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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지 Apr 16. 2017

다시, 봄

그림책 에세이 #6                 






어느 날 아침, 작은 새가 죽었다. 

작은 새와 단짝 친구였던 곰은 어제 아침에 작은 새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린다.

"있지 작은 새야, 오늘도 '오늘 아침'이잖아. 어제 아침도, 그제 아침도 '오늘 아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해.

내일이 되면 또 아침이 오고, 모레가 되면 또 아침이 오고, 하지만 모두 '오늘 아침'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늘 '오늘 아침'에 있는 거야. 언제나 함께."

곰은 처음으로 오늘 아침이 아닌 '어제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작은 새와 함께 있었던 어제 아침으로. 그리고 예쁜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작은 새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

곰에게 친구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한다.

"곰아, 이제 작은 새는 돌아오지 않아. 마음이 아프겠지만 잊어야지."

상자를 열어 작은 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들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낯선 들고양이는 상자 속 작은 새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넌 이 작은 새랑 정말 친했구나. 작은 새가 죽어서 몹시 외로웠지?"

들고양이는 곰과 작은 새를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곰은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작은 새와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곰은 작은 새와 함께 즐거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했어요.
아침마다 작은 새가 잠꾸러기 곰을 깨울 때, 작고 까만 부리로
간지럽게 곰의 이마를 쪼아 주던 느낌을 떠올렸지요.
나무 열매를 셀 때, 몇 번을 다시 해도 작은 새가 더 빨랐던 것도 생각났어요.
날씨 좋은 날, 숲 속 옹달샘에서 함께 미역을 감았던 것도 떠올렸지요.
물을 튀기는 곰에게 작은 새가 늘 투덜거리던 것도 떠올렸고요.
미역을 감고 난 뒤, 작은 새의 날개에서 나던 향기도요.
이따금 다툰 것도 생각했어요. 그리고 화해했던 것도요.

곰은 무슨 일이든 죄다 생각해 냈어요.

숲 속에는 언제나 환하게 볕이 드는 곳이 있습니다.
작은 새와 함께 해바라기를 하던 곳이에요. 곰은 그곳에 작은 새를 묻었지요.

"나, 이제 울지 않을래. 작은 새는 앞으로도 계속 내 친구니까."



올해 다섯 살이 된 조카를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된 뒤에도, 엄마 아빠 다음으로 고모를 가장 좋아하던 이 시절을 기억할까? 아마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나는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자라날 이 아이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겠지. 

엄마 아빠 이름 다음으로 내 이름을 기억하고, 언제나 멀리서 "고모!" 하고 외치며 달려와 내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세차게 내 품에 안기던 너의 모습을. "꼭 꼭 안아보자, 더 꼭 꼭." 하며 내 등을 꽉 끌어안던 너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들을. 

훗날 징그러운 중학생이 되고, 무뚝뚝한 청년이 되어 '고모라는 사람과 무슨 얘길 하겠어' 하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 사이가 멀어진다 해도, 나는 이 기억들을 잊을 리 없으니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지켜주는 건 이런 기억들이 아닐까.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의 기억. 


작은 새를 잃은 날의 곰처럼, '어제 아침'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반드시 온다. 예상치 못한 사고일 수도, 이별일 수도, 죽음일 수도 있는 어떤 일들이 오늘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잘 알다시피,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중 하나가 바로 어제 아침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설령 단짝 친구와, 가족과, 애인과 함께할 수 없는 날이 온다고 해도, 한 발 한 발 두려운 세상에 발 디딜 때 함께했던 그 빛나는 기억을 간직한다면 우리는 혼자가 아닐 수 있다. 곰과 작은 새가 앞으로도 계속 친구이듯.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슬픔의 정도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절망을 그저 지켜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부끄러워진다. 심지어 알은체를 하며 글을 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지나, 이제야 그 절망과 한덩어리가 되어 있던 내 감정을 겨우 조금 떼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들고양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듯, 그저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솔직하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기억하는 것. 

그들이 앞으로도 혼자가 아닐 수 있도록, 잃어버린 사람과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의 기억을 지켜주는 것. 

함께 슬퍼해주는 것.


또다시, 봄. 또다시 돌아온 4월 16일.

작은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며 촛불을 드는 사람들, 

4월 16일을 기억하는 사람들,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는 사람들,

절망에 숨죽이지 않고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사람들,

기억하고, 그 기억을 지키는 사람들이 흘리는 작은 눈물 방울들이 

꽃으로, 꽃으로 피어나기를. 


그래서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IyPy2Iqq-NM

Don't you fret, M'sieur Marius
I don't feel any pain
A little fall of rain
Can hardly hurt me now
You're here, that's all I need to know
And you will keep me safe
And you will keep me close
And rain will make the flowers grow.


슬퍼하지 말아요, 마리우스

난 아프지 않아요.

그저 작은 빗방울 몇 방울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신이 여기 있잖아요, 그거면 돼요.

날 지켜주고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잖아요.

그리고 이 빗방울은 꽃으로 다시 피어나겠죠.


이 비는 아프지 않아요.

지난날을 모두 씻어줄 테니까.

당신이 날 지켜주고

내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결국 당신 품에서 잠들 테니까

당신을 이곳으로 부르다니, 이 비는 축복이에요.

구름이 걷히고

이제 난 편안해졌어요.


그저 작은 빗방울 몇 방울

별로 아프지 않아요.

이 빗방울이

꽃으로

꽃으로

피어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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