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씨 Sep 08. 2020

아이의 자립에 대한, 지나가는 생각

오래된 메모 꺼내오기

옛날 메모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2019년 봄의 미완성 글인데 1년 여 더 지난 지금 생각을 매듭지어 봅니다.


 아이의 일이 되면 나는 어떻게  상황들을 대면할  있을까? 독립된  명의 사람으로 대하면서 객관적인 격려 혹은 배려있는 비판을 하고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주면서 지켜볼  있을까?

 아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지켜볼  있었다.  사이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어느새 8 아들을  엄마가 되었다.  자신을 아이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고, 내가 아이와 관계 맺는 방식을 전방위적으로 뜯어보며 파악할 계기들도 인생 중간 중간에 여러  있었다.  덕분에,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나는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은 편이었다.

 집은   대로 생각할 여지가 많은 가정이었다. 부부 사이의 일은 어떤지 몰라도 양가 식구들과 서로 왕래가 어느 순간부터 없었으며 (남편이 처가에 아내가 시가에 걸음을  하지 않는다는 ) 아내  이야기로는 아이들 성인 되고나면 갈라설 예정이라 했다. 양가에서 타박과 핀잔을 이따금씩 들으며, 서로 내적 친밀감 형성을 완성하지 못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들이 자랐기 때문일까.  아들은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작은 딸은 지나치게 자기 고집이 강했다.  아이들 각자가 부모 각자와 어떤 일대일 관계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잡고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관계를 짐작할 뿐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보면서 나는   집에서 아이들은 결정을 존중받는  하면서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그렇게 선택에 개입을 당한만큼  아이들은  책임을  일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계와 적정선은 어느 정도였어야 할까?  살이 되었을 즈음 혹은 아이가 어느정도 의견을 피력할 즈음아이의 선택과 책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까?  일이 아님에도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에 항상 생각했던 문제였다. 나라면  상황에 아이를 무조건 막았을까? 내버려뒀을까?  의견은 말하되 강제하지는 않았을까? 정말  자식이어도 그럴  있었을까?

 지켜보기 난감한 상황은 최근에도 일어났다. 이제 스무 살이  되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와 엄마의 정면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서구권에서는 20년을 당연하게 독립 연습을 시켜서  자립의 시간으로 뛰어드는 스무 , 우리나라에서는 이제부터 어른  준비를 시작하는 스무 . 반드시 서구권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서구 문화권에서도 가족의 특색에 따라 독립의 개념이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연습'하지 않으면 '선택' 하지 못하고 '책임'   없으며 '어른'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두 번의 연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우리 엄마 너무 보수적이야,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리고 엄마는 '아직도 철이 하나도  들고 코앞만 보고 선택하는  어떻게 그냥 ?' 사이에 다름아닌 '타투' 있었다. 남자친구도 자취도 모두  이후에 딸려있는, 비슷한 유형(?) 문제들일 뿐이었다. 스무  반년간 알바한 돈으로 등의 반판을 문신으로 휘감았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워지는 문신 아니고?' 라고 반문할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즉각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만약, 우리 아이가 자기가  돈으로  거라며 반신에 타투를 하고 나타났다면 나는 뭐라고   있을까? 타투는 나쁜 일인가? 돌이킬  없는 잘못된 선택이라 불리워야  일인가?


그 사연을 같이 알고 있는 한두 명의 지인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나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건 아이의 치기어린 행동이고 지금 막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의 원망을 들어줄, 지금이야말로 부모가 부모답게 결단해야 할 때였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동안 아이를 오냐오냐 해준 에미가 무른 탓이고, 애저녁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게 잡았어야 했다며 지금이 꺾어놓을(?)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달라질까? 아이가 바로잡힐까? 바로 잡힌다는 건 무엇일까, 그렇다면 지금은 삐딱하다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닫힌 현관문 뒤에 있는 사람 (영화 82년생 김지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