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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Oct 08. 2022

더 많은 '엄마'들을 만나고 싶어요

일하는 엄마들에게 스타트업이 어울리는 이유

언젠가 다사다난한 이 시기를 책으로 엮을 때 꼭 서문에 넣겠다는 야심찬 생각으로 2020년 10월에 써둔 글입니다. 타이틀도 없이 부제만 "육아와 스타트업 라이프는 같은 힘을 키운다" 대충 육아 경력이 인생 난관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봐요.


“그래서, 애를 두고 나가서 일을 하겠다는 거야? 일은 팽개치고 집에서 애를 보겠다는 거야?”


세상은 언제나 나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입니다.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사과 먹을래, 배 먹을래? 할 거야, 말 거야? 꾸준히 배우든지 아니면 끊어! ...덕분에, 인생은 원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쪽은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은 머리와 마음에서 완전히 단념하는 연습을 반복했고, 일단 정한 것은 웬만해서 멈춤 없이 끝까지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매번 하나의 선택을 마치고 다음 선택이 다가올 때마다 점점 두렵고 무거웠습니다. 한 고비 넘어 간신히 적응하자마자 언제나 그 다음 파도가 나를 덮쳤습니다. 매번 날카로운 모양의 ‘채택’과 ‘기권’을 양 손에 든 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했습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순간의 기분은 마치 눈을 질끈 감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아찔했습니다. 결정이 반복될수록 불안이 높아지고, 경우의 수를 계속 따지게 되었습니다.


난이도는 유년기보다 청소년기가 높았고 이십대의 상황은 더 복잡했습니다. 물론 삼십대의 변화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매 결정의 순간마다 ‘이제 이보다 더한 일은 웬만하면 없겠지’ 하며 희망 아닌 희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지없이 기대를 무너뜨리며 더 고차원의 고민들이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나름 어려운 고비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고 믿던 그 때, 사실은 아직 ‘양자택일의 최고봉’을 만나지 않았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가 끝나기 직전 가장 강한 대마왕이 등장하는 것처럼, 인생 전반부 마지막에 맞닥뜨린 선택의 미션은 바로 ‘아이’ 또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생명체의 ‘생사’와 내 존재의 ‘미래’가 선택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Yes or No 로 골라야 하는 문제를 따로 지칭하는 단어가 있던가요? 둘 다 내게 목숨같이 중요하고 분리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네가 선택한 일이다’ 라는 책임으로 저에게 되돌아오는지 납득이 되지 않아 많이 속상했습니다.


쉽지 않은 이 문제는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가진 일종의 문법이었습니다. 여기에 철저하게 맞추든 격렬하게 저항하든 괴로움이 찾아왔죠. 겪어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난제를 앞에 두고, 처음에는 20대의 내가 줄기차게 외쳐왔던 대로 단호하게 일을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불가항력적으로 길 중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더군요. 마치 누군가 나에게 이번 문항만큼은 자유의지로 선택하거나 달성할 수 없는 문제였음을 가르치려고 작정한 것 같았습니다. 


연달아 통제 불가능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소위 말해 '집에 들어앉게' 되었습니다. 굳이 표현을 정제하자면 '가정에 머무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당시 내 앞에 놓였던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아이는 엄마가' 또는 '일을 선택한다면 그 책임을 엄마가'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필사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나에게는 고개를 들어 담장 밖을 내다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달의 뒷면이기만 할 줄 알았던 육아의 세계는 뜻밖에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과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 공존하는,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는 미치기 딱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갈림길이 줄지어 등장했습니다. 아이의 인생 전체가 나의 오롯한 선택에 완전히 달려 있다고 느낄 때면 두려움은 몇 배로 증폭되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글쎄, 이 사회에 대고 물어볼 수 있겠죠,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대개의 아빠들은 무엇을 하는지.


