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축제 보면서 이따만큼 생각한 썰 (feat. 브람스와 번스타인)
4월 내내 이어진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막을 내렸다.
악기를 그만둔 이후, 아주 특별한 공연이 아니면 막상 클래식 음악회를 자주 관람하지 않는 편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코로나로 온통 난도질당한 작년 한 해의 내상을 치유하기에 이만한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3월31일부터 4월22일까지 이어진 음악회 시리즈 중에서 처음에는 8개쯤 골랐다가 결국 총 3개의 공연을 콘서트홀 안에서 실황으로, 2개의 공연은 오페라하우스 앞 야외무대 잔디광장에서 바닥의자를 펴놓고 감상했다. 내가 정말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누려도 될까, 싶을만큼 좋았다.
이번 한달 내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인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품고 연주를 들었다. 그 마음은 사실 나는 멈춰버린 길로 여전히 나아가고 있는 옛 음악 동료들을 바라볼 때 항상 가지는 감정이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 내내 고등학교 음악과 동기들과 함께 쓴 책 <서울예고 졸업 그 후>에서 나의 챕터를 정리하면서 더 또렷해진 생각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일정 시간동안 음악인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겪으면 겪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더 그렇다.
올 초 회사를 벗어난 후 한동안은 코로나 카오스에 허우적대며 살았다. 그러다 드디어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등교로 전환하고, 붙들고 있던 프로젝트까지 다 놓은지 이제 갓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삶에 여백이 생기자 비로소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타트업 씬에서 발견한, 순수예술에 뿌리를 두었지만 놀랍게 변신한 분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신 한분 한분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커다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족한 내 경험과 겹쳐보면서 더더욱, 음악으로 자신의 세계를 일구었던 분들에게 어째서 스타트업 씬이 어울리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스타트업 씬이 아니더라도, 음악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조직에서 인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에 대해서.
개인의 고유한 성질을 인정하는 대신 여러 명의 사람들을 그룹으로 묶고 보편적인 수식어를 붙이려면 늘 예외케이스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음악인들이라고 해서 예외케이스가 유난히 더 많거나 진폭이 유난히 크고 무자비하지는 않다. 알고 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예체능 출신 아이들은 공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다는 편견이 존재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듯 80%의 보통 사람들,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본을 해낸다. 내가 학생일 때와 지금은 시간차가 커서 동일한 조건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의 현업에 있는 친구들과 여전히 소식을 주고받다 보면 의외로 음악인이 되기 위한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바닥이 변화가 워낙 더디긴 하다)
전지적 나의 관점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던 사람들에게는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것이 있다. 콕 집어 말한다면 특별한 '태도'가 있다. 이 태도는 음악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평범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음악 밖 다른 세상으로 뛰어들었을 때에는 훨씬 더 넓고 밝은 빛을 발한다.
* 여기서 내가 '음악인의 길을 걸어왔다'고 표현하는 범위는,성인이 되기 전 자신의 진로를 '프로 음악인이 되는 것'으로 결정하고 (혹은 누군가의 가이드에 동의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입시를 음악인으로 치루었으며 '음악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에 도착한 청년들을 말한다. 또한, 프로 음악인이란, 음악 관련 활동(연주나 관련 강의 등)을 통해 최소한 자기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는 자급자족 프리랜서 이상의 직업을 말한다. _정의 내리기 좋아하는 운영기획자 주
(책 서울예고 졸업 그 후 http://m.yes24.com/Goods/Detail/97683981)
2021년은 왜인지 연초부터 공연의 파도에 빠져 있기는 한데 (악기 그만둔 이래로 15년 중 올해 초가 제일 밀도 높았던 듯) 그렇다고 내가 음악산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음악인들이, 음악인 청년들이 '저런 세상도 있대', '우리도 할 수 있대' 생각하고 더 멀리 나아가 더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이 스타트업의 인재로 받아들여지며, 궁극적으로는 현업 어디선가 나와 만나지는 좋은 동료들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 다 쓰고 소심하게 덧붙이는 한 줄_ 이 글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은 전적으로 저 개인의 경험과 제가 발견한 통계에 근거한 주장입니다. 학술지 논문자료 레퍼런스 없어요.
