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우선 요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일상을 공유하는 사진과 글, 업무를 정리하는 일지, 우리의 추억을 남기는 사진, 하루의 사건과 감정을 적는 일기, 반복되는 루틴과 습관 일지, 개인적인 공부와 취미를 남기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수없이 많은 형태의 기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글로 남겨지는 기록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비교적 흔한 형태의 기록인 사진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쉽고 간편하게 저장한 사진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다시 꺼내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재구성할 때 사진은 비로소 어떤 실체가 생기고 의미가 생긴다. 또한 과정이 쉬웠던 만큼 쉽게 잊히기도 한다. 갤러리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사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반면 글로 남겨지는 기록은 과정부터 쉽지 않다. 우선 자리에 앉아 빈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마주하자마자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대면한다. 단어와 문장을 쥐어짜 내야 한다. 수많은 비문과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맥락을 붙잡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써낸 글자의 나열이 성에 차지 않을 때는 또 얼마나 허탈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글로 남는 기록은 의미가 있다. 소중하다. 단지 시간을 내어 공을 들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찾는 것이고, 어떻게 쓸지 선택하는 것은 방향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맥락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끝내 하나의 글을 완성하면 어딘가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보고 듣고 감각한 무언가를 하나하나 뜯어내어 구석구석 살피고 꾸역꾸역 다시 문장으로 조립하는 일, 그것은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고 오롯이 나의 것으로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이 아는 나의 변화를 온전히 그려낼 때, 하나의 글은 하나의 경험에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가 접하는 문장이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써 내려간 문장이 우리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멋지고 대단한 글인가는 중요치 않다. 글을 쓰는 손짓에 애타는 마음이 숨겨져 있을 테니까. 언젠간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바람이 있을 테니까.
서로를 모르지만 어딘가에 우리가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안도를 얻는다. 우리의 글이 흘러 흘러 서로에게 닿을 테니까. 당신이 녹아든 글이 나를 녹이고, 내가 녹아든 글에 누군가가 녹아들고, 흩어져 사라진 자리 곳곳에서 우리는 하나하나 다시 피어날 것이다. 같지만 같지 않은, 익숙하고 낯선 새로움으로.
다시 글을 쓸 힘을 얻는다. 간신히 오늘의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