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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Feb 01. 2018

LA 입경

'17-'18 미국 여행기(2), 2017년 12월 26일

미국 여행을 갈 때마다 나를 긴장시키는 게 있다. 바로 입국심사. 몇달 전 비행기 티켓을 끊을 무렵, 어떤 종교단체 행사에 참여하려던 한국인들이 무더기로 입국거부를 당해 미국 공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라도 입국이 거부되면 귀국 비용은 미국 쪽에서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양심은 있네’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을 겪고 싶지는 않아 걱정이 되었다.



미국 여행 간다고 했을 때 하우스메이트가 전해줬던 그 뉴스


입국거부의 추억

실제로 7년 전 (벌써 ㅠ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심사관에게 입국거부를 당했다. 그때 나 혼자가 아니라 어머니랑 이모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엄청 당황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비행기 티켓 예매를 담당했던 내가 귀국편 전자항공권을 인쇄해서 챙겨가지 않았다. 심사관은 어디를 가냐, 왜 왔냐,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있냐, (없다) 뭐 없다구?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어머니 직업이 뭔지, 지금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물었다. 엄마는 퇴직했고 오랫동안 지역 병원에서 간호공무원으로 일했다... 뭐 이런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러자 출국편 항공권을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입국거부를 당하고 줄 맨 뒤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는 당황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글로 써 보니 충분히 빠꾸 먹을만한 상황이었던 것..... 심사관은 아마도 ‘출국 항공편도 없이 미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일가족 셋이 들어왔다고? 이거 딱 봐도 불법 이민 아냐?’라고 생각했을 듯.


로스앤젤레스 공항은 마이애미와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외국인들이 세 번째로 많이 들어오는 공항이다. 특히 수많은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드나드는데, 올초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7년 한해 동안 엘에이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4,800만 명이고 이 가운데 31만 5천여 명이 한국인이었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나 영주권을 소지한 한국인은 제외한 숫자니까 어림잡아 최소 하루에 1천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엘에이 공항 입국심사를 거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심사장 줄 부근에는 항공사나 공항 소속의 한국인 또는 한국계 직원들이 몇 명씩 서서 심사관 옆에서 통역을 하거나 사람들의 민원을 챙기고 있었다. 마침 이모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심사관에게 1차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하고 있을 때에도 젊은 한국인 남성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상황을 설명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는 항공권 인쇄는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일단 다른 쪽에 가서 한 번 줄을 서 보시겠어요?”


별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 말대로 ‘일단’ 다른 줄에 가서 섰다. 그리고 다시 심사를 받을 차례가 되었다. 두 번째 입국심사를 맡은 사람은 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버린 아시아계 남성이었다. 우리 일행이 다가가기 전까지 옆 칸의 다른 심사관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아직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방금까지도 밝아보였던 그는 우리가 심사를 받기 위해 앞에 서자 웃음기를 지우고는 여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은 이모나 엄마나 나나 마음속으로만 품고 가만히 있었다. 또 거부를 당하면 정말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심사관의 가슴팍에는 대문자로 EOM이라고 적힌 패찰이 붙어 있었고 나는 그걸 보고 ‘공항 입국심사관 가리키는 영어 줄임말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사관은 말없이 컴퓨터 화면과 우리 여권과 입국편밖에 인쇄되지 않은 전자항공권 종이를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쿵, 쿵, 쿵 하고 도장소리가 세 번 났고 여권을 돌려받은 우리 셋은 공항 입국장으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의 가슴팍 패찰에 적혀있던 EOM이 무슨 어려운 영어단어가 아니라 ‘엄’이라는 한국 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은 우리가 불법체류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도 통과시켜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포틀랜드? 힙스터 도시?”

이번에 내 입국심사를 맡은 사람은 머리가 희끗한 백인 남성이었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미국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고 그건 백인 장년 남성이다. 영어를 쓰고, 돈을 좀 벌고, 큰 총을 쏠 것 같고, 정원이 딸린 2층짜리 하얀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 약간 보수적이고 외국인이나 외국 문화를 접해보지 않아서 한국인인 나에게는 당연히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던 나로서는 얼마 전 무더기 입국 거부 사태 뉴스와 첫 미국 방문 당시의 경험 때문에 약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심사는 빠르게 끝났고 심사관은 무심한 얼굴로 “Enjoy your travel”이라는 인삿말까지 덧붙였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에서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도 여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미국 입국심사는 미국 여행할 때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도착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이종사촌동생 미셸과 그 남자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미셸은 두 해 전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석달 간 함께 지냈는데, 그때 남자친구도 잠깐 한국을 방문해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이었다. 원래는 이모네서 다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예정보다 비행기가 늦게 뜨고 늦게 도착해서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저녁 먹고 나서 집에 치킨을 사들고 가서 인사를 드렸다.


저녁 메뉴는 엘에이에 올때면 꼭 찾는 요리, 바로 양념에 푹 끓인 해산물 요리다. 칩, 소시지, 옥수수 따위를 같이 먹는 이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는 ‘보일링 크랩(Boiling Crab)’이라는 이름의 원조격 식당이 제일 유명하다. 이곳은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줄이 길다. 아쉽지만 시간이 넉넉치 않아 근처에 같은 메뉴를 파는 다른 식당에서 먹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에게 내 여행계획을 공유했다. 애리조나를 들렀다가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로 이어지는 서부 종단 여정. 그 중에서도 둘은 포틀랜드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미셸이 이렇게 말했다.


“거기는 힙스터들이 가는 곳이지.”


포틀랜드 여행 책에서 읽은 게 있어서 내가 “젊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래?”하고 반문이 날아든다. 정말 젊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인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 끝에 내가 되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힙스터’라는 말이 그렇게 안 좋은(sarcastic) 의미로 쓰인 거야?”


그러자 둘은 자신들도 잘 모른다며 웃었다. 한국에서도 더 이상 ‘멋쟁이’라는 본래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맥락으로 쓰이고 있는 힙스터라는 말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대접을 받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맥주를 들고 계신 이모부. 저녁 먹고 나서 치킨을 또 먹었다. 엘에이에서 즐기는 치맥은... 솔직히 한국만은 못했다. 어쩌면 미국 가자마자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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