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영 Apr 05. 2020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배우

배우 유태오

한국계 러시아인이자 그룹 ‘키노’의 리더였던 빅토르 최는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이다.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1980년대 초반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빅토르 최의 청춘을 담아냈다. 제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이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 전문지 ‘까이에 뒤 시네마’의 ‘2018 올해의 영화 톱 10’으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주인공 빅토르 최를 맡은 배우 유태오를 만났다.


독일 쾰른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이에서 태어난 유태오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연기를 공부한 한국 국적의 배우다. 스스로를 호기심이 많다고 소개하는 그는 자신이 연기한 ‘티비 첼로’(감독 소재영)의 백남준이나 ‘레토’(2018)의 빅토르 최처럼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과도 닮았다. 문득 그의 서재가 궁금해서 손길이 많이 닿은 책을 물으니, 최근에 읽은 열 권의 책이 입에서 주르륵 쏟아진다. 영화에서 나타샤가 빅토르 최에게 반했던 것처럼, ‘레토’를 보는 관객들은 유태오라는 배우에게 취하지 않을까 싶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재미있게 봤다. 처음 칸에서 봤고, 두 번째는 모스크바에서, 그리고 독일어로 더빙된 것까지 세 번을 봤다. 한글 자막으로는 오늘 처음 볼 것 같다.     


반정부 성향의 작품을 계속 찍어온 까닭에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아직도 가택구금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들어갔을 때, 러시아 제작사한테 계속 연락을 해서 감독님이 같이 오실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결국은 못 나오셨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것은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해주셨기 때문이다. 칸까지 간 것도 감독님이 잘 차린 상에 내가 숟가락을 얹은 느낌이고. 아직까지 작별 인사도 못 나눈 상황이라 많이 안타깝다.      


캐스팅된 후 3주 만에 러시아어를 소화해야 했다던데.

감독님이 애초부터 주장을 했다. 더빙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연기할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입 모양만 흉내 내면 감정 전달이 안 되니까 전달도, 교감도 해야 되니까 무조건 러시아어로 소리를 외치면서 해야 한다고. 이후에 후반 작업으로 연기 대역 목소리, 노래 대역 목소리까지 (더해져서) 그렇게 세 명이 한 인물을 만들었다.

      

‘빅토르 최’라는 한 사람으로 잘 어우러진 것 같다. 러시아에서는 6월에 이미 개봉한 것으로 안다. 현지에서 반응은 어떠했나?

좋았다. 러시아에서 90%는 좋아했다. 9대 1 정도. 나머지 분들도 싫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 취향이 아니라는 정도였다.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의 영웅과도 같은 존재다.

오디션 전까지는 TV 다큐에서 한두 번씩 나왔을 때 흘려 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노래도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고, 러시아에서 유명하다는 정도였다. 캐스팅이 되고 나서 조사해 보니까, 누구보다도 자기 음악과 아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강렬했다.      


영화 ‘레토’ 스틸컷./ 사진제공=엣나인필름


키릴 감독은 빅토르 최의 영혼과 닮은 배우를 찾았고 그 답이 당신이었다.

일단은 나의 해석만이기는 하지만, 문화적 뒷배경이 비슷하다. 내가 알기로 유럽 출신인 한국 사람들 중에서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많지 않다. 빅토르 최하고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이방인의 공허함, 외로움, 멜랑꼴리가 밑바탕이 됐던 것 같다. 감독님도 그 해석을 좋아하셨다. 영화 속에서 마지막 노래기도 한 ‘나무’라는 노래의 가사가 되게 시적이다. 록커로 알려져 있지만, 포크가수 못지않게 아름다운 가사들도 많다.   


빅토르 최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가?

그 곡하고, ‘나의 분위기’라는 두 곡을 제일 좋아한다.     


‘레토’는 음악영화답게 전체적으로 음악이 좋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음악 때문에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OST를 사고 싶을 만큼.

배급사 대표님에게 말하길 바란다. 꼭, 빨리 만들어 달라고. (웃음)     


영화에서 사자머리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후반부에는 조금 정리된 스타일이었는데, 약간 아쉽기까지 했다.

원본 자료가 있었다. 보여드리겠다. 러시아에 갔다 와서도 조사했던 폴더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 속 빅토르 최의 실제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면서) 이런 디테일을 다 재현했다.      