음악인의 기본 자세는 '나의 소리를 잘 듣고, 이를 더 나은 소리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 소리나 만들어낼 수 없고 아무렇게나 만들어내서도 안된다. 그건 소음이니까. 현재의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소리가 뚜렷하게 존재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를 분석하고 원하는 소리까지 진화하려면 무엇을 바꾸거나 무엇을 더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찾아내야 한다. 대개는 같은 고민을 하며 앞서 걸어간 음악인 선배들(a.k.a. 레슨 선생님)의 도움을 우선적으로 받는다.
안타깝게도 사람의 귀는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눈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개선하려면 필연적으로 타인의 눈과 귀를 빌려야 한다. 다양한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나의 소리와 행동을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파헤쳐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학생 음악인들은 꽤나 오랜 기간동안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한 지적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각자에 맞게 소화하여 적용하도록 요구받는다. 성인 음악인의 길에 들어선 후에도 동료 음악인들에게 피드백을 부탁하는 경우는 흔하고 흔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에 만족할래' 라는 상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평생을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나은 상태를 찾아간다. 더 넓어지거나, 더 깊어지거나, 더 뾰족해지거나, 더 부드러워지거나, 사람마다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다 다르다. 게다가 나이와 환경과 신체 상태와 영감을 일깨우는 감각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고, 각자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목표 지점도 계속 달라진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음악인들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24시간 주7일 1년365일 숨쉬듯 가지고 산다. 이 마인드셋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가끔 그 자체를 잊기도 하는데, '나는 별로 연연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낙천적인 1인도 막상 내일 레슨에는 지난 주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이 모든 상황을 그대로 업무로 치환해보자. 요즘 회사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스스로 성장하는 구성원'의 전형이 아닌가 말이다.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아동기(10세 전후), 늦어도 청소년기(중고등학생)에는 기악 혹은 성악 훈련을 시작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인의 피드백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레슨이라는 이름의 조언을 주기적으로 받는다. (간혹 홀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경우에도 '녹음녹화'라는 자기객관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레슨이란, 말하자면 촘촘한 간격의 정기검진이다. 매주 전문 트레이너와 강도 높게 진행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이 때 얻은 깨달음이나 기술을 나의 습관으로 체득하려면 매일 혼자서 연습을 해야 한다.
일정시간, 반복적으로, 잘 되든 안되든, 어제 이미 했던 것이든 내일 또 할 것이든, 오늘은 오늘의 연습을 한다. 바라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다. 어떤 날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어떤 날은 전단지에 오탈자 스티커를 붙이는 심정으로 반복한다. 그렇게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능숙해지는' 순간의 감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 '능숙함'의 단계를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배움의 속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묵묵히 걸어본 경험, 그러다 어느 순간 빛을 만나본 경험은 상상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이렇게 연마하기만 하는 것이 음악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음악인들은 궁극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무대 위에서의 연주란 어쨌든 끝까지 해내야 하는 것이다. 가족들 앞에서의 재롱잔치가 아닌 이상, 레슨이든 실기시험이든 향상음악회든 공연장이든 일단 첫 음을 시작하면 마지막 음까지 가야 한다.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다가 실수를 했다고 해서 청중들에게 '다음에 뵈어요' 하고 도망칠 수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무릎이 후들거리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지워지더라도 수증기처럼 증발하거나 바닥으로 꺼져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지막 음을 끝내고 나서야 그 무대를 내려올 수 있다.
누구나 경험하는 무대의 순간들을 겪어내면서 음악인들이 절로 배우는 태도는 바로 무시무시한 책임감이다. 완주의 스트레스는 무엇보다 무겁고 크다. 저 유명한 쓰리테너 성악가 파바로티도 '나의 천적에게 꼭 겪게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무대 들어가기 직전의 심정'이라고 했다. (출처 미상)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연출은 둘째치고 날뛰는 호흡을 간신히 붙든 채 무대에 오르는 음악인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어린 학생이라도 '무대는 반드시 끝마쳐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약속을 얼마든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사회에서 만약 동료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음악인들, 작고 사소한 무대도 책임감 있게 완주해본 그 사람들 중에 선택하고 싶다.
