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선규
진선규의 미소에는 뭉근하게 푹 끓여낸 곰탕처럼 보는 이의 마음까지 뜨듯하게 데워주는 힘이 실려 있다. 사람맛이 나는 배우를 꼽자면 그의 얼굴이 둥실 떠오를 만큼… 작품을 함께한 배우들이 그를 친구로 꼽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 ‘극한직업’(2019)에서 진선규는 마약반의 수사 구멍에서 치킨집의 절대미각으로 거듭나는 마 형사 역을 맡았다. 마약반의 살림만 축내다가 치킨집의 기둥이 되는 반전미가 넘치는 캐릭터다.
이병헌 감독과는 작품으로는 첫 호흡이지만 앞선 인연이 있다던데.
4년 전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에 감독님은 나한테 엄청난 우상이었다. 처음 만났는데 술 한 잔 하면서 진짜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있을 때 만났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새벽 늦게까지… ‘스물’(2015)을 보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있지, 말을 어떻게 저렇게 맛깔나게 하지, 누가 쓴 거지. 내가 연극만 하고 있어서 영화에 대해선 잘 몰랐던 시기였다. 너무 좋아서 찾아봤더니 감독이 이병헌이었다. 그때는 배우 이병헌인 줄 알고, 진짜 우리나라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인가 그랬다. 그런데 아니었다. (웃음)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 마지막에 그랬다. 나중에 오디션이 있으면 꼭 보게 해달라고. 감독님과 꼭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극한직업’의 매력포인트를 짚자면?
일단 이병헌 감독님의 말맛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을 토대로 상황에서 나오는 웃음들. 시나리오에서는 ‘액션이 있네’ 정도였는데 시사회에 가서 보니까 액션이 많았다. 되게 좋은 액션들도 많고. 코믹과 액션이 적절하게 조화된 느낌이었다.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는 러브라인이 있기는 하지만, 멜로영화를 하고 싶다고 들었다.
내가 훈남이거나 잘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좀 거칠게 있다가 갱생이 되는 그런 느낌의 멜로를 원한다. 그래서 ‘파이란’(2001)을 진짜 좋아한다. ‘너는 내 운명’(2005)도. 그리고 멜로이기는 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영화는 ‘가위손’(1990). 조니뎁이 했던 에드워드.
판타지 영화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판타지 영화에서 탐나는 역할이 있었다면?
‘가위손’ 그리고 ‘캐리비안의 해적’. 뭔가 내가 없는, 내가 사라진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혹성탈출’의 시저처럼 모션캡처를 달고 하는 연기도 해보고 싶다. 현장에서 ‘시저’라고 불리기도 했다. 코가 낮고, 넓고 그래서 약간 유인원의 느낌이 있다. 머리를 박박 깎았을 때는 좀 세다 그랬는데 머리를 붙이니까 원숭이 털같이 있어서 더 닮았다고.
직업은 같은 형사지만 사뭇 다른,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의 조 형사 역도 인상적이었다.
일단 상황이나 인물의 가치관, 사고방식이 다 다르니까. 나는 연기할 때 설정을 잘 하지 않는다. 생각을 좀 가만히, 많이 한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그게 아마 계속 돌아가고 있어야지 싶다. 그렇게 인물의 사고방식을 쫓아가면 거기에 묻혀서 내가 보고 있는 눈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첫 코미디 연기인 듯싶다. 힘들지는 않았는지?
다섯 명이 모였을 때 신기할 만큼 호흡이 좋았다. 사람 자체가 너무 좋았다. 일단 (류)승룡이 형, (이)동휘는 말할 것도 없이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고, 코믹영화를 엄청나게 잘 했고. 나하고, (이)하늬하고, (공)명이는 잘 묻어갈 수 있게 액션과 리액션만 잘 하자는 거였다. 자기 것을 하기 위해서 어떤 설정을 들고 가는 것보다는 그 대사에 있는 느낌들로만 액션을 하면 리액션이 또 되고, 어차피 전체적으로 감독님의 큰 그림에 각각의 색깔들이 정확하게 우리한테 있기도 했고.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현장성으로 거의 다 맞췄다.
절대미남이 아닌 절대미각 캐릭터다. 영화 내내 ‘못생겼음’이 강조되어서 나중에는 세뇌되었는지 ‘마형사’가 등장하면 ‘못생긴 마형사’로 다가왔다. 앞머리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엄마가 아이 앞머리를 잘라주다가 계속 짧아진, 어정쩡한 길이감으로 주는 웃음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웃음 포인트로 고루 기능했다.
(웃음)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 맨 처음 테스트 촬영할 때 “감독님, 저 너무 못생겼어요. 괜찮아요? 관객들이 너무 못생겨서 연기를 보는 게 아니라 ‘아후’ 그러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감독님이 그랬다. “제가 보기에는 매력적인데요. 충분히 매력적일 거에요.” 나는 마지막까지 계속 의심을 했다. 진짜 괜찮은지 신마다 의심했는데 그게 캐릭터로 흘러가서 믿어지게 되고, 어떻게 보면 못생겼다고 하는 트라우마가 재미있게 각인이 된 것도 같다.
