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해진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의 무대는 속초 출신의 40년 지기들이 부부 동반으로 만나는 테이블이다.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윤경호 유해진 등 7인의 배우들은 맛깔스러운 연기로 테이블을, 아니 스크린을 채운다. 쉴 새 없이 넘실거리는 유머의 메인 코스에는 유해진이 있다. 그의 감칠맛 나는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태수라는 인물은 한껏 뻣뻣한, 바른 생활 변호사다.
영화 ‘소수의견’(2014)에 이어 다시 변호사로 돌아왔다.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 (웃음) 그냥 낯설다. 직업만 변호사지 변호를 하는 역할은 아니어서 거부감은 없었다. 서울대는 안 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냐하면 내가 못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 오글거려서…. 변호사라는 것도 좀 그런데 거기에 일류대를 나왔다면…. 관객들이 믿어줄까, 웃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있었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너무 재미있게 봤다. 언론시사 때 처음 봤는데,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품들도 소중하지만 이번 작품은 참 하기를 잘했다 싶었다. 보고 나서 마음이 되게 편했다. 참 좋은 작품인 것 같다. 좀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나의 느낌은 그렇다.
‘완벽한 타인’(2018)은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2016)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사실 외국 문화에서는 가능할 수 있는데,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게임이다. 우리 관객들이 수긍하고, 끝까지 관심을 갖게 하느냐가 제일 큰 과제였다. 일이 순차적으로 터지는 것도 덜 어색해야 했고. 작가님과 감독님이 그런 장치들을 영리하게 선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도 쫄깃하지만, 너무 밋밋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웃음의 포인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과제가 있었다.
‘완벽한 친구’에서 ‘완벽한 타인’으로 돌변하는 블랙코미디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미디가 블랙코미디다. 말장난이나 분장으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주는 웃음이 좋다. 박장대소가 아니더라도, 흐릿한 미소만 짓더라도 그런 웃음이 낫다. 또 이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들이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꽤 있다.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라면?
인간의 못돼먹은 본성이 월식과 같다는 것처럼,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다시 보이고야 마는 그런 것,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느꼈다. 다들 모르는 척하면서 저렇게 살지 싶었다.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영화다.
한껏 뻣뻣한, 극히 보수적인 남편 때문에 문학에 첨벙 빠져버린 아내 수현 역의 염정아와 부부 호흡은 어떠했는지?
생활에 밴, 늘 그렇게 살았던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편했다. 자기 색깔을 저한테 은근히 묻히면서…. 진짜 너무 고마웠다.
영화 ‘전우치’(2009)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인가?
‘간첩’(2012)도 같이 했다. ‘전우치’ 때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아유, 참 나이스 하시구나, 그리고 연기를 참 똑부러지게 하는구나,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구나,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실제로도 참 좋다. 되게 깍쟁이 같아 보이지만 전혀 안 그렇다.
이번 영화에서는 콤비 플레이가 많았던 윤경호는 어떠했는지?
나는 경호가 참 좋다. 진짜 좋은 배우이고. 내가 어떤 제안을 했을 때, 못 받아주면 사실 힘들다. 그런데 너무 잘 받아주고 거기서 나오는 시너지가 상당히 컸다. 경호는 정말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고, 사람도 참 좋다. 그래서 둘이 재미있게 만들어 간 것 같다. 경호가 ‘말모이’(2019)에도 우정출연을 해줬다. 안경집 주인으로 잠깐.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완벽한 타인’을 계기로 해서,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배우다.
전라도 광주에서 세트 촬영을 들어가면서, 한 달 내내 배우들이 같이 지냈다고 들었다.
예전에 ‘삼시세끼’ 게스트로 가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이)서진씨는 까칠하고 바른 말만 하고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같이 생활하면서 마음이 좋은 사람이란 것을 참 많이 느꼈다. 사실 이런 작업은 앞으로도 극히 드물 것 같다. 처음에는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했는데,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간들이 극에 잘 녹아든 것 같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나 뮤지컬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그대로 무대에 올라서도 될 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무대를 떠난 지 오래 돼서 두렵다. 무대는 항상 그리워만 하는 대상인 것 같다.
블랙코미디란 점 말고도, ‘완벽한 타인’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되게 화려하고, 멋있는 건물도 좋지만 도시에 다 큰 건물만 있으면 예쁘지 않다. 그런 맥락이다. 이 작품처럼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는 작품도 필요하다. 이 영화는 자기 색깔을 갖고 있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린 대본이 참 좋았다.
SBS 드라마 ‘토지’ 이후로는 드라마 출연작은 없다. 영화만 고집하는 것인지?
약간 두렵기도 하다. 드라마를 안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너무 이쪽 일을 해서 인이 박였다고 해야 하나…. 영화 리듬에 너무 익숙해졌다. 영화랑 드라마는 환경이 상당히 달라서 두려움이 있다. 적응의 문제가 제일 크다.
‘안시성’(2018)으로 남주혁을 만났을 때, ‘삼시세끼 고창편’을 이야기하면서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에 두 사람의 투 샷이 담겨도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주혁이는 참 좋은 친구다. 그 또래 같지가 않다. 말수도 적고, 생각도 많고, 신중함이 있어서 좋다. ‘삼시세끼’ 때도 많이 느꼈다. 생각이 신중함이 있구나, 툭 뱉는 것이 썰렁하고…. 그래서 마음이 갔나? (웃음) 주혁이가 연기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주혁이가 고민이 많았다. 너무 큰 발자국을 떼려고 하지 말고, 한 스텝 한 스텝 밟으라고 했다. ‘안시성’이 잘 됐다니 좋았다.
‘안시성을’ 보면서도 유해진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사극 영화를 보면 어디엔가 유해진이 있을 것 같은 특유의 존재감이 있다.
(웃음)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이 내가 ‘실미도’(2003)를 한 줄 안다. 나는 안 나왔다. 그런데 ‘실미도’를 꼭 한 줄 안다.
유해진이라는 배우 앞에 갖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이름 앞에 ‘배우’만 딱 붙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배우 유해진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무슨 배우야?” 라는 말을 안 들을 때까지 연기를 하려고 한다. 길에서 만난 일반 분들이 “영화배우 유해진 씨네” 할 때 기분이 제일 좋다.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웃음)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55282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