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이 늦은 사람 - 6
악기를 그만두던 때 만큼이나 일하는 분야를 옮기는 것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택을 하는 시점에는 그렇게 거창한 목표나 의지를 가진 것은 아니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임팩트가 큰 결정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선택'의 순간은 여행 중에, 숙소 침대에서 뒹굴면서, 카카오톡으로 이루어졌다.
개인적인 긴 방황의 끝에 나와 일상의 선호도가 비슷한 지인들과 함께 작은 프로젝트 팀을 꾸렸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과 지향하는 것이 몹시 비슷했고 각자의 이야기를 만나서 또는 메신저로 끊임없이 나누기를 즐겨했다. 모두가 육아로 삶의 어떤 지점을 꺾어가는 중이었고 나는 우리가 뭔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돈이 오가는 일들에 사람들을 자의로 엮어넣어 일을 추진했다. 공간을 얻고 기획을 설명하고 연출을 하고 모객을 하는 일들. 월급 받는 직장에서 닳도록 하던 일이 직접 나의 책임 아래 놓이자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열심이 저절로 넘쳤다. '익숙하고 잘하는 일을 직접 책임지는' 경험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냥 삶이 그렇게 굴러갔으면 어쩌면 나는 프로젝트 팀을 키워 업계 최초로 전문가들이지만 육아 중인 사람들의 그룹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처음 꿈은 창대했으나 과정에서 평범한 예술기획 에이전시가 되어 어떻게든 레거시와는 다르게 해보겠다며 끙끙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었어도 차려서 내놓기에는 비교적 익숙한 밥상이었겠지.
그런데 하필 이 무렵에 나는 루트임팩트와 성수동 소셜벤처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행사가 먼저였는지 보도자료 기사가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연히 과학 강연을 들은 이후 SNS에 종종 다양한 컨퍼런스 소식이 광고로 노출되었다. 그저 궁금해서 소셜벤처 창업가들의 패널토크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 날이 (어쩌면 그 행사 광고를 클릭한 날이) 내 인생 방향을 한번 더 바꾼 날이 되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새로 사용해볼 다양한 서비스가 많아지는 것이 신기했고, 그 다음에는 창업가들의 발표(공개 IR을 하는 데모데이를 많이 찾아다님)가 멋지고 감동적이라 자꾸 들으러 갔다. 한편으로는 나의 작은 프로젝트 그룹이 스타트업 커뮤니티 어딘가에서 무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발견한 문제의 새로운 해결을 위해 뛰어들고, 작은 깃발 하나에 모두가 매달려 돌진하는 모습에서 나는 어떤 매력을 느낀 것일까? 하나만 파고드는 예술가적인 기질과 감각에 대한 일종의 동질감이었을까. 몇 번 내 프로젝트 팀을 연결하기 위한 작은 시도들을 했으나, 어느새 내 개인이 잘 사용하던 서비스의 팀 구성원으로 합류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 때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은 스타트업 창업가로 일하는 워킹맘의 책이었고, 아이가 여름 캠프에 가 있는 낮 시간동안 매일 책을 읽고 클래식 기타 연습을 하던 날들의 한복판이었다. 정확히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기여할 부분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나는 팀의 멤버가 되겠다고 답을 했다. 플랫폼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면서. 여행지에서, 침대 위에 누워서, 카카오톡으로.
눈 앞에 기회가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그게 어떤 유형의 기회인지는 잘 몰랐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어쩌자고 그렇게 무식하고 용감한' 선택을 했나 싶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한번씩 생각하는데, 되돌아간다면 다른 결정을 할까? 일에 대한, 업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표를 가지게 하는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일들은 계속해서 충격과 배움을 준다. 그리고 배움은 웬만하면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변화의 여파를 기꺼이 감내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아무리 배움과 변화를 사랑하더라도 이를 실제로 소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스물다섯 청춘도 아니고 서른살 초년생도 아니어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스물다섯도 서른도 아니어서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