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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l 05. 2021

혼자 가면 빨리,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애덤 그랜트,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서평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아프리카 속담이라면서 널리 퍼진 말이다. '아시아 속담'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해보면, 진짜 출처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에 개의치 않고 사람들이 이 말을 편히 가져다 쓰는 건 설명이 필요없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 <기브앤테이크>를 읽고 이 속담이 떠올랐다. 이 책은 <싱크 어게인>, <오리지널스>를 쓴 애덤 그랜트가 2013년 낸 책이다. 이 책은 젊고 유능한 학계인사였던 애덤 그랜트가 자신을 세계에 알린 첫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기브앤테이크>를 같은 친구가 간격을 두고 두 번이나 언급해서 두 번째 이야기를 들은 그 날 바로 샀다. 


좋은 책은 보통 한 가지 주제를 다룬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기브앤테이크>는 제목만 보면 주는 것과 받는 것, 그리고 책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는 이(Giver)와 가져가는 이(Taker)를 분석할 것처럼 보인다. 내용도 대체로 기버와 테이커를 비교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버에 관한 책이다. 책의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버가 세상을 움직인다'일 것이다.


이 주제는 앞서 언급한 속담과 어떻게 연결될까? 좋은 속담은 압축적인 동시에 분명한 서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줄여서 '혼빨함멀'로도 알려진 이 속담에는 두 사람이 나온다. 혼자 빨리 가는 놈과 같이 멀리 가는 놈이다. 그런데 사실 이걸 한 번 슥 읽고 나면 머릿 속에는 한 사람만 남는다. 바로 같이 멀리가는 놈이다. 


이 속담을 읽고 나면 직관적으로, '뒷놈이 앞놈 데리고 같이 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브앤테이크>는 이것이 기버가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이고, 그렇게 해서 뛰어난 개인이 아닌 인류가 많은 것을 이뤄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투자업계, 예술계, 스포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된 여러 사례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기버란?


책이 소개하는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상을 피라미드로 볼 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테이커가, 밑바닥에는 기버가 많이 관찰된다. 기버들은 남의 일을 도맡아 하느라고 자기 일에 소홀해지기 십상이라, 기업에서는 생산성이 낮고 임금도 적게 받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의 성과와 몫을 가져감으로써 자기 성과를 극대화하는 테이커들에게 기버는 훌륭한 자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다른 여러 연구에서, 피라미드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대기에는 기버 또한 상당히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혹시 이 기버는 받은만큼 주는 깍쟁이가 아닐까? 아니다. 저자는 이런 부류를 '매처(matcher)'로 따로 분류한다. 밑바닥의 기버와 꼭대기의 기버는 기질이나 행동방식이 동일하다. 이 책의 앞부분은 성공한 기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뒷부분은 기버가 '호구'가 되지 않고 성공하게 되는 경로를 다룬다.


이 책을 읽고서, 모든 인간은 기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테이커(예를 들면 마이클 조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발휘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애쓴 성공한 사람들이다. 기버 역시 자기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다만 둘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테이커는 자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활용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테이커는 다른 사람들의 힘과 재능이 자신의 힘과 재능을 키우는 데에 활용한다. 기버는 어떨까. 기버는 다른 사람이 가진 영향력과 재능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힘을 쓰는 사람이다. 기버가 다른 사람의 영향력과 재능을 사용하는 경우는, 대개 또 다른 누군가의 영향력과 재능을 더 키우기 위해서다.


사회에서 다수 그룹을 차지하는 매처는 이들의 힘을 제한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룹 구성원 내에서 테이커임이 확인된 사람에게는 지속적으로 비용을 청구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테이커의 악명이 높아지는 것은 매처들이 그 역할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매처는 유능한 기버에 대해서는 기회가 닿는한 보상을 베푼다. 기버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심지어 잘 도움을 구하지도 않지만, 매처는 보답받은 것을 반드시 주고자 하기 때문에 기버는 이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테이커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긴 시간의 지평에서 기대치 않은 보상과 성취를 이루는 것은 언제나 기버들이라는 것이다.


엔트로피와 기버의 상관관계


이 책은 훌륭한 대중서이지만, 이론으로서는 엄밀하지 않다.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기버와 테이커, 매처라는 임의적 분류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저자 역시 이를 인정한다. 성공한 테이커는 기버가 되어 자신의 성취를 더 의미있게 할 수 있고, 매처는 기버가 되어 스스로 제한한 재능을 더 발휘할 수 있다. 기버는 더 효과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테이커가 될 필요는 없지만, 주고받는 상황을 똑똑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천성이나 기질은 단시간 내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버가 위대한 선인이 아니고, 테이커가 영원한 악인이 아닌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의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당장의 행복은 기질에 좌우될 수 있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선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좋은 지침을 제시한다.


내가 생각한 좋은 지침이란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의 엔트로피(Entrophy)와도 비슷하다. 엔트로피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해서 감소한다'는, 닫힌 계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수학적 개념이다. 엔트로피로 보면 기버란 닫힌계에서 더 많은 사람(에너지)들이 더 많은 성과(일)을 낼 수 있게끔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테이커는? 자신만의 성과를 위해, 엔트로피가 효율적으로 변화하지 않도록 가로막는 존재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기버란 인간이 지닌 잠재력의 측면에서, 이를 최대한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내게 어떤 도움을 요청할 때,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이익일까? 어느 쪽이 엔트로피의 효율적인 움직임에 기여하는 기버로서의 선택일까? <기브앤테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선택을 하라.' 이것을 지침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결정을 내린다면, 테이커를 가려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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