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메모 꺼내오기
옛날 메모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2019년 여름의 미완성 글인데 1년 여 더 지난 지금 생각을 매듭지어 봅니다.
여름 일정 조율이 한창이다. 바쁠 때인 것도 맞지만 쉬어야 될 때인 것도 맞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까, 평소 몰아서 연차를 쓰는 법이 잘 없는 동료들도 여름 캘린더를 보면서는 여러 날을 고민한다. 나도 아이의 기나긴 방학과 입사 이후 떠나본 적 없는 주말들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날짜들을 맞춰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어릴 때 나 혼자 가지고 있었던 징크스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그 시절은, 마치 내가 어른이 다 된 것만 같던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었다. 롯데월드라는 놀이동산이 생긴지 오래되지 않았던 것 같고, 아직 부모님 없이 아이들끼리 멀리 나돌아다닌 적 없었던 나와 친구들은 '우리끼리만' 놀이동산을 다녀오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번번히 우리가 미리 정했던 날짜는 임박할 때마다 다른 일들로 방해를 받아 틀어졌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친구도 빠짐없이 가능한 날짜가 생겨 요즘 말로 '급번개' 처럼 다녀오게 되었다. 놀이동산의 시간 자체도 내겐 즐거운 기억이 되었지만, 그 원대한 계획을 그렇게 번개같이(?) 실행하게 된 과정이 나름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그 후에도 몇 번 '미리 계획한 날에는 막판에 가서 꼭 다른 방해를 받아 일이 안되고'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뚝딱 일이 진행되는 걸 몇 번 경험하면서 나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쥐방울만할 때이지만) 인생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봤자 소용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최소 고등학교 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 그 때의 생각이 여전히 (어느정도) 옳다고 믿고 있다. 물론 그 때 말하던 '계획하면 안돼' 징크스와 현재 내가 의지하는 '인생의 불명확함 - 혹은 예측불가능성' 과는 조금 다르지만.
삶이 원래 그렇게 좌충우돌이라는 것을 그 때쯤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귀여운 징크스는 그저 어떤 해프닝의 하나일 뿐이라고 믿으며, 나는 그 '징크스'만 피하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10대의 노력도 20대의 노력도, '노력한 만큼 너의 삶은 성장하고 달라질 것이며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는 세상의 메시지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쌓은 것이었다. 때때로 한번씩 누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듯 얻게 되는 작은 성공의 열매가 너무 달콤했고 그보다 더 크고 확실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빈틈없이 지어올렸다고 생각한 (고작) 레고의 성벽이 인생의 흔들림에 속절없이 무너질 때마다 깊이 좌절했었다.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무력감이었지만, 삼십대의 기대치는 지나치게 긍정적이었고 현실은 가차없었다. 손수 쌓아올렸던 레고 벽돌 더미에 깔려 다시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아 지금은 그 때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아마도 작은 계획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흔들리는 인생의 파도를 탈 줄 알게 된 것일테다.
롯데월드의 추억이 너무 먼 기억까지 데려왔다.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말, 함부로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지금 누리는 것들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고 언제든지 새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인지 가끔 설명해주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