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거듭 부풀어 오르는 픽사의 상상력

소울

by 박미영
영화 ‘소울’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 글에는 ‘소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 초 단골극장인 CGV 오리에 갔을 적의 일이다. 내가 전단지 진열대에 놓여 있던 ‘소울’의 전단지를 흘긋거렸더니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서 말을 붙였다.


“재미있대요. 나는 예매했지요.”

“네, 저도요.”

“픽사니까요!”


할머니의 생기 넘치는 혹은 소울 넘치는 한마디가 그 어떤 예고편보다 귀에 쏘옥 박혔다. 무려 22번이나 포근포근한 상상력으로 관객을 품었던 픽사가 아니던가. 픽사의 23번째 애니메이션 ‘소울’은 그 누구에게도 설렘으로 다가오지 싶다.


뉴욕의 중학교 밴드부 지도 교사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재즈와 사랑에 빠졌다. 학교 측에서 기간제가 아닌 정규직 교사를 제안하지만 조는 재즈 뮤지션을 꿈꾸기에 달갑지 않다. 아들의 불안정한 생계를 걱정하는 어머니 리바(필리샤 라샤드 분)만이 이 소식을 반긴다. 그런데 재즈 드러머로 활동하는 옛 제자 컬리(아미어-칼리브 톰슨 분)가 조에게 대타 연주를 제안한다. 조는 ‘하프 노트 클럽’에서 무아지경의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고, 그 결과 흠모하던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안젤라 바셋 분)와의 한 무대를 약속 받는다. 그런데 달뜬 마음으로 거리를 누비던 조가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서 죽음에 이른다.


‘머나먼 저세상’에 영혼이 되어 다다른 조는 새 인생을 시작하는 날에 찾아든 죽음, 즉 인생의 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의 삶을 향한 강한 집착(혹은 애착)이 ‘태어나기 전 세상’ 즉 ‘유 세미나’로 불리는 곳으로 이어진다. 조는 새로운 영혼들이 지구에 태어나기 전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과 관심사를 부여받는 ‘유 세미나’에서 멘토로 오인 받는다. 그리고 조는 지구에 가기를 거부하는 영혼 22(티나 페이 분)의 멘토로 정해진다. 영혼 22는 조에게 죽은 걸 후회하게 해주겠노라 엄포한다. 삶으로 연결되고픈 조와 삶과 단절되고픈 영혼 22의 동행이 시작된다.


‘소울(Soul)’은 ‘몬스터 주식회사’(2001), ‘업’(2009),‘인사이드 아웃’(2015)의 피트 닥터와 켐프 파워스가 공동 연출을 맡았다. 공간도 공간 속의 인물도 그 공간과 인물을 리드미컬하게 배치한 편집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소셜 네트워크’(2010), ‘미드 90’(2018),‘맹크’(2020)의 공동 음악감독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 그리고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가 소울 넘치는 음악을 책임졌다.


저세상은 영혼을 비롯해서 관리자들 그리고 모든 형상이 동글동글하다. 특히 ‘태어나기 전 세상’의 관리자인 제리(들)와 ‘머나먼 저세상’의 관리자인 테리의 표현미가 빛난다. 멘토의 지난 삶에서 영감 충만한 순간을 담은 ‘당신의 전당’, 새로운 영혼에게 지구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영감을 주는 ‘모든 것의 전당’ 그리고 육체와 영혼 사이의 공간인 무아지경까지 상상의 공간들이 차르륵 펼쳐진다. 반면 이 세상은 쭉쭉 직선으로 가득하다. 뉴욕의 양장점, 단골 이발소, 지하철, 재즈 클럽과 같은 실제 공간들은 세세한 디테일로 실감을 획득한다. 픽사는 문 윈드가 14번가와 7번가 교차로에서 광고판을 돌리고, 고양이가 햇살이 너무 좋아서 나른하게 늘어지는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저세상과 이 세상을 넘나드는 존재들도 진진한 볼거리다. 테리가 이 세상 즉 지구에 와서 심장 모니터와 계단 난간, 신호등, 콘트라베이스, 미술관 포스터에 깃든 모습은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또한 저세상에서 휘황한 배를 몰면서 국경 없는 신비주의자들과 함께 길 잃은 영혼을 집으로 돌려보내던 문 윈드가 이 세상에서 광고판을 돌리는 모습도 흥미롭다.


