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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Jul 17. 2022

예술도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할까

순수와 기술 연결하기

아침 저녁으로 문제 해결을 외치는 동네에 살다 보니, 작은 충돌만 발견해도 반사적으로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생각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예술을 만나러 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소명을 갖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믿는 신은 인간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고 돕고 채워주며 삶의 여정을 이어가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홀로 부족하고 상호작용과 공동체와 관심과 신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예술가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마음을 풀어주는 그림을 마주하거나 정신없이 공연을 관람하고 나면, 예술가 자체는 정말이지 순수한 창조의 행위, 혹은 창조적 에너지를 소비자이자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사람, 끝이 없는 새로운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다. 어쩌면 인간들 중에서 '창조하는' 신의 모습에 가장 비슷한지도 몰라. 내 세계관에서는 파도에 맞서거나 격류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불러 일으키는 사람인 거다.


하지만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 외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발휘해 탁월한 ‘문제 해결’에 매진하는 것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신이 '예술가' 자체가 아니라 그 '나머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삶에 펼쳐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얽혀 살아가려면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지난 몇 년 간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강렬하게 내가 동의했던 말은 (quotation 없음) 지구의 평화와 공동체의 안전은 누구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지금 이 순간이라도 바로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그래서 빙빙 돌아 여기까지 온 나의 바램은, 예술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술가의 문제 풀기에만 골몰하거나 청중의 문제만 바라보기 보다는, 그리고 종종 예술 바닥에서 맴도는 비즈니스만 들여다보기 보다는, 예술이 가진 기질, 예술이 가진 힘을 토대로 더 넓은 공동체를 문제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한 곳에서 꾸준히 성장한 사람은 꾸준한 만큼 곁길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마치 산속 마을에서 21세기가 온 줄도 모르고 세계대전 이전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던 어느 부족처럼, 과거의 방삭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열심히만 살게 되기도 한다. 꼭 트렌드의 최전선에 나서야 할 이유는 없지만 새로운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나.


순수와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술 자체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개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어 사람이 상상만 하던 일을 실제로 이루도록 돕는다. 테크와 엔터 시장은 플랫폼과 시스템으로 많은 과거의 일들을 대체하고 있고, 온라인과 바이럴을 고려해야 청중과 크리에이터와 비즈니스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더 많은 예술 울타리 안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청중과 예술가 뿐만이 아니라 기술과 예술 사이의 고리를 연결해야 한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 곁에는 예술, 창작자를 이해하고 관객을 이해하며 그들의 생각과 언어를 기술 개발의 언어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개인적으로 예술 안에 살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바깥 세상에 첫 발을 내딛기에 적합한 곳은 크리에이터 생태계에 자리잡고 있는 테크 회사들이나,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는 플랫폼 혹은 커머스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정말 광범위하기 짝이 없는데, 그만큼 기회는 다양하다는 얘기다.


선배 중 한 분은 성악을 하셨기에 음성인식 인공지능 회사로 가셨다. 지인 중 한 분은 작곡을 하다가 코딩을 배워 개발자가 되었다. 오페라 기획을 하다가 브랜드 마케터가 되신 분도 있고, 발레를 하다가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시는 분도 있다. 나 역시 바이올린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산 세월이 20년이지만 지금은 테크 회사에서 서비스 운영을 한다.


조직문화를 챙기거나, 기술 언어의 장벽을 조금만 넘을 수 있다면 DevRel 이라고 부르는 개발자 특화 HR 직무도 꽤 잘 어울린다. (짧은 몇 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인데, 개발자 분들은 정말 아티스트 같다) 마케팅 트렌드를 빡세게 공부해서 온오프 캠페인을 책임지는 마케터의 일도 상당히 적합하다. 상품기획을 맡아 가격과 정책을 책임지는 역할도 훌륭하다. 역할이 무엇이든 그 중심에 예술과 콘텐츠가 있을 수 있다.


청소년기에 일정 시간을 쏟아 예술(적 기술)을 연마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영역을 학습하는 능력은 이미 장착하고 있다. (그 얘기를 실컷 했었던 이전 글 음악인에게 어째서 스타트업이 어울리냐면) 예술을 표현의 도구로 자유롭게 다루기까지의 끈질긴 연습 덕분이다. 직접 창작하지 않는 기획자들도 신기하게 60% 이상의 확률로 예술 아주 가까이 갔던 분들이 많다. 훈련과 불확실성 (언제 어떤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대처에 이미 충분히 적응한 분들이다.


어쩌면 해보기 전에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감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나 역시 처음 플랫폼 회사에 입사할 때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요, 제가 고객 입장은 일단 알고 있으니” 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인생 초반에는 익숙한 바운더리에서 스스로를 다져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맞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 나와 직접 사용해보며 겪는 실패들은 그래도 좀 더 안전한 경험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을 익숙한 대로만 하고 지내면 다음 마디가 자라나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나는 성장 대신 안온함을 사랑해,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성장보다는 생존이라, 조금이라도 더 손에 익은 일로 더 빠르게 자리잡고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해, 라고 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예술을 그대로 고여있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과 나머지 세상(기술과 돈이 흐르는 시장!) 간의 간극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하는 대신, 어떻게든 좁히는데 기여하면 좋겠다. 예술을 고인물로 만들지 않으려면 예술가 자신도 물론이고 예술 곁에서 일하는 기획자들이 반드시 울타리를 넘어 나와야 한다. 예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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