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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Feb 18. 2021

마지막은 로맨스

배우 유재명

‘명당’(2018)까지 개봉하면 ‘봄이가도’(2017), ‘죄 많은 소녀’(2017)에 이어 유재명의 영화 세 편이 극장에서 동시에 상영한다. 배우로서는 좀 남다른 특별한 순간일 듯싶다. 그의 노련한 연기는 극의 윤기를 더하기도 하고 기름기를 빼주기도 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명당’의 흐름은 유재명의 넉살이 이완시킨다.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 분)의 절친인 구용식 역을 맡은 그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아휴, 얼마나 설레던지….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 제작에 처음부터 관여했는데, 어떤 부분은 시나리오보다 훨씬 풍부하게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전체 분량은 두 시간 반이 넘는 작품이지만, 대중들의 기호에 맞춰서 좀 빠르게 편집된 부분도 스피디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엔딩 신이 너무 좋았다. 어색하게 보일까봐 걱정이 많았다.


끝까지 꽁냥꽁냥 하는 두 사람은 선한 마음을 품고 늙어서인지 참 곱게 늙지 않았나?

배우라서 받는 특혜인데, 늙은 나의 미래를 분장한 것이다.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 싶었다. 참 덕이 있어 보인다고 할까. 오래 살고 싶다. (웃음) 그게 용식이의 마음이기도 하다. 용식이는 대의명분보다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 구용식 덕분에 박재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용식이는 줄타기를 한다. 나는 단순한 코믹 캐릭터가 아니기를 바랬다. 감독님도 믿고 응원해주셨다. 그래도 혹여 흐름을 조화롭게 만들지 못할까 고민했던 부분이 잘 나온 거 같다.


‘명당’은 과거의 이야기지만 ‘부동산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현재가 보였다. 타고난 장사꾼, 타고난 부동산 중개업자인 구용식은 명당의 가장 서민적인,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방 한 칸이 소원이었다. 전 재산이 500만원이었는데, 이 돈으로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집을 구하는데 돈을 다 쓸 수는 없어서 나이 마흔에 300만원을 들고 방을 구하러 다녔다. 어떤 부동산을 지나가다가 안에 계신 어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진심을 다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500만원에 10만원짜리 방을 주인 분과 잘 이야기해서 보증금 300만원으로 살았다. 내 인생 최고의 명당이었다.


‘명당’까지 개봉하면 무려 3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동시에 상영하는데.

영화란 참 매력적이고 어려운 작업이다. 장면의 가감, 대중과의 소통에서 중심을 둬야 할 포인트들, 선택점들… 그래서 영화란 작업에는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떠오른다. 내가 연기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공동작업인 것이다. 합이 다 맞아야 한다.


영화 ‘명당’ 스틸컷./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다소 무거운 극의 흐름은 구용식의 넉살이 이완시켰는데.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옆에서 박재상(조승우 분)을 보필하는 건 우정이고 의리였다. 그러 감정에서 나오는 그 친구의 자연스런 코믹한 요소가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갔으면 했다.


구용식의 대사에 함께 묻어가야 상대역 배우의 대사도 절로 흥이 났다.

코미디가 참 어렵다. 경계가 애매해서. 조금만 과했으면 침범을 했을 수도 있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덕분에 관객은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드라마에 잠시 마음을 내려도 놓으면서 몰입할 수 있었다. 구용식이란 캐릭터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렸는지?

‘비밀의 숲’이 끝나고 나서 그해 가을인가 살을 많이 찌웠다. 감독님한테 100kg로 찌우겠다고 했다. 건강을 해친다고 적당히 찌우라고 만류하셨다. ‘명당’의 꽃미남 사이에서 벌에 쏘인 것 같은, 퉁퉁한 얼굴이었다. 덩치는 산 곰탱이 같은데 얼굴은 해맑은 용식의 모습이 잘 나온 것 같다. (웃음)


‘명당’의 매력은 연기의 맥을 짚는 배우들의 호연이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조화가 너무 좋았다. 특히 배우들의 눈빛이 참 좋았다. 지성 씨의 눈에서 광기가 흐르는데 정말 칼을 많이 갈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김성균 씨의 눈빛에서는 게리 올드먼을 봤다. 백윤식 선생님은 그냥 앉아만 계셔도 독보적인…. 시너지가 참 좋은 현장이었다. 서로 받쳐도 주면서 가는. 지금도 배우들 각각의 눈빛이 다 떠오르다.


영화에서 시선을 뺏는 대목 중의 하나가 남자들의 한복이다. ‘수트빨’이라는 말처럼 ‘한복빨’이 느껴졌다. 다른 배우가 입은 한복 중에서 탐나는 의상이 있었는지?

흥선의 백색 한복. 너무 멋있었다. 지성 씨가 역할 때문에 체중을 많이 뺀 상태였는데 한복이 참 잘 어울렸다.


배우 유재명./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조승우 배우가 두 사람을 라바 캐릭터로 묘사했다.

잘 모른다. 귀여운 캐릭터인가?


물론 귀엽다. 빨갛고 짧은 캐릭터는 본인, 노랗고 긴 캐릭터는 재명이 형이라고 하면서 둘이 꽁냥꽁냥 하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다.

항상 박재상의 한 발 뒤에, 반 발 뒤에 서있었다. 재상이가 걸어가면 뒤에서 걸어간다. 내가 키가 조금 더 크니까 머리 반 정도가 올라가 있다. 갓이 좀 올라간 모습이 그런가…? (웃음)


조승우 배우와는 tvN 드라마 ‘비밀의 숲’(2017), JTBC 드라마 ‘라이프’(2018) 그리고  ‘명당’까지 연이은 세 번의 호흡인데 어떠한지?

첫 만남부터 승우는 무대에 많이 서서 그런지 많이 통했다. 대화를 따로 하지 않아도 호흡이 잘 맞았다. 진짜 행운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응원하고, 합을 맞추고, 지지해주고.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작품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언제든지 같이 할 수 있다면 좋다.


‘비밀의 숲’의 이창준은 유재명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창준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흰머리가 그때 생겼다. 이창준을 해석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는 엔딩을 모르고 찍었다. 주어진 대본 안에서 작가님이 주신 화두 ‘위악’, ‘개자식’이란 단어를 믿고. 내가 하나 힌트를 얻은 것은 이 사람이 외로운 남자라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tvN 드라마 ‘굿와이프’(2016)의 손동욱 변호사 역할도 좋았다. 전도연 배우와 재판을 하는 장면은 스파클이 튀는 느낌이 들 만큼 굉장했다.

3일 전에 연락을 받았다. 손동욱은 장애가 있는 변호사다. 흉내내기 하다 끝나버리면 득도 실도 안 될 수 있어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전도연 씨를 딱 만났는데 연기가 그냥 나왔다. 역시 멋진 배우들은 상대방의 연기를 끌어내주는구나 라고 느꼈다. 그렇게 첫 신에서 탄력을 받고 이후에는 자신감을 얻었다.


꼭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역시 마지막은 로맨스다. (웃음) 드라마 ‘라이프’의 염혜란 씨가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7)에서 내 아내로 나왔다. 도박에 빠진 남편으로 염혜란 씨를 엄청 때리는 역할이었다. 그 드라마 찍을 때 다음에 로맨스를 같이 하자고 했다. 혜란씨도 “선배님, 저 가능해요” 했다. 지고지순한 사랑보다 왜 그 ‘우묵배미의 사랑’(1990), ‘파랑새는 있다’(1997) 같은 삶의 바닥에 있으면서도 서로 아껴주는 그런 류의 로맨스를 하고 싶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80920123446037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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