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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Aug 19. 2020

모든 잎이 꽃이 되었던 로빈 윌리엄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 사진제공=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 글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유독 아픈 달이 있다. 올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8월이 되었다. 로빈 윌리엄스가 하늘의 별이 된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리움은 차곡차곡히 더해 간다. 올해는 로빈 윌리엄스가 가장 아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다. 단 하루라도, 떠난 이를 내 마음에 꼭 붙들어 놓을 작품으로.      


키팅이 죽은 닐의 책상을 열 듯, 나는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를 연다.      


미국의 명문 사립고 웰튼 아카데미에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 분)이 영어 선생님으로 부임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팍팍한 학교를 헽튼(지옥 학교)이라 칭한다. 숫기 없는 전학생 토드(에단 호크 분)는 기숙사의 룸메이트 닐(로버트 숀 레너드 분) 덕분에 찰리(게일 한센 분), 녹스(조쉬 찰스 분), 믹스(알레온 루지에로 분), 피츠(제임스 워터스톤 분), 캐머런(딜란 커스먼 분)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다.      


수업 첫날에 키팅은 휘파람을 불면서 교실 밖으로 학생들을 이끈다.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찬양한 월트 휘트먼의 시구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인용하면서 자신을 “키팅” 혹은 “오 캡틴, 마이 캡틴”으로 대담히 부르라고 한다. 키팅은 라틴어인 ‘카르페 디엠’을 되뇌며 학생들에게 현재를 즐기라면서 특별한 인생을 살 것을 당부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고,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누군가에게는 등골이 오싹한 키팅의 첫 수업이 끝난다.      


두 번째 수업일, 키팅은 학생들에게 교과서 ‘시의 이해’의 서문을 찢어내라고 촉구한다. 시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서문은 오늘로서 종지부를 찍자고. 키팅은 시는 아름답기에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울러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고 시와 미(美),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일깨운다. 그리고 키팅은 월트 휘트먼의 시구를 재차 인용한다.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닐의 눈빛이 유달리 반짝거린다.      


대학 입시에만 급급한 교장은 키팅의 비전통적인 교육법이 신경에 거슬린다. 동료인 라틴어 선생 맥칼리스터(레온 포낼 분)가 키팅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학생들을 예술가가 되도록 부추기는 건 위험하다고. 키팅은 학생들이 예술가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색가가 되었으면 한다고 답한다. 한편 소년들은 졸업 앨범 속에서 웰튼의 선배였던 키팅을 찾아내고는 그가 활동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 궁금증을 표한다. 키팅은 오래된 인디언 동굴에 모여서 위대한 시인의 시나 자작시를 낭송하는 낭만주의자들의 모임이라고 일러 준다. 결국 일곱 소년들은 야밤을 틈타 인디언 동굴로 향한다. 그곳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를 읊조린다.

  

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숲속으로 갔다.

깊이 파묻혀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살고 싶었다.

삶이 다했을 때, 진정으로 살지 못했다는 후회가 없도록.      


‘죽은 시인의 사회’(1989)는 톰 슐만이 각본을 쓰고 피터 위어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영화 초반에 떼를 지어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은 웰튼의 학생들이 포개진다. 똑같은 짙은 색 교복 차림도,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애쓰는 모습도. 그런데 소년들의 쳇바퀴 같은 일상에 주문과도 같은 말이 깃들면서 시나브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카르페 디엠.’      


키팅은 교탁 위에 우뚝 올라서서 말한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라고,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헤아리지 말고 너희의 생각도 헤아리라고, 그렇게 너희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사랑앓이를 하는 녹스는 서툰 시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반항적인 찰리는 학교 신문에 필명 ‘죽은 시인의 사회’로 장난스레 기사를 끼워 넣는다. 수줍은 토드는 키팅의 욥(YAWP)에 힘입어 내면에 응축된 시상(詩想)을 마구 토해낸다. 키팅의 목소리에 학생들만 응한 것은 아니다. 라틴어 선생도 이제 교실을 나서서 학생들과 눈길을 산책하며 수업을 한다.      


소년들 중 닐은 가장 뜨거운 심장을 가진 소년이다. 닐은 고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의대 진학을 강요받는다. 닐의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을 설계하고도 아들의 의견을 구하는 법도 아들의 말을 채 끝까지 듣는 법도 없다. 닐의 붉게 상기된 얼굴에서는 체념과 서러움이 뚝뚝 배어난다. 닐은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연극에 대한 열정을 펼치지만 끝끝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뱉지 못한 채 삼킨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움켜쥔다.      


나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열여섯의 봄에 보았다. 극장으로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나에게는 로빈 윌리엄스의 첫 영화이기도 하다. 나도 친구들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극장을 나섰다. 극장에 거듭 가고 싶었지만 중학생의 용돈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는 동네 서점에서 코발트블루빛 표지의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성현출판사)를 샀다. 나는 책장을 넘기면서 영화 장면을 덧대었다. 정작 영화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꽃미모 소년들의 표정은 흐릿한데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키팅의 표정만큼은 또렷했다. 키팅의 엷은 미소와 흥얼거리던 휘파람도….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문장을 물들였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 표현은 통문장으로도 좋지만 특히 앞부분의 수식이 끝내준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눈앞에 선연히 빚어지는 문장이다. 로빈 윌리엄스의 배우 인생을 수식하는 구절로도 부족함이 없지 싶다. 그가 했던 한 잎 두 잎의 연기는 우리에게 온통 꽃으로 남았기에. 그 꽃들은 우리의 심장 깊숙이 파고들어 잔향을 남겼다. 책상 위로 올라서서 마지막 인사를 했던 소년들처럼 나도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저 한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로빈 윌리엄스 특유의 다감한 목소리가 귓가에 깊이깊이 울린다.      


“모두 고맙구나. 고맙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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