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오빠와 나

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1_2015년 7월 30일

by 인지


bird_2.jpg 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1_2015년 7월 30일



아래 책을 보다가 문득, 우리 오빠가 생각났답니다.
그래서 두서없이 첫 편지를 이렇게 써봅니다.





비행기의역사.jpg <종이로 만드는 비행기의 역사>(R.G. 그랜트 지음)


제겐 오빠가 있는데요.
어렸을 때, 오빠한테서 생일 선물로 직접 만든 비행기 스크랩북을 받았어요.
스케치북 두세 장 찢어서, 여기저기서 오려낸 비행기를
서툰 손으로 붙여놓았었지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엉엉 울고, 엄마한테 일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껏 짐작도 못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오빠는 나한테 엄청 소중한 걸 줬었네' 하고.
지금도 친정에 있는
어린 시절 쓰던 작은 책상의 서랍 속에는
그 스크랩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듯, 이 책을 자세히 보자면
우선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



비행기의역사_1.jpg 요렇게, 비행기 모형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요. 무려 50종!


책 소개를 보면,


‘플라이어’부터 21세기 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보잉 드림라이너와 F-35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행기들의 개발 과정을 되짚어봄으로써 인간의 비행사를 정리해놓고 있다.


지만, 다 필요없고 그냥 이 도면들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우리 오빠와 같은 아이들이라면
엄청나게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종이로 만드는 역사' 시리즈예요. 기차 편, 자동차 편도 있답니다.






오빠 생각이 나서 문득, 이어서 떠오른 이 책


8936454048_f.jpg <내 동생>(주동민 어린이시, 조은수 그림>


내 동생
주동민

내 동생은 2학년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내가 2학년 교실에 끌려갔다.
2학년 아이들이 보는데
내 동생 선생님이
"야, 니 동생
구구단 좀 외우게 해라."
나는 쥐구멍에 들어갈 듯
고개를 숙였다.
2학년 교실을 나와
동생에게
"야, 집에 가서 모르는 거 있으면 좀 물어 봐."
동생은 한숨을 푸우 쉬고
교실에 들어갔다.
집에 가니 밖에서
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밥 먹고 자길래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는 구구단이 밉다.


저도 한때 열심히 만들었던 창비의 '우리시그림책' 시리즈 두번째 책.

시리즈 중에서 아마 제일 인기없는 책일걸요? ;;
하지만 왠지 제 이야기 같아서, 저는 이 책을 가장 좋아했어요.
이 책에 대해서는 제가 몇년 전 썼던 글이 있어요.


구구단 외우기는 아홉 살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9단까지 몽땅 외워야 한다니요. 1단, 2단까지는 잘 외웠는데
3단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다음 4단과 5단은 벌써 외웠는데, 3단 때문에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짜증이 부글부글 일었습니다.

그림책 <내 동생>은 구구단을 못 외우는 동생과 그것 때문에 망신을 당하면서도 그저
“구구단이 밉다”고 말하는 오빠의 마음이 잘 담긴 책입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시는 1991년 경산 부림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주동민 어린이가 썼습니다.
십여 년이 흘러 그림책으로 어린이 독자들과 다시 만난 셈이지요.
이 그림책을 읽고 있으면 구구단을 외우던 그 시절로 어김없이 돌아갑니다.
학교에서 혼이 나고도 집에 와선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밥 먹고 낮잠을 자버리는 철없는 동생은 어린 시절의 나 같습니다.
깨우지도 야단을 치지도 못하고 그저 이불을 덮어 주는 오빠는 우리 오빠입니다.