이런 헤어스타일은 미스코리아 대회 때나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 너무나 잘 어울렸다.

(웃음) 1980년대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 그런가? 영화는 거의 흑백으로 진행된다. 키릴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선택이다. 비슷한 시기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떠올랐다. 애국가 방송이 나오면 모두 그 자리에 멈춰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대통령 이야기를 입에 담으면 잡아간다고 했던 시절이다. 억압이 존재했던, 딱히 좋았던 시절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노스탤지어가 뭔지 모르겠다. 갑자기 그 말을 들으니까 억압인 시절이기는 하지만, 왠지 억압 밑의 사람들이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     


빅토르 최의 노래로 다시 돌아가자면, 영화에서 마이크(로만 빌릭)의 아버지가 아들보다 빅토르 최의 노래가 진솔한 인생을 담고 있다며 더 좋다고 했다. 같은 생각이다. 담백하고 투박하지만, 자꾸 솔깃해지는 노래들이다.

맞다. 영화에 나오는 ‘레토’ 말고, 빅토르 최가 자기만의 ‘레토’도 하나 만들었다. 마이너 코드는 슬픔을 표현하고, 메이저 코드는 밝은 하모니를 보여준다. 빅토르 최의 음악은 아이템과 내용은 밝은데, 슬프게 끝난다. 항상 에프마이너로 끝난다. 신기하다. 한 번 들려드리겠다. (스마트폰의 ‘레토’를 틀면서) ‘레토’를 듣고, 여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왜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지?’ 했다. 빅토르 최의 감수성인 것 같다.      


빅토르 최의 노래를 직접 듣고 보니, 감독이 굉장히 비슷한 음색의 목소리를 찾은 것 같다.

찾기 어려웠다. 그 분도 러시아 시골에서 온 알타이족이다. 동양인처럼 생긴 러시아인이 있다. 목소리가 제일 닮은 사람이었다.     


배우 유태오./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지만 전기영화보다는 음악영화 혹은 청춘영화로 더 다가왔다. 푸릇한 청춘의 이야기, 그래서 영화 제목이 ‘레토’ 즉 여름인가 했다.

그렇기도 한데, 살짝 한여름 향기의 노스탤지어가 있다. 감독님에게 그런 노스탤지어를 남겨두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레닌그라드가 지금은 상트페테스부르크이지만 딱 7, 8월 두 달만 따뜻하고, 나머지는 엄청 춥다. 게다가 따뜻해지기 전에 5, 6월에는 화이트 나이트(백야)라고, 밤이 두 시간밖에 없다.     


빅토르 최를 연기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빅토르 최와 닮았다. 그 시대의 향기가 묻어난다.

(웃음) 살짝 외계인 같은가?      


2019년에는 ‘레토’를 출발점으로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감독 김원석) ‘배가본드’(감독 유인식)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촬영 중인가?

‘버티고’는 끝났다. 크랭크업은 아니고, 내 분량은 다 찍었다.     


아내인 니키 리도 장편 극영화를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이디어도 항상 주고받고.     


‘양말 괴물 테오’라는 동화도 출간한 작가인데, 늘 한 짝씩 사라지는 양말에 쌓여진 상상력이 흥미로웠다. ‘넌 겁먹지 않는 방법을 좀 배우고, 친구도 만들어야겠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독일에서 성장기를 보낸 소년 유태오의 모습이 겹쳐졌다.

런던에서는 시를 가지고 연기를 가르친다. 시를 외우고, 무대에서 리사이틀 하고. 시를 취미로 쓰기 시작했다. 단순화시켜서 다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넣어서 쓰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독일은 오디오북 교육을 많이 시킨다. 그래서 나도 안데르센이나 그림형제의 동화를 듣고 자란 추억이 많다. 양말 한 짝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왜 아무도 안 썼나 싶어서 시로 쓰기 시작했다. 요새 나오는 어린이 동화는 교육 위주다. 그것이 너무 싫다. 목적이 교육이면 이야기 자체가 각색 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듣고 자랐던 동화책들은 너무 슬프다. 되게 괴기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의 상상력을 키워줬다. 그래서 무조건 그림이 슬프고, 멜랑꼴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안 하면 (출판을) 안 하겠다고. 나의 정체성인 것 같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62743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배우 유해진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