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씨 Sep 11. 2020

내 이야기 들어줄 단 한 사람

오래된 메모 꺼내오기

옛날 메모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2019년 봄의 미완성 글인데 1년 여 더 지난 지금 생각을 매듭지어 봅니다.


청소년들의 방황과 법의 울타리 안에서 그 아이들을 돕는 어느 분의 책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었다면. 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이 생각을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안전하고 위로가 되는 한 사람에게 걱정 없이 하소연하고 싶다. 


어떤 분들은 그 대상을 배우자로 하기도 하고 (당연히) 친구들의 역할이기도 하고 동료나 형제자매 중에서도 하소연을 받아주는 누군가는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해서 마음 속에 혹은 허공에 떠도는 마음들이 생기곤 한다.

 

나의 '안전한' 이야기 상대의 변천사를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부모님이었고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의 영역 역할(?)이 약간 달랐지만 두 분 모두와 이야기를 많이 했던, 운 좋은 케이스였다 - 그게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성인이 된 후 알게 되었지만)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베프가 있거나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는 그 역할을 깔때기같이 모두 남편에게 쏟아 부으려는 나도 모르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그게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몇 년 전에 깨달을 계기가 있었고, 지금은 적당한 거리의 지인들과 나누기도 하고 남편과 나누기도 하고 여전히 친정아버지와 나누기도 하면서 (몰빵이 아니라) 하소연-분배의-법칙을 나름대로 지키고 있다.


최근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승질'대로 처리할 수가 없어서, 기다려야 해서, 말해도 설득이 안 되어서,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아서, 앞에서 말한 것과 뒤에서 나온 결과물이 너무 달라서, 기대치와 퍼포먼스의 차이가 커서 등등등... 이유는 여러가지였고 그 와중에 질질 끌고 끝나지 않는 몇 가지 일들이 계속해서 내 정신(?)을 괴롭혔다. 집에 와서도 일을 붙잡고 있던 어느 날 밤,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올렸다, "안전하고 친밀하고 이해 가능한 술친구가 필요한 날".


그 동안은 사실 '안전'하고 '친밀'한 두 가지 요소를 갖춘 관계라면 '이해 가능'하다는 요소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인 줄 알았다. 경청에는 반드시 (공감을 넘어선) 상황적 이해가 뒤따라 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미안하지만) 남편과 이야기 하면서 제일 많이 느껴봤던 것 같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는 내 이야기를 흘려 듣지도 않고, 그가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나불나불 소비하거나 함부로 흘리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도 당연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도 잘 이입하고 상황적 감정적 이해를 하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그 간격을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그걸 부모님에게, 베프에게, 애인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급기야 남편에게 이를 강요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비난하곤 하였다. 다행히 나는 살면서 좀 더 나은 경험을 하고 아프지만 조금씩 성장하여 이전보다 관계를 약간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최고가 당신의 최고가 아닐 수 있음을, 당신의 한 마디가 나의 부족함을 찌르기 위해서가 아님을, 다만 우리는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정말 어렵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도 했다.


행복해지고 싶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건 뭔가 인생의 비전이나 사업 목표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관계에서도 우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을 찾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지 애써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자립에 대한, 지나가는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