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야 Feb 21. 2024

그 날, 그 밤, 그 바다

그 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비가 오지도 흐리지도 않았다. 햇살이 적당한 나들이하기 좋은 날이었다. 늘 그랬듯 그런 날은 사람이 많았다.


오픈하자마자 슬금슬금 손님이 들어오더니 금세 가득 찼다. 모두 한껏 신경이 곤두선 채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두 번의 피크타임을 해치우고 고생했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다 같이 잔을 부딪쳤을 때였을까. 홀로 들어오는 당신을 보았다.


그 밤도 같은 시간에 찾아왔다. 바다를 밝히던 대교의 조명이 꺼지고 가로등과 가게들의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빠른 박자로 두들기는 음악과 스쳐 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 술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시시한 이야기들이었을 테다. 손님은 늘 다른 사람이었지만 하는 말은 그다지 달랐던 적이 없었으니까. 직원이 잘못 만들어온 피자를 받아 든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던 때, 당신이 말했다. 같이 밥 먹으러 갈래요?


그 바다는 늘 보던 바다였다. 여느 때와 같이 앞에서는 잔잔한 파도 소리가, 뒤에서는 스피커에서 쏟아져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소리로 넘쳤다.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서 나온 바닷가는 쌀쌀했다. 떨고 있는 손이 안쓰러워 벗어준 셔츠에 고맙다는 당신과 캔을 부딪쳤다.


나는 맥주도 말도 삼킬 줄밖에 몰랐지만, 당신은 삼킨 만큼 꺼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번화가의 소음이 잦아들 때까지 맥주는 마르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해가 떠오를 때쯤 모래를 털어냈다. 잠시간 바닷가를 걸으며 한결 따뜻해진 공기를 들이켰다. 이윽고 도달한 해변의 끝에서 긴 포옹 끝에 당신은 밝아오는 날을 향해 사라졌다. 그게 우리의 첫 포옹이었다.


그 모든 것이 당신으로 특별할 수 있었던,

그 날, 그 밤, 그 바다.

작가의 이전글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치이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