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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Nov 03. 2019

영화관에서 책을 읽다

재개봉 영화들

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컷./ 사진제공=팝엔터테인먼트

재개봉 영화들이 반갑다. 따끈한 신작만큼이나 가슴을 콩콩콩콩 뛰게 한다. 영화관에서 얼마 전 마크 웹의 ‘500일의 썸머’(2009)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1995)을 다시 만났다. 참고로 이 영화들은 개봉년도에 극장에서 봤거나 영화제를 통해서 봤다. 못내 아끼는 작품들인지라 DVD로도 소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또! 재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책을 몇 번씩 읽는 경우는 많아도,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려고 극장을 찾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좋은 영화를 다시 만나는 일에 주저하지 말기를 바란다. 2년 전, 재개봉작이 아닌 개봉작이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2014)는 무려 4번이나 극장을 찾아가게 만든 작품이다. 장장 165분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11시간 내내 설레고 또 설렜다.       


만약 같은 작품을 보러 다시 극장을 찾는다면, 꼭 혼자 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좋은 영화는 같이 나누는 것도 좋지만 재회할 때는 오롯이 혼자가 좋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만의 책이 펼쳐진다.      


극장의 시커먼 입 속으로 들어가서 눈앞에 쏟아지는 화면을 다시 마주한다. 감각 기관이 온전히 열리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냥 관객이 아니다. 배우의 옅은 한숨에 실린 감정의 무게 중심을, 잔잔히 깔리는 배경음악이 만들어내는 그림을 그리고 묵음 처리된 배우들의 속삭임 등등을 읽기도 하면서 나만의 페이지들이 채워진다.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 천국’(1988)을 다시 펼쳤을 때는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라 들었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첫 음이 열리자마자 눈물이, ‘환상의 빛’에서는 유미코(에스미 마키코 분)와 이쿠오(아사노 다다노부 분)가 훔친 자전거를 사이좋게 녹색으로 칠하는 장면에서 탄식이, ‘500일의 썸머’에서는 톰(조셉 고든 레빗 분)이 사랑을 일궈낸 감정(감격)을 온몸으로 사랑스럽게 뿜어대는 장면에서 웃음이 넘실거렸다.      


‘500일의 썸머’에서 톰의 핫한, 뜨거운 그녀의 이름은 썸머(주이 디샤넬 분)다. 이미 개봉한지 오래된 영화라서 스포일러 걱정 없이 써보자면 톰은 결국 성숙한 어텀을 만나는 보너스를 누리게 된다. ‘혼자’서 ‘두 번’ 영화를 보러 간 덕분에, 영화관에서 책을 읽는 특별한 보너스를 누리게 된다.         


다음에 영화관에서 읽을 책 제목을 살짝 공개하자면,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00418

*텐아시아에 실린 칼럼을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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