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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Dec 27. 2020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후기.

옛날 글들 꺼내오기

2015년 당시 활동하던 커뮤니티에서 쓴 글입니다. 블로그에 저장만 해두었다가 오늘따라 문득 생각나서 브런치로 가져와요. 세상에, 이게 벌써 5년 전이라니요.


아아,

9월 첫주로 전국에서(?) 막을 내린,


(이라고 쓰고 확인해보니 전국에서-CGV 제외하고 자막버전은 딱 한 곳에서, 더빙버전 네 곳에서 아직 상영 중이네요)


제가 30대가 된 이후 본 영화 중 감히 최고라고 꼽을 수 있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애니메이션, 이라고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자는 '읭?????'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좋은 영화였고 잘 만든 영화였지만최고까지는 아니잖아, 라고 하실 분들도 당연히 완전 많으시겠지만


그냥 저에게는 인생의 이 시점에 이 영화를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총평을 하자면 지금 시대의 흐름을 위트있게 앞서가는, 굉장히 트렌디하면서 아주 세심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온오프에 리뷰들이 넘쳐나고 있는 영화라, 저는 그냥 제가 좋았던 부분을 적어볼까 해요.




JOY(기쁨)에 대하여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그 장면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영화 초반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간 첫날, 하루를 마무리하고 라일리가 잠이 들며 감정들도 자러 갑니다.


꿈 시간 담당이었던 JOY 가 지켜보는 가운데 꿈이 시작되는데요, 이상한(낮에 싫었던 일들이 다 뒤죽박죽된, 브로콜리 피자와 죽은 쥐 등) 꿈이 계속되자 JOY가,


- 하루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어, 이러면 안되는 거 알지만...!

I know I'm not suppose to do this.. but.. we are not going to end the day like this.


하면서 원래의 프로그래밍을 바꾸고 라일리가 소중히 여기는 추억 하나를 꿈에 띄웁니다.


아빠 엄마와 미네소타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행복해하는 장면을 라일리의 꿈에 보여주면서, JOY 는 확고한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해요.


- 걱정하지 마. 반드시.. 내일 하루도 또 다른 멋진 날이 될 수 있도록 해줄께. 내가 약속할께.

Don't you worry. I'm going to make sure that tomorrow is another great day. I promise.   




보는 순간,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요, 바로, 내가 매일.. 내 아이를 보면서 하는 생각과 많이 닮았네요.


아이가 만 세살이 넘고 시간이 이만큼 흐르면서 수많은 순간들 앞에 많이 깨어지고 아프고 내려놓으면서 나도 그 폭이 많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때가 되기 전까지는 너를 해할 수 없도록 내가 지켜주겠노라, 잠든 아이를 보며 매일 밤 다짐하는 엄마의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JOY 는 특히 SADNESS(슬픔)가 기억/감정에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막아요. 라일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은 행복하게 저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중에 기억저장소에서 리콜 통로를 통해 본부로 돌아가려 시도할 때 아예 SADNESS 를 같이가지 못하도록 막고 홀로 본부로 가려고 하기도 하죠.


왜?


라일리가 행복해지기를 누구보다 원하니까.


엄마인 나도, 내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니까. 힘든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겪지 않기를, 그 아픔이 어떤 상처로 남게 될지 내 경험에 비추어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혹시 모를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발버둥을 치는 


여느 엄마들의 모습과 마찬가지인 저.


하지만 JOY 와 마찬가지로,

단편적인 입장과,

나아가 저의 경험에만 기대어

치우친 판단이나 선택을 하곤 하지요.   




상담 선생님이 저에게 종종 하시는 이야기가 있어요.


"마음씨 님이 아픈 삶을 살아온 것이 사실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극단적인 상황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고 견뎌온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다 보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또는 특별히 싫어하지 않는 타인들) 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초에 차단하고자 하는 불균형한 마음이 아주 큽니다. 한 쪽으로 강한 압박을 받으면서 다른 쪽으로는 전혀 그러한 압박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결코 아니지요.


성인들과의 관계맺음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일부분을 보편화 시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거나 내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고갈시킬 위험이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이제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아이에게도 동일한 관점을 덧씌울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거예요."   




