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후퇴보다 전진이 낫다 할 수 없어

출발이 늦은 사람 - 5

by 마음씨

아직도 2016년 크리스마스 즈음을 기억한다. 싹둑 잘린 것처럼 내 커리어가 끊어진지 2년 정도 지났고, 상담을 지속한지도 꼬박 3년이 다 되어가는 때였다. 내 자신을 한겹 한겹 열어보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한 순간, 문득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내 것인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이 감정에 대해 남편에게 이렇게 설명한 기억이 있다. 내가 낑낑거리며 양팔 가득 뭔가를 안고 있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는데, 문득 살펴보니 그 중에 내 건 아무것도 없더라. 남편이 내게 답했던 말은 싱겁고도 단순했다 - 그럼 다 버려.


당시 내가 온 힘을 쏟아서 하고 있던 것은 딱 한 가지 뿐이었는데, 온라인으로 만난 다정한 사람들의 모임에 한없이 몰두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몸을 일으켜 밤새 글을 쓰고, 이사 한번 했다고 다 초대해 집들이를 하고, 답답할 때면 차를 몰고 떠나던 동쪽 마을에 매번 누군가를 동행했다.


90% 채워지는 마음 뒤에 돌아서면 늘 공허함이 남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정의가 덜 내려진 채로 그동안 내뱉지 못한 감정과 말들을 발산하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뭔가에 부딪힌 것이다. 아니면 긴 상담 기간동안 조금씩 투여한 마음의 약이 효과를 발휘한 건지도 모른다.


2016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 일 남의 일 할 것 없이 같이 부둥켜안고 살던 사람들이 남겨준 댓글들이 정말 고마웠지만 그 어느 것도 소화가 되지 않는 날이었다. 이 때의 토할 것 같은 심정 덕분에 이만큼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16년 12월 20일의 글 (횡설수설 주의)


살아오면서 저는 끊임없이 어떤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제 고유의 것들을 묵살해 왔다는 것, 그거 하나는 알긴 알겠는데


그렇다면 그 억눌림을 걷어냈을 때 나는 자유로워지는가? 그렇지 않고 너무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요.


막막하기만 하고, 환하고 아름다운 세상인데 아무도 나에게 뭐라하지 않는데 저는 갈 길을 잃고 꼼짝달싹 못(안)하고 있는 것 같아요.


차라리 저에게 어떤 롤모델이 있을 때, 또는 누군가(사회가,공동체가) 저에게 원하는 바가 있을 때, 아니면 하다못해 이것저것 취합해서 제가 따르고 싶은 어떤 샘플이라도 있을 때, 저는 전투력이 200배 올라가는 삶을 살아왔는데, 그런 거 없이


아무도 너에게 강제하지 않을테니 네 마음껏 네 자유를 탐색하고 네 자신을 발견하라고 할 때 저는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나답다, 라는 것이 무엇인지.


누군가 저에게 '그건 마음씨 답지 않은 행동이에요' 라고 하면 그 말처럼 저를 블랙홀에 빠지게 만드는 말이 없는 것 같아요. 나다운 게 뭔가? 평소의 너 답지 않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밀려오는 대혼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문제이지만 저에게는 어찌보면 '그럼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어떻게 찾아가야 하고 어떻게 나를 만나야 하나.


제3자에게는 저의 모습이 좀 더 잘 보이겠지요?


하지만 어떤 동네이든 그 동네에서 필요한 캐릭터로 적응해서(변신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게 그 동안의 저였어요, 그러니 '당시의' 제3자들이 보는 저의 모습도 어쩌면, 진짜 제가 아닐수도 있겠지요?