나의 소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타인의 소리이다. 음악인들은 대학교에 들어와 팀플 과제를 해보기 전에 꽤 일찍부터 서로 잘 듣고 힘을 합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법을 배운다. 관현악단이나 합창단, 중창이나 실내악 연주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이 감각을 굉장히 빠르게 익히게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사실 학생 음악인들은 작품을 완주하기 위해 '피아노 반주자'를 필요로 하고, 덕분에 내 소리가 아닌 남의 소리를 듣는 연습과 나를 움직여 남에게 맞추는 연습을 하게 된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합을 맞춘다는 것은 단지 음의 높낮이만 계산식처럼 맞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악곡의 짜임새에 맞게 적절한 균형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소리의 크기와 질감을 조율해야 하며, 서로의 틈새를 꼭꼭 채워줄 수 있도록 호흡하는 순간도 감지해야 한다. 만약 음색이 잘 섞이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타협할만한 중간지점을 새롭게 찾아내거나 한 쪽이 다른 쪽에 맞게 정체성조차 살짝 바꾸기도 해야한다. 함께하는 무대에서 나 혼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봤자 오히려 전체를 망가뜨리게 된다는 사실은 지극히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집단의 뒤에 숨어 나를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분명하고 또렷하게 자신의 맡은 역할을 해내야 한다. 치고 나와야 할 때는 충분히 돋보이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누군가를 받쳐주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해주어야 한다. 나는 가끔 실내악 연주를 감상하면서, 그리고 더 오래 전에는 동료들과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면서 그 엄청난 역동에 전율했던 순간들이 참 많다. 흔한 선입견대로라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며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있다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하는 음악인들인데, 어떻게 이토록 서로를 경청하고 예민하게 촉을 세워 타인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깎고 다듬어 '함께' 완성체를 만들어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연주자들 중에는 결코 자신의 세계를 깨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두 번 같이 중창을 했지만 다시는 화음을 함께 맞추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장담하건대, 음악 동료로 이런 분들을 만날 확률은 비음악인 중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비율과 상당히 비슷할 것이다. (물론 논문이나 통계 근거는 없다) 그리고 행여 비음악인의 세상에서는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차단하고 살더라도 주변에서 내버려둘지 모르지만, 음악인들은 끊임없이 어디선가 무엇인가 그 귀를 찌르고 들어온다. 어쩌면 남의 말에 귀 닫는 사람들과 부딪힐 확률은 길거리에서보다 음악인들 사이에서가 더 낮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작품을 완주하기 위해 기울이는 여러 노력 중에 음악분석과 암보(악보를 외우는 것)가 있다. 음악분석은 작품이 어떤 논리와 근거로 설계되었고, 작곡가가 어떤 의도로 요소들을 이렇게 배치했으며, 기대되는 기승전결은 어떤 형태인지 뜯어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서양음악(클래식음악)이라는 장르는 음악 언어의 문법대로 과거의 작곡가가 쓴 작품을 현대의 연주자가 문헌처럼 해석하고 자신만의 감성을 조화시켜 새롭게 청중에게 읽어주는 형태로 재생산된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것과 자신만의 관점을 덧입히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작품의 뼈대를 이해하게 되면 암보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간혹 비음악인 지인분들이 "어떻게 그 많은 음표를 외우나요? 작품마다 다 다르잖아요?" 하고 질문하실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발표 무대에 비유해드리곤 한다. 준비를 많이 한 발표일수록 장표와 스크립트를 외울 때 논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애쓰지 않나. (레퍼런스: 실전 프레젠테이션 이야기, 채자영 저 http://m.yes24.com/Goods/Detail/97530924) 그 밑작업이 탄탄할수록 프레젠터들은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음악인들의 퍼포먼스도 마찬가지이다.
암보 상태로 무대애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옛날 이야기를 책 없이 구연으로 들려주는 것과 비슷하다. 연주를 할 때 전체의 흐름을 꿰뚫고 완급의 굴곡에 담을 수많은 감정들을 미리 조율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체화해두지 못하면 무대에서 전달력이 떨어지는 퍼포먼스로 남고 만다. 작곡가가 치열하고 촘촘하게 설계해 둔 스토리를 내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는 지적 분석력과 무한한 연습과 나만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렇게 세포에 작품을 새겨넣는 심정으로 준비한 음악을 무대에서 온전히 쏟아낼 때의 짜릿함은,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마약과 같다.