제가 관계와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불안함들은 저의 과거 부정적 경험에서 근거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찌꺼기이겠지요.  제 자신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를 위해서도 이러한 갇힌 마음을 열어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때론 잘 판단이 서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는 나와는 다른 존재이고, 내가 겪은 아픔이 반복될 것만 같은 왜곡된 두려움에 맞서서, 아이를 더 믿어보려고 해요.

제가 할 일은


혹여 몸이든 마음이든 다친 아이를 언제든 보듬어 주고 같이 고민해보고, 다시 험한 세상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아직도 밤이면 잠꼬대처럼 엄마를 찾는 망아지를 안아주며, 매일매일 생각하려고 합니다.




SADNESS(슬픔)에 대하여


이렇게 매력적이고 귀여운 캐릭터가 또 있을까요 ㅎ


처음 슬픔이, 라고 번역이 된 자막과 글들을 읽었을 때, 그리고 영어 대사 원문이 sadness 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봤는데요


영화 끝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뭔가.. 슬픔 이라는 것보다 여린 감성? 민감한 마음? 이런 것이 더 어울린다고 혼자 생각했어요.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더불어서 기쁨이, 에게도 긍정 에너지? 이런 이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헤쳐나가는 과정에는 마음의 깊은 공감과 긍정적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에너지가 항상 짝을 이루니까요.   




SADNESS 는 기억을 자꾸 만지려 하죠. 왜 그런지 모르지만 저절로. 그 행동이 우리가 무엇인가 누군가 위로하거나 공감할 때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깊은 마음의 소통을 느낄 때,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잖아요.


중간에 빙봉의 무지개 우주선이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때

슬퍼하는 빙봉 곁에서 SADNESS 는 그 슬픔을 같이 느끼며 안타까워했지요.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그리고 SADNESS 는 감정에 푹 빠질 줄 알아요. 우울하면 꼼짝하기 싫어 쓰러져버리고 움직이지도 않고 펑펑 울고만 있고 ㅎㅎ 


신기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충실한 시간을 충분하게 보내고 나면, 우리는 그 고통을 훌훌 잘 털어버리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게 돼요. 대개 감정의 먼지들이 어떤 형태로든 들러붙어 있는 경우는 그 감정을 아주 충분히.. 겪어내고 보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JOY 가 SADNESS 에게 했던 것처럼 작은 공간을 하나 만들어 놓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감정들을 그 안에 모두 가두어놓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밝은 모습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내 자신의 마음 한 쪽이 완전히 굳어가는 걸.. 최근까지도 모르고 지냈어요. 알면서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에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러다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천운처럼 주어졌고, 지금의 저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지요. 그래서 여기(커뮤니티)에도 주절주절 나누기도 하구요.


아직.. 저는 제 자신의 감정을 즉시, 깊이,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요. 짧다면 짧은 저의 평생동안 저는 그 일을 '가장 후순위'에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최소한 이제는 그 일이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삶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날들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인사이드 아웃>을 보는 동안에도,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안정감과 기대감이 같이 와요.  




그리고 끄적끄적

빙봉에 대하여는, 기억 속으로 빙봉이 사라져갈 때 (저 포함) 진짜 대부분 울었나봐요. 눈물이 꼭 나오지는 않아도 많이들 감정의 요동을 느끼신 것 같더라는. 저는 인사이드 아웃 을 두 번 봤는데, 두번째 볼 때는 빙봉이 JOY 를 마지막으로 격려하면서 (이미 뛰어내릴 결심을 하고) 무지개 우주선을 출발시킬 때부터 울었습니다.


글쎄요, 어릴 적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안타까움, 그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오히려, 유년을 함께했던 든든한 어떤 동반자를 딛고 새로운 단계로 성장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 부모의 마음... 그런 비슷한 것에서 오는 가슴저린 느낌이었어요.


