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이 늦은 사람 - 7
솔직하게 말해보겠다. 의지와 경험으로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회사에 합류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내가 저 나이 때 이걸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였다. 입사해서 내가 제일 질문을 많이 하고, 고민을 나누고, 위로와 도움을 받고, 기쁨을 함께했던 동료는 딱 나보다 10년 어린 분이었다. 지금도 은인으로 생각하는 한 사람.
그리고 더 솔직하게, 아주 드물게 몇몇 순간들을 제외하면 그 분이 나보다 '어리다' 또는 '철없다' 혹은 '뭘 모른다' 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연습실보다 사무실이 더 익숙해진지 십여 년 만에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한꺼번에 만나다니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거의 매일 말했다. 그러면서도 거의 매일 생각했다, 나도 좀 더 빨리 알았다면.
누군가는 나와 좀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스타트업, 젊고 어린 조직, 작은 팀에 함께하기로 결정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경험과 관점으로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이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여하기 이전에 배워야 할 것들이 태산 같았다. 그 와중에 문득 한번씩 옆을 돌아보면, 학교에서라면 언니동생조차 되기 어려웠을 동료들이 에너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이 부러움의 감정은 5년 여 지난 지금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치열한 순간들 틈에서도 갑자기 올라오는 이 마음이 감당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애써온 삶이 (무용지물은 아니지만) 나를 내세우는 어떤 것에도 활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 슬플 때도 있었고 좀 더 일찍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이 감정을 뒤집어보면, 그만큼 지금 내가 머무는 여기가 좋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일하고 있는 분야, 만나게 되는 사람들, 경험하게 되는 문화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끊임없이 새로 접하게 되는 기술과 논리들, 솔직하고 냉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주는 신선한 충격과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들.
모르고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었을테고, 익숙함에서 노련함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멋진 인생이 다른 길 위에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머무르는 한 영원히 '노련함'의 타이틀은 얻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온 삶을 걸고 원하는 것이 노련함에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최근 몇 년 사이에 발견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 너무 늦었나' 하는 이 마음을 잘 다루는 일이다. 햇수로 5년째, 나보다 더 늦게 테크 스타트업으로 넘어온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비슷하게 예술 백그라운드를 가진 똑똑하고 젊은 분들은 일찌감치 커리어를 전환해서 건너왔다.
명확한 목표와 싱싱한 두뇌 세포로 천재와 수재와 범재들이 뒤섞여 실험과 사업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괴감에 내 품에 안긴다. 누군가는 내게 욕심을 내려놓으라 하기도 한다. 왜 그래야 하는데? 늦게 시작했다고 일찌감치 단념하고 목표를 낮출 거라면 굳이 이 분야에 머무를 필요조차 없지.
비록 나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지만 노력하고 시도하고 연습하고 학습하는 것은 자신있는 편이다. 테크 스타트업에 있는 모두가 구글 CTO로 살지 않는 것처럼, 지금 단계에서의 내 과제는 새로운 배움과 체득된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여를 잘 버무려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늦었다 싶을 때는 늦은 게 아니라는 말도 있고, 내 지향점이 이 바닥 탑티어(!)라기 보다는 '충분한 1인분의 몫'과 '타인에게 좀 더 좋은 영향을 미치기' 이기에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사실은, 이십대를 마감할 때까지 무대에 섰던 내가 가끔 아쉽고, 이꼴 저꼴 다 보면서도 공연 밖을 벗어나면 안되는 줄 알았던 삼십대의 내가 가끔 안타깝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60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서 안타깝지 않으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 하루라도 빨리 정말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것, 얻은 기회를 최대한도의 에너지로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해보는 것, 모든 것이 평화로워지는 작고 소박한 일상을 만드는 것... 어쩌면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올해의 내 숙제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