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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Sep 14. 2020

천천히 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오래된 메모 꺼내오기

옛날 메모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2019년 봄의 미완성 글인데 1년 여 더 지난 지금 생각을 매듭지어 봅니다.


이번 달 최대의 당면과제는 아이방 정리이다. 지난 달까지 목표가 거실 책장정리였다면 (두박스 이상 버렸다 - 책장에서 책 말고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이번 달은 아이방 오래된 장난감과 옷 정리하기인데, 이것도 집안 정리라고 6-70% 정도 진행된 후에 진전이 없다. 꼭 이사한 후 집 정리 70% 쯤 해놓고 일단 살기 시작하면 그 후에는 굳이 애써 남은 정리를 하게 되지 않아서, 나머지 못다 한 짐 정리는 다음번 이사 때나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간혹 큰 장난감들은 아이와 합의해서 치우곤 했지만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어린 날의 놀잇감'들을 모두 정리하는 건 아이의 8년 인생(?) 중 처음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잘 놀던 장난감 하나 치우려면 눈물이 글썽해지고 (다시는 쓰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해서 못 치우겠다던 아이는 이제, 손길 안 가는 물건은 미련없이 밀어내고 새 자리를 만들어 새 놀잇감을 확보하는 데 더 관심을 가진다. 이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우고.. 아이 방 밖으로 장난감 잡동사니 상자 다섯 개쯤 밀어낸 것이 지난 2주 전 주말.


그러고 나서 2주 내내 베란다를 나갈 때마다 내 마음이 참으로 불편하다. 70% 정도 정리하고 (아이 마음 정리와 장난감 분류하기) 버릴 것을 온통 베란다에 산처럼 쌓아 두었는데 이걸 아직 교통정리를 못 하고 있는 거다. 버릴 것은 버리고, 누구 아는 집에 나눠 줄 것은 나눠주고, 중고로 팔 것은 팔고, 그렇게 싹 치울 마음이었는데 그 일들 자체가 은근히 소비하는 에너지가 많은 것이다. 평일에는 일 끝나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뒹굴다 잠들기 일쑤고 주말에는 아이와 돌아다니고 시간 보내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나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은 무슨 일이든 단계적으로(?) 하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어떤 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혹은 꼬박 이박삼일 몰아서 정리든 작업이든 하겠지만 (내가 그런 성향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이 못 된다는 슬픔, 난 너무나 몰아서 하는 스타일인데) 여의치 않는, 그리고 한 번에 모든 걸 다 해내겠다는 강박을 버릴 수 있다면, 주말마다 조금씩 하루하루 조금씩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이 미루지 않는다면 어느 시점에 다 정리하고 한쪽 공간이 깨끗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겠지. 역시 이 조급함도 좀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갑자기 집 정리 중에 인생을 생각해본다.


최근 합류한 회사에서 이전(불과 3-4년 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이럴 때이다. 나눠서 해도 괜찮아, 단계적으로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확실하게 목적지를 향해서 길 잃지 않고 나아가면 돼, 속도가 중요하지만 하고 있다는 것이 좀 더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일의 필요성 (저 잡동사니를 버리고 베란다를 깨끗이 하고싶다, 지나다니는 통로니까) 을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이지.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옆에서 떠든다 해도 얻어지지 않아, 시간 들이고 노력 들이고 해서 겪으면서 얻어야지, 그 또한 강펀치 날벼락처럼 겪으면 소용없어, 차츰 경험하면서 차츰 알게 되어야 그게 진짜로 내 몸에 남지.


한편으론 몸에 중독처럼 붙어있는 '빠른 실행'과 '결과물 생산'에 대한 강박은 내 마음 한 쪽에 여전히 웅크린 채로 느린 발걸음을 계속해서 타박하고 막막한 감정을 더욱 부채질해서, 결국에는 오히려 중도에 그만두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완료가 되지 않은 건 나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아직 진행 중라는 뜻이고 나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라고 계속해서 내가 내 자신에게 주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휘청이고 금방 무기력에 빠지고 금방 다... 손 놓고 싶어진다. 천천히 가는 건 괜찮지만 멈추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 느려도 된다는 합리화를 실컷 하다가, 어째서 사람은 이렇게 불완전해서 끊임없이 신경쓰고 살아야 하는가, 피곤해지기도 하는 날의 글이다. 정말로 생긴대로 산다는 건 어쩌면 '사회를 벗어나' 야생 정글로 뛰어들기라도 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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