숱한 영혼 중에서 ‘22’가 선택된 이유는 조지프 헬러의 소설 제목으로 사용된 ‘캐치-22(catch-22)’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신조어였으나 현재는 딜레마나 진퇴양난을 뜻하는 보통 명사로 쓰이는 말로 영혼 22의 상황과 겹쳐진다. 그런데 우울한 인생인데도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인 조가 냉소적인 영혼 22의 구미를 돋운다. 수천 년을 있었던 ‘유 세미나’에서 22를 증오하는 멘토만 수천이다. 22는 마하트마 간디, 테레사 수녀, 무하마드 알리, 마리 앙투아네트, 코페르니쿠스, 칼 융, 에이브러햄 링컨, 아르키메데스, 조지 오웰처럼 쟁쟁한 멘토도 거쳤건만 인생을 살 자격이 없을까봐 걱정부터 앞선다.


음악이 운명과도 같은 조는 평생을 기다린 흠모하던 뮤지션과 한 무대에 선 날이 상상하던 기분과는 어쩐지 다르다. 도로테아는 어리둥절한 조에게 우화를 하나 들려준다. 젊은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바다가 어디냐고 묻고, 나이 든 물고기는 이곳이 바다라고 일러준다. 젊은 물고기는 이건 그냥 물일 뿐 자신이 원하는 건 바다라고 대꾸한다. 조는 평생 음악 속에 묻혀 지냈으면서도 뭔가 특별한 음악을 갈구했던 것이다. 옛 제자 컬리와 현 제자 코니에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전염시켰음에도. 그렇게 조는 음악에서 일보도 물러서지 않았다.


새로운 영혼들을 삶으로 연결하는 지구 통행증의 불꽃은 인생을 살 준비가 되면 채워진다. 피자 가장자리, 베이글 조각, 막대사탕, 이삿짐 트럭의 연락처가 들어간 전단지, 단풍나무의 씨앗 날개, 조의 어머니의 귀여운 실타래,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소리치던 남자…. 영혼 22가 세상과 감촉한 대상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더불어 코로나19로 체감한 마음만큼 중요했던 몸의 소중함도. 기실 무의미한 인생은 없다. 유의미한 일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똑같은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운 요즈음, 조가 뜨거운 눈물을 채 떨구기도 전에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도 매 순간을 즐겨야 하지만 문 윈드의 말처럼 잊지 말아야 할 지점도 있다. 즐거움이 집착이 되면 삶과 단절된다는 것을.


‘소울’에서는 낯익은 한국말을 들을 수 있다. 영혼 22를 거쳐간 멘토들의 명찰과 ‘호호만두’ 같은 간판으로 한글을 볼 수도 있기에 반갑다. 또한 오프닝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는 매들린 샤라피안 감독의 ‘토끼굴(Burrow)’은 사랑스럽다. 포화 상태인 땅 밑에서 더 깊이 더 더 깊이 굴을 파는 토끼의 표정과 몸짓이 풍부하다. 토끼가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두 귀로는 얼굴을 가리며 울먹울먹이는 모습은 보는 이의 심장까지 넘실거린다.


우리를 감정이 엉긴 순간과 소리로 울리는 ‘소울’. 거듭거듭 부풀어 오르는 픽사의 상상력이 경이롭다. 극장에 와서 거듭거듭 보아도 여러 생각이 새록거리며 떠오른다.


쿠키 영상은 1개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