나도 언젠가는 때가 되면, 나의 역할을 다 하고, 아이의 삶에서 물러나주어야 아이도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마음. 나도 저렇게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딛고, 올라서, 이만큼 자랐겠지, 하는 그런 마음. 아이를 달나라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니구나, 아이가 달나라로 날아갈 수 있도록 열어주어야 하는구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많이들 알아보셨을, 엄마 마음속 주 컨트롤은 슬픔이의 엄마 버전, 아빠 마음속 주 컨트롤은 버럭이의 아빠 버전. 엄마는 슬퍼서, 아빠는 화나서, 이건 아닐거라 생각하구요.


다만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편적으로 요구되고 먼저 발달하는 것, 여자는 공감능력과 민감한 마음, 남자는 성급하지만 추진력 있는 성향이 주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혹은 라일리 부모 각각의 성향일 수도 있겠죠. 아빠 마음들이 스포츠 채널을 보다가 엄마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서 정말 넘어가게 웃었네요. 뭐 우리집에도 흔한 어떤 일상이랄까.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그리고 라일리가 잘 다루기 힘든 감정의 부침을 겪을 때마다 무너지는, 하지만 나중에 새로이 재건되는 personality island - 성격의 섬? 정말 좋았어요.


왜 우리도 마음을 설명할 때 신경줄이 툭 끊어지는 것 같았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주저앉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표현들 사용하잖아요. 그걸 이렇게 구체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디즈니-픽사의 상상력에 엄지 척, 했습니다. 대개 영상이 언어(글이나 말)가 가지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인사이드 아웃은 전반적으로 그런 면에서 굉장히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마추어 견해로 하는 칭송입니다.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장기기억보관소와 '기억 청소부'들을 보면서는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뿌듯하고 (그만큼의 기억들과 경험들을 축적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잘 자라왔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오늘 다른 분들의 글에서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망각이라는 마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죽을 때까지 평생의 기억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간직해야 한다면 얼마나... 얼마나 삶이 끔찍할까요? =_=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마지막으로, 더 첨언할 필요도 없이, 사람이 성장할수록 감정의 색채는 복잡해지고 많은 변화와 왜곡과 마음의 파도를 견디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들. 그리고 그럴 때, 마음 기댈 수 있는 지주가 있다면 세상을 헤쳐나가기가 얼마나 훨씬 더 수월할 수 있는가.


(이건 지금 읽고 있는 책 -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 자립과 의존의 심리학> 가토 다이조 저 - 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생각)

저와 가까운 지인 한 분은 아이가 부모의 실망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무릎쓰고 용기를 내어 방황에서 돌아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속마음과 허물까지 고스란히 드러내더라도 보호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감, 그리고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용기. 이 또한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힘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C)인사이드아웃-화면캡처


하아아


제가 이 핵심기억 (core memories) 색깔 믹스된 장면 이미지 찾기 위해서 얼마나 검색질을 해댔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정말 간신히 저용량 이미지들 몇 개 뿐입니다. 아니 왜? 대체 왜? 이 장면이 얼마나 인사이드 아웃에서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데 왜? 결말 가까이 있는 장면이라서 그런가? ㅠㅠ 하고 혼자 중얼 중얼 궁시렁거리며...;;; (이 글을 쓰던 당시는 DVD 발매 전이었음)


성장, 성숙이란 이렇게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수용하고 마음의 지지대 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상징을 모두 담을 수 있었던 시각화의 힘에 재차 감탄했어요.




소소하게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있어서 링크 덧붙여 봅니다.

http://blog.naver.com/theodore14/220441626112 

http://blog.naver.com/gangaji1104/220423728063   


혹시 저처럼 스크립트 궁금하신 분

http://www.springfieldspringfield.co.uk/movie_script.php?movie=inside-out


Riley's First Date - DVD 에 수록될 예정이라 해요.

https://youtu.be/M2KD2O9lSuA


인사이드 아웃의 DVD 는 11월 3일에 나온다고 합니다. 완전 카운트다운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아 빨리 나와라 빨리 나와라 빨리 나와라. 심하게 사견 가득한 후기는 이렇게 마무리 하렵니다.


2020년 현재 저는 우리말, 영어, 프랑스어 버전의 인사이드 아웃 DVD 뿐 아니라 iptv 유료구매까지 해두어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채널로도 다시 볼 수 있어요. 여전히 인생 애니메이션입니다. 내용도, 메시지도, 그걸 구현해 낸 방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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