나의 시야는 좁아지고, 좁아지고, 좁아졌습니다. 어찌나 좌우의 폭이 좁아졌는지 더 이상 한 치 앞도 분별이 안되고 선택조차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회사에서 겪은 일들의 트라우마를 핑계삼아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정말이지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대로 뛰어내리거나, 전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중에서 선택했던 것인데, 이 발걸음이야 말로 나를 살아남게 한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긴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귀하게 얻은 것이 참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나처럼 자신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내가 잘나고 성공을 이루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조금 먼저 골짜기를 지났고, 이후의 길이 어디론가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걸음이라도 내딛다 보면 터널은 반드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지금의 내 일상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7살 여름을 막 지날 무렵 다시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숨죽였던 세포들을 깨운 건 세상을 바꾸려는 서비스들이 하나 둘 태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좁고 작고 감춰진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스타트업이 싹을 틔우던 시절이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무엇이든 기여할 영역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매칭 플랫폼 서비스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잘 안착하기 위해 나름 단념할 것과 지킬 것을 단단히 준비했죠. 각오한 것보다 더 많이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불안을 마음 한 구석 숨겨둔 채로.


스타트업 환경은 과거의 경험들과는 달랐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문제 해결을 위한 몰입으로 가득한 팀의 특성상 끊임없이 논쟁이 있었고 '모'와 '도' 사이의 수많은 중간 지점(멋있게 표현하자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혁신의 열쇠)을 찾기 위해 사활을 걸었습니다. 관철이나 포기, 둘 중 하나만의 길이 정답이라 생각했던 나의 익숙한 고정관념이 차츰 깨지는 순간들을 자주 만났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는 언제나 일부분처럼 동료들 모두 상황을 인정하고 조율하며 일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팀에서 경험하는 매일의 텐션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도는 다르지만 핵심 갈등 요소와 해결 방향은 내 몸에 배어 있는 무엇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이와, 남편과, 그 외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혀 온 장면들이 어쩌다보니 조직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는 것이었어요! 우리 각자는 누구의 선생님도 학생도 부모도 자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모였든 결국 하나의 공동체가 의사결정의 위계를 형성하고 사람을 움직여 성과를 내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나의 경험이나 배움들은 지극히 내가 속했던 환경 중심적입니다. 내가 직접 일해보지 않았던 큰 조직의 룰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생존 기간이 짧은 스타트업은 마치 어린 사람처럼 구성 요소들이 미숙하고, 운동 경기에서 체격이 큰 선수와 작은 선수의 몸놀림이 다르듯 변화의 속도는 깜짝 놀라게 빨라 말 그대로 하루 하루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예측은 불가능하고 책임은 무한한 것이 마치 영유아기의 어린 아이와 꼭 닮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던 당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팀은 서비스를 시작한지 3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서비스는 이제 겨우 3살 반이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말은 즉, 회사 대표도 3살, 직원도 3살 갓 지났다는 것입니다. 


3살 반, 그러니까 약 40개월쯤 된 유아는 어떤 정도의 발달 상태인지 혹시 알고 있나요? 그 무렵의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낼 만큼 누적된 어휘가 풍성하지 않습니다. 인지의 폭이 급속도로 넓어지면서 다양한 정보와 감정을 경험하지만 이를 분별하거나 인과관계를 파악하거나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나친 자유에 불안하고 지나친 강압에 폭발합니다. 선호도는 뚜렷한데 원하는 바를 얻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기싸움을 벌입니다. 자아가 솟구치는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충분히 학습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소위 말하는 ‘미친 4살’은 이렇게 생겨난다고 해요.


팀원도, 팀장도, 임원도, 대표도, 시스템도, 고객도, 모두 3살 반쯤 된 회사에서 나는 가끔 '어, 내가 어떻게 이 상황에 대한 솔루션을 이미 알고 있을까' 하는 순간들을 만납니다. 뜻밖에도 그건 아이를 키우느라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나에게 남겨준 내공의 근육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과 회복탄력성은 타고난 어떤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치열하게 (그리고 우울하게 하등의 쓸모가 없다 생각하며) 보내온 시간들 덕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날이 늘었습니다.


더 나은 성과를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경우에 따라 다르다 답하겠지만, 더 나은 과정을 얻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거예요, 다만 이를 드러내어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편적이더라도, 전지적 나의 시점 이야기라 하더라도 좀 더 나눠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나처럼 자신의 노련한 직관을 단지 느낌적 느낌이라고 치부하고 있을 수많은 경력보유 여성들에게, 일 가정 시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워킹맘들에게, 그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 사수 보스들에게, 무엇보다 그런 탁월한 식견을 가진 여성을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는 분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인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돌보며 일터를 향하는 나의 동지 여성들에게는 이미 혹독하게 단련된 내공이 충분하게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고 싶습니다. 큰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내공과 능력을 믿고 직장에서 마음껏 빛을 발산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2020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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