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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May 16. 2020

제목 없는, 오늘의 인스타 일기

사진 한 장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길게도 썼구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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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 이런 시국에 매일 병원을 가고 있다. 외래 선별 진료소가 입구부터 자리잡고 있고, 동네 앰뷸런스는 다 여기로 모이는 곳이다. 첫 날 응급실로 들어갈 때는 솔직히... 바이러스 창궐 이후 처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살갗을 스치는 것만 같은 기분에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다. 정신도 없는데, 동선 통제를 다 하면서 어찌나 야단스럽게 챙기는 것도 많은지, 안심이 되기보다는 더 불안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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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선생님들은 보안요원 분들부터 의사 분들까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목소리는 반 톤 더 강하게, 발음은 1.5배 힘이 더 들어가 있는 듯 했다. 그건 상냥하게 말하든 엄하게 말하든 상관없었다. 마스크가 그들의 표현력을 가로막고 있었고, 평소보다 더 위험하고 더 패닉한 환자들을 최근 몇 달 사이에 얼마나 많이 봐 왔을까 싶어 문득 마음이 아렸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채혈 후 링거 바늘 위로 테이핑을 몇 번 더 부탁하며 '제가 겁이 많아서'라고 중얼거리자, '저도 놓기만 하지 맞는 건 못해요'라며 생글 웃던 간호사 선생님이 계속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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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마주한 모든 과 의사 선생님들은 이전보다 두 배 쯤 더 자상한 느낌이었다. 나더러 젊으니까 잘 회복하면 되고, 초기에 일찍 왔다며 칭찬을 계속 해준다. 이 나이에 이상한 칭찬을 여러 번 들으니 나쁘진 않았지만 이게 그럴 일인가 싶어 왠지 심란했다. 그럴 일이 아예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남편 말대로 일단 잘 끝내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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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 가까이 사는 덕분에 통원치료도 여기로 직접 오는데, 주차장 들어가는 진입로 구석구석에 정말 많은 분들이 서서 약자와 코로나 환자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검사 받으려고 오셨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라는 팻말을 들고 온 몸에 비닐 방호복을 휘감은 채 땡볕에 내내 서서 적극적으로 손짓을 하고 있는 이 분들을 보면... 아, 그저 내가 조심해야겠다,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함께 존재하는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 분들 앞에서 나 하나의 개인의 즐거움과 일탈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저 분들이야말로 자의든 타의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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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회복은 미래의 일이고 다가오지 않은 일은 알 수 없으며 원래 인생이란 것이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도 어거지로 엮어본다면, 온 우주가 기운을 모아 나의 여름 여행을 제지해야만 했던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나의 의지를 내 몸이 꺾었다. 그만큼 다른 방향으로 내게 중요한 날들로 쌓이기를, 그리고 설령 그 뒤에 무엇이 오더라도 나는 담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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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_오늘은브런치대신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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