그토록 복잡한 악보를 (오케스트라 스코어는 기본적으로 20줄 정도를 한꺼번에 읽어야 한다)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복잡계 하나를 만난들 학습과 퍼포먼스 도출의 과정이 뭐 그리 낯설까 싶다. 음표와 오선 자리에 대신 코딩 언어가 들어 있다거나 약어와 그래프가 있는 정도이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소리보다 훨씬 명확한 숫자와 글자로. (개개인이 느끼는 난이도는 별개로 하자) 독일에 유학까지 갈 정도로 뛰어난 음악인이었는데 돌연 진로를 바꾸어 회계사가 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있잖아, 답이 있는 세상에서 일하게 되니 너무너무 행복해졌어."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음악인들에게 있는 정말 중요한, 학습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주로 두 가지의 불확실성을 일상적으로 접한다. 하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 작품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게 될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새로운 작품을 공부해도 수백년 역사동안 쌓여온 음악을 다 읽지도 못한다. 그러고보니 죽을 때까지 마셔도 모든 레이블의 와인을 다 먹지 못하고 죽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른 하나는 오늘 무대에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는 오래된 격언, 나는 사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일단 음악인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짜여져 있지 않다.
무대에 많이 설수록 차츰 깨닫게 된 인생 진리가 하나 있었다. 노력은 노력이고 무대는 무대라는 것이다. 내가 100시간을 연습하고 1000시간을 연습한들 나 하나 완벽하게 통제하기도 힘든 것이 매 무대마다 맞닥뜨리는 진실이었다. 어쩌면 무대를 '통제'하려고 하는 순간 음악을 망치게 되곤 했다. 그동안 노력해온 나를 믿고 무대에서의 감각에 나를 던질 뿐, 사실 우리는 그 공간의 무엇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 객석에서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린다거나 공연장에 화재가 일어난다거나 그 도시에 갑자기 정전이 발생한다거나 연주 중에 줄이 끊어진다거나 하는 해프닝은 문자 그대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위기의 순간에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힘이다.
새 악보를 받아들 때마다, 새 무대에 설 때마다, 모든 순간은 각각 고유하게 존재하며 표준화된 연주란 애초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무대에 다시 오르더라도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이런 상황을 늘상 겪다 보면 어느새 '잘 모르는 것에 새로 도전'하겠다며 단전부터 크나큰 용기를 끌어올릴 일이 줄어든다. 애시당초 안심할만한 계산과 예측이 도무지 불가능하다 보니 음악인들에게는 대신 순발력과 유연성이 비교적 빨리 자리잡는다. 이 능력들은 무대에서 연주를 매듭짓는 책임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다.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주를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불확실성을 늘 마주하는 지점이 하나 더 있다. 내 몸이고 내 정신이지만 참으로 어제 연습과 오늘 연습이 다르다. 골프 좀 쳐 보신 분들은 이해할지도 모른다. 어제 종일 연습했던 마지막 3줄이 오늘 아침에는 나를 배신한다. 밤새도록 기획서에 디스크립션을 촘촘하게 붙여두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ppt 뒷부분 절반이 완전히 삭제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매일 만나는 것이다. 그 지경이 반복되면 대단히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하다보면 되려니, 이렇게 해보면 좀 더 잘 될까, 저렇게 해보면 좀 더 잘 될까, 어떻게 하면 여기를 안 틀리고 지나갈 수 있나, 토닥이며 쌓아나갈 뿐이다. 매일 악보대 위에 악보를 펼치며 덤덤하게 마주했던 그 날들이 매일같이 사건이 터지는 업무 현장에서 멘탈을 지키는데 그토록 도움이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음악인들이 비음악인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 부분을 신경쓴다는 것이다. 어떻게 컨디션을 조절해서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낼 것인가는 일상과 무대 양쪽에서 몹시 중요한 문제이다. '살기 바빠서 내 몸 상태를 사실 잘 몰랐어'가 아니라 오늘은 처지네, 오늘은 왼팔이 아프네, 오늘은 목이 따끔거리네, 이상하게 오늘은 소리가 먹먹한 것 같네... 아주 작은 신체 변화나 마음 쏠림에도 온통 관심을 기울인다. 프로젝트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내 등짝 아픈 거 챙길 겨를이 어디있어,가 아니라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내 멘탈과 컨디션의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내 몸 상태와 내 마인드를 잘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프로 음악인들의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여겨진다.
