디모스' 이야기

'뭐라도 한 번 해본' 우리, 오늘의 역사를 만들다

박근혜는 아직 청와대에 있었고, 세월호도 아직 물 속에 있었던 11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많이 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그날 저녁 카우앤독에는 60명이나 되는 낯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사람들이 뜨겁게 뜨겁게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그때, '새로운 방식의 집회와 시위'를 기획해보자는 제안에 호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해보지, 뭐'라는 타이틀 아래 그 날 모였던 사람들은 그 뒤로 3주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서 신촌과 광화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형식의 시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해보지, 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전에 없던 다양한 방법으로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한 때였고, 준비한 사람도 참여한 사람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1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잊혀질뻔 했던 세월호가 떠올라 뭍으로 돌아오고 피의자 박근혜는 서울 구치소로 갔습니다. 녹슬고 상처입은 세월호의 모습과, 올림머리는 간데없이 헝클어진 두발과 퀭한 눈을 한 피의자 박근혜의 표정이 함께 신문에 실린 오늘을 만든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묵직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가 발 딛고 선 집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뭐라도 한 번 해 보았던 우리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셜 투자를 위한 계모임을 해 보자?!

여기에 '해보지, 뭐'를 통해 지난 겨울의 한기를 온몸으로 녹여낸 열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말부터 한달에 한 두 번씩 모여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을 새롭고 즐겁게 채워갈 수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디모스는 이렇게 술먹으면서 노는 모임에서 출발했습니다


지난 1월 어느 날 연남동에서 중국음식을 먹던 우리는, 소셜 벤처 투자사에서 일을 하던 세나의 아이디어에 주목했습니다. 


"각자가 투자하고 싶은 소셜 프로젝트나 기업, 공간을 찾아서 서로 피칭을 해보면 어떨까?"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이상한 활기를 띠며 대화에 몰입했습니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열 두 명이 모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자리를 옮겨 진행된 대화에서 '매달 5만원씩 곗돈을 모아서 모은 돈으로 투자를 한다'는 펀드레이징의 기본적인 방향까지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각자가 꿈만 꿔왔던 자신만의 프로젝트,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지인의 사업, 어디선가 뽐뿌질을 받았던 머스트해브 아이템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4대강 인공보 강바닥에 쌓인 퇴적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처참한 몰골이 된 금강 바닥입니다. 4대강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노잼드립이지만 한 번... / 오마이뉴스에서 ©김종술


다음 달인 2월 모임에서는 열두 명의 참여 여부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모임 개최 방식과 필요한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거쳤습니다. 왜 우리가 열두 명이 되었는지, 그 열두 명이 누구인지에 대해 공유하고 확인하는 자리였달까요. 두 가지는 명확했습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 그리고 각자의 속도와 생각을 존중하면서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의사결정해갈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실험을 할 것이라는 점 말이죠.


세 번째 만남: 투자원칙과 의사결정과정 합의

세번째 모임을 가졌던 날은 하필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 3월 10일이었습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회의는 안하고 열심히 음식을 먹으며 놀다 보니 어느 덧 밤이 깊었습니다. (...) 그러나 멤버들 대부분이 소셜벤처 영역에서 일해온 베테랑답게 집중력을 발휘해 아주 빠른 속도로 논의를 진행시켰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합의했습니다.



모임취지

'해보지, 뭐'를 통해 만난 열두 명은 매달 5만원씩,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은 금액을 모아 사회적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 또는 그러한 일을 하는 개인/단체에 투자한다. 


투자의 대원칙

투자 주기는 6개월로 한다. 

모든 참가자는 주기별로 1가지 이상의 프로젝트를 제안/피칭한다.

합의 방식, 투자 여부를 비롯한 주요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로 한다.

한 회기에서 프로젝트를 선정하지 못하면 다음 회기로 넘길 수 있으나, 함께 모은 돈이 1천만원을 넘지 않도록 한다.


프로젝트 선정 기준

다음 다섯가지 기준에 하나라도 해당하는 프로젝트/개인/단체를 투자 후보로 제안할 수 있다.

소수자 고려

새로운 시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처음으로 시도되는 프로젝트)

성평등 기여

이윤 이외의 가치나 지향점이 있을 때

작지만 큰 일상의 문제해결을 지향할 때


투자 합의에서의 원칙

만장일치

시간을 가지고 설득/경청하기

투명성(기록하기)


원활한 소통을 위한 '그라운드룰'

역할은 추첨으로 정한다

반대 의견은 대안과 함께 밝히기

모두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말이 안 되는 말'은 없음을 기억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내 의견 말하기 

토론이 과열 양상을 보일 때 막례쓰 영상을 보며 분위기 전환 등


논의가 산으로 갈 때는 이렇게 함께 막례쓰 영상을 봅니다


규칙 위반자를 위한 페널티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서 10분간 침묵과 반성


비용 관리와 사용

매월 모임일에 통장에 입금

재정 담당자를 2명 지정해 통장을 번갈아 사용하여 부담은 나누고 책임은 높인다


"디모스(demos), 평범한 사람들"

세 번째 모임에서는 이 특별한 계모임의 이름도 결정되었습니다. 바로 평범한 시민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데모스(Δήμος)에서 이름을 따온 디모스demos입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모여서 세상을 바꾸고, 대단치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참여가 그 어떤 권력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난 겨울 신촌에서 있었던 '뭐라도 해보는 축제'에서 디모스 사람들(과 현장에서 참석하신 자원봉사자 1분 ㅋㅋ)


디모스의 로고에는 붉은 빛깔의 말린 토마토도 집어넣기로 했습니다. 말린 토마토는 약용으로도 쓰일 정도로 활기를 북돋워주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모스가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활기를 제공하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린 토마토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는 방송용이고요. 모임을 진행하면서 비방용으로 나온 이야기 가운데 토마토에 관한 것이 있었는데요, 앞으로 프로젝트 피칭을 하면서 소개할 일이 생기면 그때 좀 더 본격적으로 말린 토마토에 관한 이야기를 풀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말린 토마토 참 좋은데, 남녀 모두 참 좋은데... 직접 말할 수도 없고...


이외에도 전체 6개월 투자주기에 대한 세부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4월에 열릴 첫 피칭을 하는 모임에서 본격적으로 제안된 프로젝트 주제들과 함께 소개하는 쪽이 내용 이해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투자하는 법, 디모스의 이야기는 다음 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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