어린 시절, 오빠와 참 많이 다투었습니다. 오빠가 밉고 무서웠습니다.
나보다 세 살 많고 힘도 센 오빠는 나를 놀리기도 때로는 못살게 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표현이 서툴렀을 뿐 마음속으로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있었겠지요. 따뜻하게 보살피는 마음도요.
어른이 되고서야, 어린 동생을 늘 사랑해온 오빠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쓸쓸하거나 힘들 때 이 그림책을 펼치면 와락, 눈물이 고이곤 합니다.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며 그저 구구단이 밉다는 오빠의 독백에서,
아직 어린 오빠 스스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을
동생을 향한 애정이 가슴 가득 차올라서요.

오빠가 덮어준 그 이불의 온기가 가슴 깊이 자리잡아,
가끔 구구단이 3단에서 막힐 때마다
“그까짓 것, 좀 틀리면 어때!”
하고 응원을 보냅니다.
그래요, 우리는 힘든 일이 있어도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
보살핌을 받았던 더운 순간들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_2011-08-02







언니와 동생 이야기도 떠올라서 덧붙여 봅니다.
오래된 명작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따뜻한 책.


%BC%F8%C0%CC%BF%CD%BE%EE%B8%B0%B5%BF%BB%FD_03.JPG?type=w773 <순이와 어린 동생>(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신발 신겨 주는 것 좀 보세요.
하야시 아키코는 어린아이의 몸짓을 정말 자연스럽게 잘 그립니다.
사실은 이런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그냥 그리지 않았지요.


순이와어린동생_01.JPG


하야시 아키코가 직접 찍은 이 사진 속 아이들은 하야시 아키코의 조카들이에요.
우리 나이로 두 살, 일곱 살 정도 되었을 때래요.
이렇게 동생을 돌보느라, 순이의 마음은 조금 무거울지도 몰라요.
실제로, 이 책의 글을 쓴 쓰스이 요리코는 이 책을 두고,
여동생이란 '귀찮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했지요.
동생보다는 언니지만 그래도 역시 어린아이일뿐인 순이는 결국 동생을 잃어버리고-.


순이와어린동생_06.JPG


이렇게, 텅 빈 골목을 바라보는 순이는 얼마나 불안할지.
사실 어른의 눈높이로 보면 낮은 담벼락, 작은 골목일 뿐이겠지만
순이의 눈에는 적막하고 두려운 공간입니다.


순이와어린동생_0.JPG


순이의 어린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놀이터에서 흙을 만지며 놀아요.
책에서는 아주 작은 장면인데, 저는 이 동생의 모습이 참 우스워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장면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진짜, 어린 시절 내 모습 같아서.

그리고 마침내,


순이와어린동생_04.JPG 괜찮아. 내 동생. 언니가 왔어.


언니 품에 꼭 안긴 동생도, 동생을 꼭 안은 순이도
모두 괜찮아. 엄마가 올 때까지 참 잘 기다렸구나.
(저 뒤에 조그맣게 엄마 모습이 보이나요?)

힘들 때 이 책을 보면, 어린시절이 생각나면서 위로가 됩니다.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고도 하고,
옛날 일은 다 지나가버린 일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어린 시절을 돌이켜 추억하는 일 따위는 아무런 쓸데도 없는 일인 것만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이였기에 어른이 되었고
이렇게나 자라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선배,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돌이켜보면 그때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 같고 그래도
그동안 잘 자랐다고,꾸역꾸역이지만 잘 살아왔다고,
그러니 조금쯤은 실수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고
이 책은 어린아이였던 나를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아요.


순이와 어린 동생은 지금 이렇게 자랐다고 합니다.


순이와어린동생_02.JPG






이렇게 첫번째 편지를 마칩니다.
첫번째니까 좀 멋지게 써야 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써볼까 망설였어요.
결국은 그냥 갑자기 생각나는 대로 써버려서 제멋대로인 편지가 되고 말았지만...
차곡차곡 모아둔 그림책 이야기를 한 달에 한두 번, 좋아하는 분들께 보내드릴게요.
이럴 땐 어떤 그림책이 좋아? 라든지, 이런이런 내용의 그림책이 필요해, 라든지
답장을 주셔도 참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