역할 때문에 요리를 배웠다고 들었다.
요리 아카데미에서 칼질이랑 (닭) 발골 연습을 했다. 연습을 한 닭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발골을 가르쳐주신 분이 발골만 할 게 아니라 그냥 한 번 다 튀기자고 했다. 바로 튀겨서 나온 치킨이라서 엄청 뜨거웠지만 그만큼 맛있기도 했다.
집에서도 가족에게 치킨을 해줬는지?
집에서는 못했다. 기름도 너무 많이 들고, 번잡스럽고…. 그래서 사 먹는구나, 그래서 시켜 먹는구나, 했다. (웃음)
만일 치킨 광고가 들어온다면?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정말 들어온다면 다섯 명이 다 같이 하면 좋겠다고. 왜냐하면 촬영이 없어도 우리는 계속 현장에 같이 있었다. 홍보할 때도 한 명이 빠지면 허한 빈자리가 느껴졌다. 그래서 만약 치킨 광고가 들어온다면, 돈을 조금 낮추더라도 다 같이. (웃음)
형제애가 물씬 느껴진다.
거의 가족이다. 감독님도 우리 보고 가족 같다고 그랬다. 승룡이 형은 큰형 더 높게 따지자면 아빠, 하늬는 약간 엄마 같았다. 전체 현장을 너무 잘 챙겼다. 그리고 우리 삼형제. 뭐 그런 느낌.
청룡영화제의 감동어린 수상 소감은 화제였다. 이 배우는 동료를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구나, 참 든든한 현장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사하다. 연기할 때 제일 좋은 배려는 상대가 리액션을 할 수 있게 정확하게, 정직하게, 진실하게 탁탁 주는 것이다. 그게 통하면 금세 친해진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친해지기 위한 긴 사설 없이도 친해진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든다. 이 사람하고는 계속 같이 할 수 있겠다. 어디서 만나도.
수상 이후의 변화를 꼽자면?
와이프하고 공통적으로 느낀 건데, 장 보러 가서 이것이 맛있겠다 싶을 때 가격표 안 보고 카트에 넣을 수 있는 것. 예전에는 더 싼 것을 찾았다면 지금은 이거 살까 했을 때 잠깐만 하지 않고, 알았어 하고 탁 넣을 수 있는 것. 아이들이 탁 집으면 넣을 수 있는 것. 후배들에게 밥을 사줄 수 있는 것. 고 정도가 변화인 것 같다.
극한 직업 혹은 극한 알바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한예종에 입학했을 때 서울에 연고지도 없었고, 학비도 빌려서 올라왔다. 바로 그냥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제대하고 복학해서 학교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꽤 오래 했다. 점심, 저녁까지도 해결이 됐다. 주중에는 학교에서, 주말에는 과천 서울랜드에서 설거지를 했다. 제일 힘들었던 때가 워커힐 벚꽃축제 아르바이트였다. 벚꽃길에 음식점들이 푸드트럭처럼 쫙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모든 접시를 한 곳에서 받아서 둘이서 설거지를 했다. 사람은 무진장 많고 장사는 너무 잘 되니까 닦아도 닦아도 계속 쌓여 있었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니까 얼른 리어카에 실어서 호텔 내에 자동세척기로 보내고, 나머지는 닦고….
이야기만 들어도 벌써 시큰해진다.
그래도 지금 와이프를 위해 많이 도와줄 수 있어서…. 되게 빨리 한다. 너무 빨리 하니까 와이프가 못 믿는다. (웃음)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 출신이다.
사실 벚꽃으로 따지자면, 제일 유명하다. 나는 체육 선생님이 될 줄 알았다. 체육교육학과나 용인대학교 격기과를 가려고 했다. 우연히 수능 치기 몇 달 전, 진해의 작은 극단에 놀러갔다. 연극의 ‘연’자도 모르는, 연기를 모르던 때였다. 내 친구의 친구가 그 극단에 있는데 놀러오라고 해서 갔는데 너무 재미있고, 너무 따뜻했다. 그런 온기가 좋아서 연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리고 두 달 연습을 하고 한예종에 붙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미안하게도 나만 붙었다. 내가 학교에 붙고 나서 선생님들한테 왜 뽑으셨느냐고 물었다. “참 촌스러운 녀석이 순수하게 생겨가지고 뭐든 가르쳐주면 잘할 것 같았어. 네가 연기를 잘한 건 아니야” 하셨다. (웃음)
무대를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다시 연극 무대에 오를 계획이 있는지?
사실 계획은 계속 잡고 있고, 실천이 되려면 내년…. 그리고 내가 지금 소속되어 있는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에서 예전에 했던 ‘나와 할아버지’를 지방에서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하고 있는데 지금도 나는 하고 있다. 다음 달에도 공연한다. (연극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367930
*텐아시아에 실린 인터뷰를 다듬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