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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Apr 04. 2020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영화 ‘워터보이즈’(2001)부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악인’(2010) ‘동경가족’(2013) ‘자객 섭은낭’(2015) ‘분노’(2016)까지 휘황한 작품들에는 늘 빛나는 츠마부키 사토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과 눈물로 관객의 심장을 사르륵 녹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신의 숨겨진 옆얼굴에 해당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긴장시켰다. 이 또한 기분 좋은 낯설음이었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하 ‘우행록’)에서는 참혹한 살인 사건의 민낯을 파헤치는 기자 다나카 역을 맡았다.


‘우행록’(2016)은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비롯해서 해외 유수 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제한적 상영으로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한국에서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 분들이 많이 봐 주셨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은 한국이다. (웃음)     


특히 당신을 기다리는 한국 팬들에게는 참 반가운 개봉일 듯싶다.

우선 나의 작품을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영화의 장점은 섬세한 심리 묘사다. 그런 부분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섬세한 부분들을 한국 관객들은 알아주실 거라 기대한다.      


‘우행록’을 선택함에 있어서 가장 끌렸던 점은?

결정적인 이유는 이시카와 케이 감독님이다. 감독님이 유럽에서 만들어서 상도 받은 단편영화를 봤는데 너무도 훌륭했다. 그래서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기존의 일본 영화들은 대체로 상당히 뜨거운 온도가 느껴지는데, 감독님이 그려낸 영상은 차가웠다. 그런 분위기가 ‘우행록’이란 작품에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원작 소설도 정말 재미있었다.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다.      


원작인 소설이 영화로 넘어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꼽자면?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에서는 ‘다나카’라는 인물이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다나카라는 인물의 실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은 인터뷰 형식이라서, 인터뷰 대상이 하는 말, 즉 이야기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내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에 다나카란 이런 캐릭터구나,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캐릭터로서 이해를 시켜야 하는 역할이다 보니 그걸 표현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스틸컷./ 사진제공=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때때로 다나카는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또한 카메라가 그의 얼굴에 집중할 때 어둑한 심연이 느껴졌다. 다나카를 연기하는 데 참고한 것이 있다면?

일단 각본을 읽고, 기자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하는지 신문사로 직접 찾아갔다. 기자들을 직접 취재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특별히 참고로 한 대상은 없다. 자연스럽게 그런 표정이, 그런 연기가 나온 것 같다.     


다나카는 화자(話者)가 아니라 청자(聽者)로서 주로 등장한다. 회상을 통해 개개의 서사가 드러나는 다른 캐릭터보다 여러 모로 그려내기 힘든 캐릭터였다.

난도가 높은 연기이기는 했다. 모든 대사를 의미 있게 전달하려고 하면 그냥 단순하게 대사가 되어버린다. 좋은 대사일수록 멋지게 표현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 덜어내는 쪽으로 노력했다. 영화에서 표현하는 인생의 짤막짤막한 순간이라는 것은 인생의 일부로서, 기억의 편린으로서 남는 것들이다. 그 사람 인생의 일부로서 단락을 표현하고자 주력했다.      


영화에서 “일본은 계급사회”라는 대사가 나온다. 동의하나?

계급사회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은 든다. 다만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우리들이 모르는 세계에 그런 계층이란 것이 일본에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에서 그 부분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했다. 감독님이 직시를 해서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의 작품 ‘악인’ ‘분노’에서는 특유의 밝은 이미지와는 다른 당신의 숨겨진 옆얼굴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낯설음이었다. ‘우행록’까지 포함해서 최근 몇 년 간 한국에 개봉하는 영화에서 당신의 역할은 내면에 천착하는 캐릭터들이다.

아무래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늘이라고 할까, 어두운 면모는 다들 갖고 있다. 그런 부분을 확실하게 직시하고 그리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다만 한 번 그런 역할을 맡다 보니까, 계속 그런 역할만 들어오는 것 같다. (웃음)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사진제공=풍경소리


당신의 ‘배우 인생’이 궁금하다.

20대 초반에는 영화라는 일에 접할 수 있다는 자체가 상당히 행복했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는 내가 연기를 하면서 받은 평가에 얽매였다.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30대가 되고 보니, 아이 같은 구석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유치한 부분이 좀 있으면 뭐 어때,  처음부터 다시 쌓아 나가면 돼, 나 자신을 흐름에 맡기면 돼, 너무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하지 말고…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순수하게 연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평생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웃음)     


‘워터보이즈’(감독 야구치 시노부)는 2001년작인데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다. 한결같은 동안이다.

동안이라서 39살인데도 어느 정도 젊은 역할을 맡을 수가 있다. 연기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사십이 넘어간, 가족을 꾸려서 생활하는 사람의 역할은 이미지가 나와 맞지 않을 거라고 관계자들이 생각해서인지 많이 못 맡고 있다. 그래서 어른스러운 역할을 맡기 위해, 동안의 이미지에 저항하기 위해서 수염도 기르고 있다. (웃음)      


하정우와는 10년 전 영화 ‘보트’(감독 김영남)로 인연을 맺었다. 만일 다시 호흡을 맞춘다면 원하는 장르가 있는지?

해외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 하정우 씨가 처음이었다. 한국인 친구 내지 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10년이 지난 터라 10년 전에 내게 없었던 얼굴을 보여주고도 싶고, 하정우 씨는 또 어떤 배우로 바뀌었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다. 같이 연기를 한다면 정말 형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형제 역할도 좋지 않을까 싶다. ‘보트’(2008)처럼 버디 무비를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고.      


당신의 얼굴에는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가 있다. 훗날 주름진 노배우가 되더라도 그 미소만큼은 여전할 것 같다. 팬들은 그 미소로 힐링을 받는다. 반대로 당신을 힐링시키는 존재가 있다면?

(웃음) “힐링을 받는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의 존재가 힐링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해서 계속 하고 있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이어가는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다만 30대로 넘어와서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또 무엇을 위해서 하느냐는 생각을 했을 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은 역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하고 기쁜 일이다. 그 느낌을 계속 받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66218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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