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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Nov 05. 2019

무명씨

덩케르크

영화 ‘덩케르크’ 스틸컷./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인물이 다른 시간 혹은 공간 축에서 끌어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덩케르크’(2017)는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시간 축에서 토미(핀 화이트헤드 분), 도슨(마크 라일런스 분), 파리어(톰 하디 분)라는 인물이 각각 이끌어간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감정선으로 이어진다. 길이가 다른 시간을 정교하게 직조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이 그의 이름처럼 놀랍기 그지없다.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전쟁영화의 익숙한 문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실재보다 과잉된 총탄과 포탄이 뿜어대고, 전의를 다지며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누군가는 영웅처럼 아니 신처럼 총알을 비껴가며 전장을 누비는 등등의 장면이 부재한다.        


문득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전쟁을 향한 젊은이의 로망이 아니라 그저 집안의 가난을 이겨보려고 월남전에 참전했던. 20대 초반의 앳된 병사였던 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진 70대가 되어서도, 뜨문뜨문 꿈속에서 가혹한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아마 오래전 그날도, 요즈음 꿈속에서도 아버지의 바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극 중에서도 토미의 입버릇처럼 굳어진 한마디이기도 했던.


‘덩케르크’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병사들의 생존, 즉 귀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더 세밀하고 뭉클한 감정들이 화면을 넘어 관객에게 밀려온다. 고로 가능하다면, 아이맥스(IMAX)로 볼 것을 추천하는 바다. 2D로 영화를 보고, 바로 그 다음날 아이맥스로 봤더니 그들 곁으로 바짝 다가갈 수 있었다. 한걸음만 내딛으면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고, 눈앞에서 굉음의 폭탄을 느끼며 온몸이 떨리기도 했고, 기름으로 칠갑한 병사가 불구덩이 속에 휩싸일 때는 마치 내 목줄이 타들어가는 듯 싶었다. 병사들의 죽음은 그 어떤 순간에도 눈물겨웠다. 혹독하고 메마른 전쟁은 기실 이름 없는 무명씨들이 내린 뿌리 위에 세워졌기에 더더욱.     


[박미영 작가 miyoung1223@naver.com

영화 시나리오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텐아시아에 영화 칼럼을 기고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72846

*텐아시아에 실린 칼럼을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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