통제하고 싶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무대에서, 그나마 나 자신의 상태를 잘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일이다.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쓰는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나아가 타인을 엉망진창으로 쓰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간혹 카리스마니 도제식이니 하는 잘못된 교육방식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 안에는 '그래도 처맞고 자란 덕분에 내가 이만큼까지 왔지' 하는 자학적 궤변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는데) 이것은 비단 예술계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방향키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굳이 짚어보지는 않겠다. 다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보살피는 것이 건강한 커리어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음악인들은 '더 나은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내내 경험한다.
많은 회사들이 아직도 다양성을 말로만 표방하고 획일화된 업무 방식이나 업무 시간, 심지어 표준화된 마인드셋을 요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은 언젠가 물러가야 할 구시대적인 산물일 뿐이며, 개인의 강점을 끌어내고 시너지를 일으켜 혁신을 만들어가는 현장에서는 결코 그와 같은 방법이 작동할 수 없음을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기도 하다. 각 개인을 '성인'으로 인정하고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책임'에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 마땅히 포함된다. 엄연한 성인으로 조직의 한 영역을 맡고 있던 내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져 버리면 그건 나에게도 팀에게도 모두 마이너스일 뿐이다.
내가 번아웃에 이르도록 두지 않으려면, 회사의 인력관리도 중요하지만 몸과 마음의 경고를 빠르게 감지하고 내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커리어가 난데없이 중단되지 않도록 자신의 환경을 적절하게 조율해주는 것도 몹시 중요하다. 그렇게 나를 돌볼 때에야 시간과 리소스에 대한 주도권이 진정으로 나에게 있을 수 있고, 최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 음악인들에게 내 몸을 챙기는 것은 삼시세끼를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간혹 사회에서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지극한 자기보호'는 직장에서 장기적인 업무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돕는 든든한 '자기관리'가 된다.
내가 서양음악 중에서도 기악과 현악기 출신이기 때문에 나의 통계는 상당부분 그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 씬의 현업에서 만난 귀한 순수예술계 출신 동료들은 공통적으로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공연예술 장르'에 있었다. 국악일 때도 있고 무용일 때도 있었다. 지휘는 타인의 손을 빌려 자신의 '비언어적 공연예술'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CEO에 견주고 싶다. 피아니스트는 독주 아니냐고? 88개의 건반으로 혼자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분께는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서시라고, 그렇게 많은 청중을 전율하게 만들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련다. 하지만 실내악의 재미를 맛보았거나 탁월한 반주자 역량을 가진 분들은 이미 내면에 탁월한 조직의 구성원이자 팀의 동료가 되어줄 자질이 충분하다고 본다.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다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음악인들의 마음속에 조차 예체능 하는 애들은 그것밖에 몰라,라는 오래된 사회적 통념이 깔려있다. 감히 말하건대, 음악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이미 우리말과 영어 외에 제2외국어를 하나 더 하는 것과 동급이다 - 각종 용어와 약어가 난무하며, 이를 사용하는 방법이라고는 감각과 무한연습 뿐이라 난해하기 그지없는. 물론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음악인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직무의 사람들을 꽤 많이 발견했다. 하지만 그 경험을 아동청소년기부터 쌓아온 사람은 흔치 않다. 음악인들이 지식은 일부 부족할지언정 태도와 맷집을 갖추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장점만 더하겠다. 음악인들이 다른 영역으로 건너가면, DNA에 이미 일잘러의 필수태도가 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야 자체가 너무 새롭다 보니 '편견 없이 관찰하는 눈'까지 장착하게 된다. 그런 말이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커지면서 점차 조직을 키워가게 될 때 마지막 순간까지 팀세팅이 안되는 부서는 '대표가 원래 실무하던' 부서라고 한다. 음악인들에게는 그렇게 쏠릴 일이 없다. 미술계 인재들이 콘텐츠나 디자인으로 이동하며 생길 수 있는 아주 작은 여지조차도 없다. 그냥 초짜다. 분야 초짜인데 태도와 흡수력과 구현력은 이미 다 갖추고 있는, 아주 특수한 형태의 초짜들인 것이다.
