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걸어나가는 방법
과거의 나를 포함해서, 특히 예술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어릴 때부터 이것만 해와서 딱히 다른 것에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몰라.
이제와서 새로운 걸 배우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이만큼 돈 벌기도 어렵고.
여기서 내가 이미 증명한 만큼 새로운 것으로 다시 증명할 자신이 없어.
내가 아무리 다른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과연 지금보다 더 많이 이룰 수 있을까?
도전하는 마음이란 뭘까? 대체 새로운 시도는 왜 하는 걸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힘을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서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벗어나 미지의 세상으로 멋지게 발걸음을 떼게 만드는 건 뭘까? 과연 밖에서부터 오는 영향력, 타인으로부터 오는 영감이 나로 하여금 안전지대를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우리는 모두 잘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확신을 갖고 싶어서 수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다닌다. 성공한 멘토들의 말을 읽고 듣고 되새긴다. 도움을 얻으려고 네트워크를 쌓고 더 안전한 선택인지 확인하고 싶어 자식을 쌓는다.
하지만 결국 내 손을 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의 간절함이다. 현재가 행복하고, 안온하고, 평생 이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에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사람은 도전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종종 중학교 때 친구와의 대화를 생각하곤 한다. 동네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미 음악 전공생이었던 나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말했다. "이것 저것 다 해볼 수 있어서 좋겠다." 친구는 펄쩍 뛰며 대답했다. "너처럼 진로가 정해져 있는게 얼마나 행복한 건데, 나는 니가 부럽다."
약간 어리둥절했던 그 대화는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살아오는 동안 수천번도 넘게 회상했었다. 친구의 막막함이 상징하는 대한민국 입시 제도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 때부터 정해진 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정답을 향해 주어진 미션을 충실하게 달성하면서 게임 퀘스트 깨듯 한 단계씩 나아갔다.
그렇게 5년, 10년이 이어지자 어느 날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은 거다. 물론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착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음악을 사랑했고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길은 여기밖에 없으니 여기로 가면 되는가보다 하고 무작정 노력했었다.
워낙 일찍부터 시작하는 분야여서 그랬을까? 음악이 아닌, 체육이나 미술 같은 다른 실기 분야는 다를까? 학업에 집중하는 다른 친구들은 나와 상황이 달랐을까? 그들은 자기 인생을 놓고 하염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성장해왔을까?
돌고 돌아 음악과 꽤나 먼 곳에까지 와보니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분야를 여러 번 옮기며 연차를 쌓아오는 동안 주변에 부러울만큼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SNS나 칼럼 기사로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일터나 거래처, 친구들 모임, 동네 카페에서 만나는 수많은 지인들은 내게 말했다.
너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나도 뭔가 해보고 싶긴 한데, 난 이번 생은 틀렸어.
처음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상대방에게 희망이 있다고, 마음만 먹으면 된다고, 선택이라고,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했을 법한 얘기들을 열올려 말하곤 했다. 혹시라도 나의 호소가, 내 작은 실패와 시도의 에피소드가 그 사람의 불안한 마음에 작은 불씨를 틔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나의 그런 말들이 움직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내 말을 듣고, 정말 그래볼까? 한번 해볼까? 해서 움직였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의 절실함이 가득했던 것이고 마침 그 꼭대기에 내가 우연히 불을 (붙인 것도 아닌) 튀겼을 뿐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번 나의 기록은 그렇게 답답함과 절실함이 끝까지 차오른 사람에게 우연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는 글이다. 수천 명 쯤은 이 글을 읽지도 않고 스쳐가겠지만, 한 명의 누군가 마침 이 글을 만나, 어어 그럼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든다면 역할을 다하게 되는 그런 글.
방향을 바꾸거나, 벗어나거나, 걸어가려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가 내게 꼭 맞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 시도해봐야 할 수도 있다.
일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게 필수다. 나와는 먼 얘기 같고 어차피 관련 없는 일이다 싶어도 그냥 듣는 거다. 듣고 또 듣고 만나고 또 만나고,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아 저런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구나, 아 저렇게 살기도 하는구나.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게 생각보다 정말 많은 노력이 든다.
중요한 건, 하나하나의 분야를 모두 이해하겠다고 달려들면 안된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하고 새롭고 변화무쌍하고 크로스오버가 많은지 그 감각을 익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처음 본 사람이 우주 정복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냈을 때, 어쩌면 실현 가능한 기술이 있는지도 몰라, 하며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그저 내가 모르는 뭔가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걸 발견했을 때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고, 멈춰서서 관찰하고 궁금하면 들어가 보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연습하는 거다. 다가가는 연습, 만나는 연습, 가끔은 한번 해보는 연습. 연습이라면, 우리 예체능인들, 지겹도록 해본 것 아닌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기 위한 연습, 퍼포먼스의 퀄리티를 늘 고르게 유지하기 위한 연습.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스르륵 선 넘어가 있는 거다. 누가 갑자기 높은 벽을 부셔버려서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넘어 나가게 되는 것 말고. 물론 대단히 깊고 넓은 경계를, 이를 악물고 굳은 결심을 하고 발을 성큼 떼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권하고 싶다, 오랫동안 다른 일을 해온 우리들에게는 ‘스며드는’ 것이 어울린다고.
그러니까 스며들기 위한 환경에 조금만 부지런 떨고 나를 내놔보는 거다. 그리고 뭔가 스며드는 것 같을 때, 생경한 느낌에 질겁하며 물러나거나 털어내지 말고 그대로 둬보자. 어디로 갈지 모르는 흐름에 일단 나를 맡겨보는 것도 괜찮고, 평생 해보지 않은 충동적인 결정을 한번 해봐도 좋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하나, 다양성을 접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아주 묘하게 내가 남들보다 우수하고 싶은 욕구,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주목받고 싶은 욕구 등등과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다.
새로운 것, 즉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한다는 건, 내가 초보자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 시작하는 지점에서 자꾸 살아온 세월을 인정 받으려 애쓰는 대신 홀가분하게 과거를 내려놓고 처음부터 출발하는 가볍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지 못하면 '과거'는 여러가지로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지 못하게 옥죄는 장치가 된다.
타인에게 권위를 부리지 않는다고 다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혹독하게 '이것밖에 안돼?' 라고 반복하는 거야말로 정말 최악이다. 나를 제로 상태로 놓고, 그만큼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진 상태로, 배우고 실패하고 시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기쁨을 맛봐야 한다. 어쩌면 이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울타리를 넘어 나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것을 접하는 것,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완전하기는 커녕 누구보다 초보자(beginner)임을 수용하는 태도, 두 가지가 핵심이다. 둘 다 상상 이상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정말 절실하다면 이 정도 노력은 할만한 것도 맞다. 그리고 예체능인들에게 노력과 연습만큼 친숙한 일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 해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