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메모 꺼내오기
옛날 메모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2019년 봄의 미완성 글인데 1년 여 더 지난 지금 생각을 매듭지어 봅니다.
내 아이의 일이 되면 나는 어떻게 그 상황들을 대면할 수 있을까? 독립된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면서 객관적인 격려 혹은 배려있는 비판을 하고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주면서 지켜볼 수 있을까?
잘 아는 집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사이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어느새 8살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 나 자신을 아이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고, 내가 아이와 관계 맺는 방식을 전방위적으로 뜯어보며 파악할 계기들도 인생 중간 중간에 여러 번 있었다. 그 덕분에,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나는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은 편이었다.
그 집은 그 집 대로 생각할 여지가 많은 가정이었다. 부부 사이의 일은 어떤지 몰라도 양가 식구들과 서로 왕래가 어느 순간부터 없었으며 (남편이 처가에 아내가 시가에 걸음을 잘 하지 않는다는 뜻) 아내 쪽 이야기로는 아이들 성인 되고나면 갈라설 예정이라 했다. 양가에서 타박과 핀잔을 이따금씩 들으며, 서로 내적 친밀감 형성을 완성하지 못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들이 자랐기 때문일까. 큰 아들은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작은 딸은 지나치게 자기 고집이 강했다. 그 아이들 각자가 부모 각자와 어떤 일대일 관계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집 엄마가 나를 잡고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 관계를 짐작할 뿐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보면서 나는 늘 그 집에서 아이들은 결정을 존중받는 듯 하면서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그렇게 선택에 개입을 당한만큼 그 아이들은 큰 책임을 질 일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계와 적정선은 어느 정도였어야 할까? 몇 살이 되었을 즈음 혹은 아이가 어느정도 의견을 피력할 즈음에 아이의 선택과 책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까? 내 일이 아님에도 그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에 항상 생각했던 문제였다. 나라면 저 상황에 아이를 무조건 막았을까? 내버려뒀을까? 내 의견은 말하되 강제하지는 않았을까? 정말 내 자식이어도 그럴 수 있었을까?
더 지켜보기 난감한 상황은 최근에도 일어났다. 이제 스무 살이 막 되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와 엄마의 정면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서구권에서는 20년을 당연하게 독립 연습을 시켜서 첫 자립의 시간으로 뛰어드는 스무 살, 우리나라에서는 이제부터 어른 될 준비를 시작하는 스무 살. 반드시 서구권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서구 문화권에서도 가족의 특색에 따라 독립의 개념이 다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연습'하지 않으면 '선택'도 하지 못하고 '책임'도 질 수 없으며 '어른'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은 한두 번의 연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우리 엄마 너무 보수적이야, 난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리고 엄마는 '아직도 철이 하나도 안 들고 코앞만 보고 선택하는 걸 어떻게 그냥 둬?' 사이에 다름아닌 '타투'가 있었다. 남자친구도 자취도 모두 그 이후에 딸려있는,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일 뿐이었다. 스무 살 반년간 알바한 돈으로 등의 반판을 문신으로 휘감았다는 그 집 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심장이 철렁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워지는 문신 아니고?' 라고 반문할 뻔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즉각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만약, 우리 아이가 자기가 번 돈으로 한 거라며 반신에 타투를 하고 나타났다면 나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타투는 나쁜 일인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라 불리워야 할 일인가?
그 사연을 같이 알고 있는 한두 명의 지인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나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건 아이의 치기어린 행동이고 지금 막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의 원망을 들어줄, 지금이야말로 부모가 부모답게 결단해야 할 때였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동안 아이를 오냐오냐 해준 에미가 무른 탓이고, 애저녁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게 잡았어야 했다며 지금이 꺾어놓을(?)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달라질까? 아이가 바로잡힐까? 바로 잡힌다는 건 무엇일까, 그렇다면 지금은 삐딱하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