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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Jun 19. 2020

떠나보낸 사람, 흘려보낸 사람

마흔 살이라서 그런가봐

2월에 써놓은 글인데 어째서 발행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던 날의 기분이 어제처럼 생생하구나.


하루에도 몇 번 씩 들여다보는 SNS 타임라인을 훑고 있다 보면 문득,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나,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다. 한때는 매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고 하던 이야기 이어갈 시간이 모자라 다음에 언제 또 만날까, 언제 마저 이 얘길 쏟아낼까, 그랬던 때가 있었던 사람들. 힘든 일이 있으면 생각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생각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나고, 멍하니 심심해지면 생각나던, 언니 오빠 동생 친구들. 어릴 때부터 알아왔던 사람도 있고 학교를 벗어나 만난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친했던 사람도 있고 지내다 보니 점점 가까워져 없으면 안될 것처럼 '그시절 단짝'으로 지내던 사람도 있네.


어쩌다보니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학교 동문들이 이어지기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한 동네 오래 살았지만 동네 친구라고는 손에 꼽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몇 번이나 방향 전환을 해서 그런지 조금씩 다 기억하고 조금씩 다 연락하고, 그리고 조금씩은 놓은 채 지낸다. 아쉽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다. 어떤 날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나의 인생이 길게 한줄로 늘어서 있고 중간에 뚝 잘리거나 끊긴 데 하나 없이 잘 연결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오래 오래 함께한 사람들이 지금쯤 내 옆에 가득하겠지, 그리고 단절 없이 이어지는 그 인연들에는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일 수 밖에 없겠지. 더 넓어지고 더 멀리 보고 싶을 때, 그 줄을 끊고 싶어졌을지도 몰라.


떠나보낸 사람을 생각한다. 물리적으로는 15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뜨거운 연애라도 하는 커플처럼 아쉽게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던, 당시의 일상 동료들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스스로 내게서부터 멀어져갔고, 누군가는 내가 잡고 있었지만 잠시 힘이 빠진 사이 스르르 흘러가 버렸고, 누군가는 내가 쥐고 있던 손을 펴버린 채 떠내려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었고, 누군가는 억지로 내가 밀어내며 반동으로 튕겨져 나왔다. 미워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만 다시 만나거나 되찾고 싶거나 다시 나란히 걸으며 함께 산책하고 싶은 마음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 '어떤 시절동안 참 고마웠던' 매듭 지어진 인연들.


흘려보낸, 또는 놓쳐버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금방 다시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살면서 그냥 스쳤던 '알고 지냈던 사이'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인연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욕심이 지나쳐 잡아둘 여력이 없었던 사람들. 마음을 표현했지만 그 마음을 계속 전하기엔 내가 역부족이어서 그냥 그렇게 마음만 가진 채로 어쩔 수 없이 '안면 있는 사이'로만 남아버린 그런 사람들도 생각해본다. 친구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었나? 때론 간절하게 원했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삶의 물살이 빨라져버린 때도 있었지만, 곰곰히 되짚어보면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었던 것일까. 우리가 '마음이 잘 통하는 지인'이 되었으면 했던 건 내가 나 자신에게 겉멋처럼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이었을까.


아끼던 사람, 한 때 무척 사랑하던 사람의 아이 사진을 휴대폰 화면으로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어쩐지 공허한 감정이 나를 놔주지 않는 날이었다. 그 사람은 절대로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의 배우자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조금씩 행복을 채워넣고 있다. 안타까움은 나의 몫이고 편협한 감정도 나의 몫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의 선택이 상처였음을 부인할 수 없고, 회복하고 싶은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멀리서 '행복을 비는 것도 아닌' 씁쓸한 맛을 계속 되새기게 될 거다. 알면서도, 풀리지 않는 그런 덩어리가 있다. 수없이 보낸 사람들 중에 언제나 목구멍에 걸리는, 그런 사람을 종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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