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힘이 어디서 왔냐면
스타트업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와 같다. 올라타는 것도 쉽지 않고 내리는 것은 더 어렵다. 뛰어내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땅에서 걷고 있을 때의 속도와 달리는 물체 위에서의 에너지와 저 멀리 무중력 우주에서의 운동감이 다르듯, 산책처럼 일상을 살던 사람에게는 불타는 열차를 붙잡는 일도 두렵겠지만 같이 화력을 생산하다 나 혼자 평지로 되돌아왔을 때를 견디기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스타트업 커뮤니티로 들어온지 이제 5년이 지난다. '서비스 기획이 뭐예요? 행사 기획이랑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라고 질문하던 생 초짜였지만 당시 나는 이미 아이가 7살이었다. 낯선 세계에서 다정한 친구들이 되어주었던, 그 때는 미혼이던 나의 동료들이 이제는 하나 둘 결혼을 하고 하나 둘 아이 엄마가 된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마음씨님은 어떻게 지금까지 해오셨어요?"
처음에는 동공 지진을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진실을 말하기에도 희망을 주기에도 나는 나 살기 바빠 간신히 여기까지 헤쳐온 경험 밖에 없었으니까.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받게 되면서 나는 답변의 지혜가 생겼다. "이 바닥에 들어온 덕분에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요즘은 이렇게도 덧붙인다. "그 때 저는 아이가 벌써 일곱 살이었어요."
막연한 표정으로 동료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는 나도 듣는 그도 알고 있다, 직접 부딪혀 겪어보기 전에는 실감할 수 없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평범한 직장보다 더 롤러코스터 같은 스타트업 생활을 아기와 함께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대 꽉 붙잡고 놓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깊이 깊이 자기 속을 파는 수 밖에 없다.
나는 터널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지 오래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덕분에 스타트업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감내할 것과 버릴 것을 확인해가며 비교적 삶의 주도권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일곱살 씩이나 될 때까지 이미 키운 것이 유효했다. 작은 생명체의 생존을 24시간 전전긍긍할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났고, 일상이 나를 단련한 덕분에 웬만한 사건도 나를 별로 두렵게 만들지 못했다.
며칠 전 대학교 3-4학년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스타트업으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일이 많을 때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질문을 받았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질문이었지만 나는 하나의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능력보다도 웬만한 변화에 끄덕 없는 맷집이 꼭 필요한데, 그 맷집은 아이를 키우며 얻었다"
여전히 일과 삶의 중간에서 우선순위와 선택과 조율을 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피곤하다. 삶의 밀도가 높을 수 밖에 없고 '나만 건사하는 일상을 딱 한 달만 누려봤으면'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한 번에 하나만 할 수 있기를, 한 번에 하나만 챙겨도 되기를 얼마나 많이 바라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 키우며 일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늘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는 그대들, 하지만 이미 복잡도가 너무 높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언젠가 한 팀으로 만나고 싶지만 차마, 감히, 권할 수 없는 잠재적 동료들. 순리대로(?) 느린 삶을 차곡 차곡 살지 그러냐고 하기에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너무너무 많은 빛나는 사람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군분투 하면 다음 세대에는 좀 더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질까?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물음을 혼자 생각하다 덮고 만다.
2022년 1월 의식의 흐름에 10월의 의견을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