쓰다보니 새삼 내 눈에는 음악인의 강점이 6가지가 아닌, 60가지 쯤 되어보인다.
모쪼록 레너드 번스타인의 브람스 교향곡 4번에 취해서 휘갈기는 이 글이, 새로운 구성원을 찾고있는 어느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 분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제 갓 대학을 졸업은 했는데 세상이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는 음악인 청년들에게 가 닿아도 좋겠다. 음악인들의 태도와 가치를 알아보는 조직에서 신선한 자양분을 받아먹고 무럭무럭 성장한 분들이 어느 날 동료로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세월이 훌쩍 지난 어느날 코엑스에서 하는 데모데이에 구경갔는데 피칭하는 창업가들 중 절반이 예술가들이라거나, 공유오피스 빌딩 하나에 출퇴근 카드 찍는 사람들 30%가 왕년에 음대를 졸업했다고 하는, 그런 통계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 오늘의 BGM
무언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더 넓고 변화무쌍하고 더 눈에 보이는 성취를 손에 넣고 싶어서 근육이 찌릿찌릿해지는 음악인들이 있다면, 일단 아래의 강의를 천천히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천천히, 라고 분명히 강조했음) 내가 이 바닥에 넘어와서 수강한 강의, 모임, 돈을 쓴 온오프라인 자료가 수백만원이 넘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딱 하나를 고른다면 도그냥 님의 (여러 강의 중에서) 이 최신 강의이다. 통찰력 있는 중간계의 입장에서 '처음 진입할 때 알고 있으면 좋을' 대부분의 것을 굉장히 집약적으로 말해주신다.
https://taling.me/vod/view/34121
직접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라면 같다면디캠프의 데모데이에 청중으로 참여하는 것을 권한다. 디캠프는 금융권의 자본을 바탕으로 국내 스타트업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 중 하나이고, 극초기 스타트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비즈니스를 설명하고 투자의 기회를 유치하도록 매월 디데이를 열고 있다. 나의 커리어가 스타트업에 진입하는 과정과 초반에 자리잡는 과정에는 수많은 행사가 함께했었는데 (공연기획자라 그런가) 그 중 가장 가성비 좋았다. 두 번만 참석해보면 대충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올 것이다. 모르겠는 용어는 잘 적어 두었다가 네이버나 구글 검색하면 된다.
https://dcamp.kr/investment/dday
그리고 이제 정말로 궁금증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면,
연락주세요.
우리 같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봐요.
물론 정확히 말하면 그 길은 당신의 길이지만,
저는 기꺼이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어디 가야 음악인 '구직자'를 발굴할 수 있을지, 마음이 동하는 채용 담당자분도 환영!
(이쯤에서 나오는 자주묻는질문. 성원님 창업하세요? 아.니.요. 그냥 제가 연결하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설마 이 글을 읽고, 음악인 자녀 진로상담을 저에게 요청하는 분은 없으시기를...
대부분 제가 드리는 답은 똑같아요. 유년기(만9세 이전)에 꼭 시작하실 필요 없고요, 대신 좋은 소리 다양한 소리를 충분히 많이 들려주세요. 실황 연주 많이 보여주세요. 직접 기술을 배우는 것은 신체의 2차성징 이전에만 시작하면 됩니다. 기술보다는 귀와 눈을 훈련하고 음악의 맥락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음... 사고력) 시창청음과 음악문법 꼭 배우게 해주세요. (한국 교육의 타임라인 기준으로) 조금 늦게 기악의 기술, 성악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더라도 (1) 당사자가 뜻이 있고 (2) 귀와 눈이 어느정도 자리잡혀 있으면 직업으로서의 음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입시 얘기는 저한테 묻지 마세요.
아, 글이 길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가까운 분들은 이미 여러번 들었다. 오래 품은 생각을 결정적으로 기록에 남길 수 있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준 2021년 교향악축제와, 최근 저를 만나 영감을 마구 퍼부어주신 동료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네, 저는 20년 바이올린 연주하고 전직해서 15년째 운영기획자로 살고 있는 마음씨 입니다 :) 머지 않아 악기 연주한 시간만큼 저의 시간을 다른 커리어로 채울 수 있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