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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지 Sep 18. 2016

그림책과 오빠와 나

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1_2015년 7월 30일



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1_2015년 7월 30일



아래 책을 보다가 문득, 우리 오빠가 생각났답니다.
그래서 두서없이 첫 편지를 이렇게 써봅니다.

 





<종이로 만드는 비행기의 역사>(R.G. 그랜트 지음)


제겐 오빠가 있는데요.
어렸을 때, 오빠한테서 생일 선물로 직접 만든 비행기 스크랩북을 받았어요.
스케치북 두세 장 찢어서, 여기저기서 오려낸 비행기를
서툰 손으로 붙여놓았었지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엉엉 울고, 엄마한테 일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껏 짐작도 못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오빠는 나한테 엄청 소중한 걸 줬었네' 하고.
지금도 친정에 있는
어린 시절 쓰던 작은 책상의 서랍 속에는
그 스크랩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듯, 이 책을 자세히 보자면
우선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



요렇게, 비행기 모형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요. 무려 50종!


책 소개를 보면,


‘플라이어’부터 21세기 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보잉 드림라이너와 F-35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행기들의 개발 과정을 되짚어봄으로써 인간의 비행사를 정리해놓고 있다.

       

 지만, 다 필요없고 그냥 이 도면들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우리 오빠와 같은 아이들이라면
 엄청나게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종이로 만드는 역사' 시리즈예요. 기차 편, 자동차 편도 있답니다.


      




오빠 생각이 나서 문득, 이어서 떠오른 이 책


<내 동생>(주동민 어린이시, 조은수 그림>


내 동생
 주동민
 
내 동생은 2학년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내가 2학년 교실에 끌려갔다.
2학년 아이들이 보는데
내 동생 선생님이
"야, 니 동생
구구단 좀 외우게 해라."
나는 쥐구멍에 들어갈 듯
고개를 숙였다.
2학년 교실을 나와
동생에게 
"야, 집에 가서 모르는 거 있으면 좀 물어 봐."
동생은 한숨을 푸우 쉬고
교실에 들어갔다.
집에 가니 밖에서 
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밥 먹고 자길래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는 구구단이 밉다.



저도 한때 열심히 만들었던 창비의 '우리시그림책' 시리즈 두번째 책.

시리즈 중에서 아마 제일 인기없는 책일걸요? ;;
하지만 왠지 제 이야기 같아서, 저는 이 책을 가장 좋아했어요.
이 책에 대해서는 제가 몇년 전 썼던 글이 있어요.


구구단 외우기는 아홉 살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9단까지 몽땅 외워야 한다니요. 1단, 2단까지는 잘 외웠는데 
3단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다음 4단과 5단은 벌써 외웠는데, 3단 때문에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짜증이 부글부글 일었습니다.
 
그림책 <내 동생>은 구구단을 못 외우는 동생과 그것 때문에 망신을 당하면서도 그저
 “구구단이 밉다”고 말하는 오빠의 마음이 잘 담긴 책입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시는 1991년 경산 부림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주동민 어린이가 썼습니다. 
십여 년이 흘러 그림책으로 어린이 독자들과 다시 만난 셈이지요. 
이 그림책을 읽고 있으면 구구단을 외우던 그 시절로 어김없이 돌아갑니다. 
학교에서 혼이 나고도 집에 와선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밥 먹고 낮잠을 자버리는 철없는 동생은 어린 시절의 나 같습니다. 
깨우지도 야단을 치지도 못하고 그저 이불을 덮어 주는 오빠는 우리 오빠입니다.
 
어린 시절, 오빠와 참 많이 다투었습니다. 오빠가 밉고 무서웠습니다. 
나보다 세 살 많고 힘도 센 오빠는 나를 놀리기도 때로는 못살게 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표현이 서툴렀을 뿐 마음속으로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있었겠지요. 따뜻하게 보살피는 마음도요. 
어른이 되고서야, 어린 동생을 늘 사랑해온 오빠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쓸쓸하거나 힘들 때 이 그림책을 펼치면 와락, 눈물이 고이곤 합니다. 
말없이 이불을 덮어주며 그저 구구단이 밉다는 오빠의 독백에서, 
아직 어린 오빠 스스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을
동생을 향한 애정이 가슴 가득 차올라서요.
 
오빠가 덮어준 그 이불의 온기가 가슴 깊이 자리잡아, 
가끔 구구단이 3단에서 막힐 때마다
 “그까짓 것, 좀 틀리면 어때!” 
하고 응원을 보냅니다. 
그래요, 우리는 힘든 일이 있어도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
보살핌을 받았던 더운 순간들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_2011-08-02







언니와 동생 이야기도 떠올라서 덧붙여 봅니다.
오래된 명작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따뜻한 책.


<순이와 어린 동생>(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신발 신겨 주는 것 좀 보세요. 
하야시 아키코는 어린아이의 몸짓을 정말 자연스럽게 잘 그립니다. 
사실은 이런 작은 동작 하나하나도 그냥 그리지 않았지요.



하야시 아키코가 직접 찍은 이 사진 속 아이들은 하야시 아키코의 조카들이에요. 
우리 나이로 두 살, 일곱 살 정도 되었을 때래요. 
이렇게 동생을 돌보느라, 순이의 마음은 조금 무거울지도 몰라요.
실제로, 이 책의 글을 쓴 쓰스이 요리코는 이 책을 두고, 
여동생이란 '귀찮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했지요.
동생보다는 언니지만 그래도 역시 어린아이일뿐인 순이는 결국 동생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텅 빈 골목을 바라보는 순이는 얼마나 불안할지.
사실 어른의 눈높이로 보면 낮은 담벼락, 작은 골목일 뿐이겠지만
순이의 눈에는 적막하고 두려운 공간입니다.



순이의 어린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놀이터에서 흙을 만지며 놀아요.
책에서는 아주 작은 장면인데, 저는 이 동생의 모습이 참 우스워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장면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진짜, 어린 시절 내 모습 같아서.
 
그리고 마침내,


괜찮아. 내 동생. 언니가 왔어.


언니 품에 꼭 안긴 동생도, 동생을 꼭 안은 순이도
모두 괜찮아. 엄마가 올 때까지 참 잘 기다렸구나.
(저 뒤에 조그맣게 엄마 모습이 보이나요?)
 
 힘들 때 이 책을 보면, 어린시절이 생각나면서 위로가 됩니다.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고도 하고,
옛날 일은 다 지나가버린 일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어린 시절을 돌이켜 추억하는 일 따위는 아무런 쓸데도 없는 일인 것만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이였기에 어른이 되었고
이렇게나 자라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선배,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돌이켜보면 그때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 같고 그래도
그동안 잘 자랐다고,꾸역꾸역이지만 잘 살아왔다고,
그러니 조금쯤은 실수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고 
이 책은 어린아이였던 나를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아요.

 
 순이와 어린 동생은 지금 이렇게 자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첫번째 편지를 마칩니다.
첫번째니까 좀 멋지게 써야 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써볼까 망설였어요.
결국은 그냥 갑자기 생각나는 대로 써버려서 제멋대로인 편지가 되고 말았지만...
차곡차곡 모아둔 그림책 이야기를 한 달에 한두 번, 좋아하는 분들께 보내드릴게요.
이럴 땐 어떤 그림책이 좋아? 라든지, 이런이런 내용의 그림책이 필요해, 라든지
답장을 주셔도 참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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