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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Nov 03. 2019

배우의 주름

틸다 스윈턴

영화 ‘비거 스플래쉬’ 스틸컷./ 사진제공=찬란

틸다 스윈턴을 처음 마주한 건 대학 1학년 때였다. 혼돈으로 가득찬 스무 살, 불쑥 강의를 제치고 극장으로 향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과거형으로만 존재하는 종로의 어느 극장에서 ‘올란도’(1993)를 봤다. 영화보다 그녀의 마스크에 매료되었다. 야릇하며 모호한 그러나 자꾸 그려지는 얼굴.      


다음 날 틸다 스윈턴과 닮았던, 이국적인 마스크의 친구에게 너를 닮은 얼굴을 찾았노라 말하며 영화 전단지를 내밀었다. 격하게 열광하는 나와 달리 돌아오는 반응은 미지근했다. 좀 더 정확히는 마뜩잖은 얼굴이었다. 나에게는 그때나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틸다 스윈턴은 최상의 찬사다.     


50편이 넘는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 절반 이상을 챙겨 봤고 특히나 그녀의 최근작은 빠짐없이 본 듯싶다. 올해만 해도 봄에는 ‘헤일, 시저!’(2016), 여름에는 ‘비거 스플래쉬’ (2015) , 가을에는 ‘닥터 스트레인지’(2016). 이쯤이면 사시사철 그녀를 만나는 듯싶다. 큰 역, 작은 역에 구애받지 않고 선택하는 그녀이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아주 가끔은 말이다. 자주 못 만나는 오랜 친구보다도 화면 속 그녀가 살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틸다 스윈턴은 미모를 갱신한다. ‘아이 엠 러브’(2009)의 엠마,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에서 이브, 최근작 ‘비거 스플래쉬’의 마리안은 더할 나위 없이 고혹적인 그녀를 뿜어낸다. 그녀의 얼굴에 슬쩍 담기는 주름마저도 아름답다. 배우의 아름다움이 아닌 배우의 주름이 탐이 난 것은 처음이지 싶다. 아마 시간의 무게가 드리워져 그 주름이 깊어지더라도, 최상의 연기를 펼치는 그녀에게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낼 것이다.

     

마치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처럼, 틸다 스윈턴의 얼굴에 그려진 주름을 그윽하게 바라보게 된다.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23360

*텐아시아에 실린 칼럼을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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