생각하다 보니 쥐스킨트의 '향수'에 나오는 무색무취의 남자- 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소한

나 이거 정말 싫은데 지금 해야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있는 거야, 라는 느낌이 있다던가


나의 어떤 캐릭터가 있고,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거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을 하며 참거나 다듬거나 적응하거나 하고 있다, 이런게 아니라


나는 늘 그 순간에 필요한 모양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을 다 벗어놓고 보니 나는 그냥 투명인간 같더라. 아아아아아아아아무런 선호도가 없는 사람같은 거. (저같은 애가 이런 말 한다는게 이상하죠 ㅎㅎㅎ)


근데 정말 그래요


생각 정리 좀 한 것 같았는데 글자로 적어놓자니 별로 그렇지가 못하네요 ㅎㅎ


있는 그대로 충분해요! 이런 말이 가장 혼란스러워요. 왜냐하면 저는 지금의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뭔지 모르겠거든요.


상대적으로 곁에 누군가와 또는 어느 때의 집단 속에서 기타등등 비교대상이나 샘플이 있을 때, 그걸 기준으로 내가 어디 쯤에 있다... 이렇게는 알 것 같은데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제 방향을 정하고 열심히 맞춰가곤 하죠)


음... 뭔소린지 모르시겠죠, 지금 제 머릿속도 (마음속도) 그래요.


그러니까 이 글이 황당한 벗님들께서 조금 저를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은,


내가 본(읽은?) 마음씨는 XXX한 사람이다... XXX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XXX하지 않는 사람 같다... 이런 거 좀 써주시면 좋겠어요. 막 격려가 될만한 응원단어들 말구요. 객관적으로 이 사람은 이런 사람 같다... 뭐 그렇게 느끼신 거... 아무거나... 나쁜 것도 환영... 보편적이지 않은 것도 환영...


사람이 어디까지 자기자신을 깎을 수 있나 저는 제 자신에게서 그 극한을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벗님들은 제가 잘 보이시나요? 저는... 제가 안 보여요. 답답해 죽겠어요.




다시 읽어도 이 때의 혼란스러움이 마구 느껴지는 글이 아닐 수 없다 (허허) 내가 확신하던 나의 모습이 갑자기 너무 가짜 같고,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내 의지로 된 게 없는 것 같다는 자기의심이 불길처럼 번지던 시간.


어쩌면 아동청소년기의 나는 정말 주입식 교육에 최적화된 아이였으며, 쉽게 수긍하고 빠르게 단념하고 울타리 안에서 한발짝도 발을 내밀지 않는 한국형 구성원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매 순간 내 모습을 상황에 맞게 변경하면서 살아남았다.


이 글을 써낸 순간부터 나는 진짜로 취약한 부분을 (그래서 내가 보호하고 싶었던 나의 어딘가를) 드러내는 걸 조금씩 익히기 시작했다. 무거운 껍질을 하나씩 벗을 때마다 좀 더 편해졌고 가벼워졌고 조금씩 더 용감해졌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산을 어떻게 넘었는지, 혹은 이 동굴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잘 모른다. 확실한 건 하루아침에 갑자기 솔루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 모두가 나를 재촉할 때, 격려의 옷을 입은 비난의 말을 던질 때 - 혹은 그렇게 내가 구석에 몰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를 붙잡으려 애썼다는 기억만 뚜렷하다.


도망치는 내 모습도 회피하는 내 모습도 다 괜찮았다. 나 도망치는 거 아니야! 라고 소리지를 때보다 나 너무너무 무서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손을 내밀 때 빛이 보였다. 타인의 평가와 도움에 의지할 때 결코 알 수 없던 것들이 나에게 집중하면서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쪽으로 재빨리 행동하기 전에, 모르겠다 모르겠어 아직 모르겠네 하면서 뭉개고 있던 그 시간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내 모습에 이르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멈춰있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었다.


아직도 '너 언제까지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을래?', '너처럼 일할 때 힘 나는 애가 그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점점 더 늪처럼 빠져들거야, 고민하지 말고 뭐라도 해', '너무 쓸데없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일단 움직이는 게 어때?' 라던 말들이 생생하다.


그리고 이 악물고 조금 더, 아직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잘 모르겠는데 조금 더, 라고 버티던 그 때의 나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위로하고 칭찬하고 싶다. 그렇게 내가 막막하게 머물러 있던 골짜기 같은 시간을 이제와서야, 정말 소중하고 귀했다고 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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