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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Jun 17. 2020

담소의 주제는 '나'

어떤 인생이라도 해줄 이야기가 있구나, 감사하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심지어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네요. 특히나 제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분야가 아닌,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만난 분으로부터의 피드백이라 그야말로 부끄럽기도 하고 몸둘 바를 몰랐는데요. 무려 두 시간의 긴 대화 시간을 마치고 잠시 정신을 차려 생각해보니, 이와 비슷한 경험을 꼭 2년 전에 했었습니다. 


일하는 여자들의 플랜C 미니 컨퍼런스, 2018년 6월 16일

https://www.facebook.com/100001315318146/posts/1690985530955274


이 때 저는 방황하는, 사춘기를 맞은 30대 후반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장표 씩이나 만들어 수십 명의 여성 동료들 앞에서 발표했었는데요.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그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더 압축적으로 키워드로 표현해본 최초의 자리여서, 행사가 끝나고도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낯선 에너지로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 제가 당당하게 써두고 모두에게 가장 많은 환호를 받았던 키워드가 바로 #자체소속 이었죠.


그로부터 약 2년의 시간동안 (그 이전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연주자에서 IT스타트업 매니저가 되어 있었구요, 철저하게 오프라인 중심으로 생각하던 사고의 흐름이 완전히 온라인 기술 기반으로 바뀌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직무를 맡아 하다보니 '과거의 어떤 일들과 연결성'을 찾기도 했고,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엄청난 배움이었어요.


저는 지금 짧고 굵은 육아휴직 4개월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중 1개월을 이미 집 이사와 아이의 코로나 학기 뒷바라지와 저의 병원 출입으로 이미 소진한 상황이지요. 카톡 메시지가 살며시 도착한 그 날도 방학아닌 방학같은 주말을 아이와 함께 보내느라 지지고 볶고 있었는데요. 모르는 이름으로 도착한 그 메시지는 저와 헤이조이스에서 인연이 있는 어떤 분이 보내신 것이었어요. 참여 중인 프로젝트에서 멘토 인터뷰 과제를 해야 하는데 제가 떠올랐다고, 가능하다면 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멘토요? 멘토? 제가요?


그렇게 약속을 잡고, 동네 예쁜 카페에서 그 분과 오늘 만났습니다. 두 시간의 대화 시간 동안 잠시 그 분이 자기소개를 하신 것 빼면 줄기차게 제가 제 얘기를 했는데요, 원래 제가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오늘도 역시나 그 기세가 어디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분께서 적절한 (= 제가 말 많이 하기 아주 좋은) 질문들만 쏙쏙 골라서 잘 던지기도 하셨어요! 주절 주절 이야기 하면서도 '아, 이 쯤에서 끊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계속 덧붙이면 좋을 것들이 생각나서 주절 주절.


한 번씩 이렇게 제 자신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주어질 때면 가장 좋은 것이, 말하면서 저도 새삼스럽게 정리를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마음 먹고 어딘가 글로 표현하거나 이력서에 몇 줄 넣거나 갑자기 설명하려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더 많거든요. 방금 전 나누었던 긴 대화 중에서 스스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몇 가지가 있어서 잊기 전에, 날아가기 전에 얼른 붙잡아 두려고 합니다. 




저에게 P는 프로젝트죠,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무엇이든 그건 상관없어요

- 하나의 일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요, 그래서 계속 기획을 할 거예요

- 운영 업무를 했던 덕분에 프로젝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개안

- 처음에는 많이 듣고, 많이 물어보고, SNS에서 실시간으로 트렌드를 따라잡고 익히려고 했어요, 학습은 오히려 요즘 되어서야 '필요한게 무엇인지' 보이는 것 같아요


겪을 때는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압축적으로 저에게 팀 매니지먼트 스킬을 높여주었어요

-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많은 분들은 굳이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드니까요

- 어떤 어려운 팀원도 다 끌어안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어야 관리자 자격이 있는 거라고 혹독하게 저를 다루셨던 그 보스 덕분에

- 사장님의 아내이자 직원 고충 처리반으로 남편 회사 안살림을 했던 덕분에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는 것은 회사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양적 확장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추가 채용을 절대로 할 수 없어요

- 처음에는 업무를 나눠가지는 기분일 수 있지만, 곧 각자의 파이에 차고 넘치는 업무를 하느라 옆 사람을 돌아볼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이고, 그렇게 되어야 회사가 크고 있는 것이에요


내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야, 나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성장하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 '위임'이라는 단어로도 많이 표현하는데, 저는 '내 손을 털었다' 라고 할게요

- 저도 이번 휴직 전 맡았던 업무를 완전하게 정리하고 인계하면서 실제로 깊이 경험할 수 있었어요


현재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 매일 매일 누군가 내 뒷통수를 때리며 해코지하고 있지 않다면

- 늘 하고 있는 일들을 조금 더 효율화 하는 방법이라던가

- 내 눈높이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일들이라던가


(쓰다보니 벌써 휘발되어 기억이 안 나네... 만났던 분께서 정리한 것도 공유해주기로 하셨으니 그 때 마저 업데이트 해야겠다, 내 얘기인데 다 어디로 도망갔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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