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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Nov 06. 2022

야, 나두 할 수 있더라 '기획'

오프라인 공연기획자가 알게 된 IT 서비스기획 세상

음악인과 스타트업 글을 쓸 때부터 다음 얘기는 꼭 이걸 써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며 끝을 내기까지 오래도 걸렸네요. (2021년 여름 작가의 서랍에 처음 저장, 절반쯤 쓴 글의 마지막 저장 기록은 2022년 1월) 저에게 여전히 좀 고통스러운 영역이면서도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기획



(앞선 글)

https://brunch.co.kr/@littlechamber/161



먼저의 글보다도 더, 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썼습니다. 그 바탕에는 '이렇게 늦게 배운 나도 이만큼은 하고 있는데,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여러분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얼른 나의 좋은 동료가 되어 주세요'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주관적인 언어의 정리이며, IT 업계가 아닌 분들을 위해 쓰여진 글입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오프라인, 특히 예술계 일을 하시던 분들은 얼마든지 온라인 비즈니스에서도 자신의 기획자적 역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말하는 기획과 온라인에서 말하는 기획은 전혀 다르니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년의 바이올린 인생만큼이나 내게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었다. '예술경영인'이라는 거대한 단어로 말하기는 좀 부끄러워서 늘 붙이는 이름, 공연기획자. 하지만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 혹은 '창작'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런 역할.  


'나'라는 사람책(표현 레퍼런스: 나코리 님 https://ask-us.co.kr/past/?idx=6)의 첫번째 챕터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살면서 주구장창 하나만 파고드는 내용이다. 반면에 두번째 공연기획자 챕터 안에는 훨씬 다양한 소제목들이 가득하다. 그 자잘한 것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꽤 고심해왔다. 악기를 그만두는 동시에 예술경영 전공을 선택해서 가방끈을 늘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경영인'이라 해도 될지 늘 의구심이 있었다.


내가 해온 일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기보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아티스트가 상상하는 어떤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예술가들이 원하는 전시나 연주 무대란 언제나 '무대 그 순간' 외에도 이전과 이후의 단계에 얽힌 온갖 일들이 풀세트로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실은 언제나 복합적인  '행사'로 구현된다. 누군가의 생각을 시간표로 옮기는 데서부터 오프라인의 기획은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그와 같은 업무를 흔히 '운영'이나 '대행'이라 불렀다. 그렇다고 공연대행자, 공연운영자라는 단어는 어색해서인지 거의 쓰이지 않는다. 행사 기획자라는 이름은 축제나 박람회를 주관하는 역할에 붙었고, 이벤트 기획자라는 이름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부터 런칭쇼 디렉터 같은 역할에 붙곤 한다. 나처럼 작은 회사의 '담당자'로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고 파티도 하고 축제도 하고 공공행정 업무도 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적절한 이름이 없어보였다.


언젠가 이력서를 쓰는데 여러 일들을 주어지는 대로 기꺼이 맡아온 내 자신이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나는 업무가 주어질 때 별로 물러나 본 적이 없다) 어쨌든 예술경영 대학원을 졸업한 나의 이력서 첫 줄은 펀드레이징 부서와 오케스트라 연맹 회원관리 부서의 인턴이었는데, 그 뒤로는 공공기관 신사업 담당자, 민간 오케스트라 담당자, 기업행사 대행 담당자, 해외경매 영업관리 담당자, 공간운영 담당자로 이어졌다. 임팩트가 컸던 국고보조금 사업의 담당자 시절도 빼놓을 수 없고 엔터테인먼트 IP콘텐츠와 VR 증강현실도 잠깐 맛본 '담당자'였다. 대체 나 같은 사람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20년동안 '저는 바이올리니스트예요' 라는 아주 단순한 단어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는데, 그 후 10년 동안의 커리어는 나 스스로에게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 고민은 스타트업으로 옮기고 나서 훨씬 더 심각해졌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운영 방식으로 생산자 혹은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만 알았지, 온라인 비즈니스의 세상이 오프라인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미처 몰랐으니까. 내가 아무리 온갖 외부 세미나를 들으러 쫓아다닌들 그건 그저 수박 겉핥기였다. 고백하건대, 근로계약서를 쓰고 첫 출근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마주할 일들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나의 시야는 제한적이었다.


IT 제품(product)을 가진 회사에 들어와 내가 넘어야 했던 여러 난관 중 특히 이 글에서 나누고 싶은 것은 바로 그토록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단어, '기획'과 기획자에 대한 이야기다. 딱히 적합한 설명을 접하지 못하고 스스로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던, 오프라인 운영기획과 온라인 서비스기획을 감히 정리해 보았다. 글을 마치고 나면 나 역시 조금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나중에 오는, 총명하고 반짝이는 많은 분들이 조금이나마 혼동을 줄이고 온라인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데 작은 힌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무엇인가 설계하고 이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기획은 그 맥락이 비슷하다. 다만 환경과 도구, 기술과 기술을 다루는 방식, 구축하면서 협업하는 사람들의 범위는 완전히 다르다. 경험으로 이를 터득하는 동안 나는 항상 예술 비즈니스 분야에 있는 분들을 떠올렸다. 의외로 스타트업에 적합한 업력을 가진 그 분들이 직업의 경계를 넘어와 능력을 마구 발휘해 주기를, 그래서 더 멋지고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주관적인 언어의 정리이며, IT 업계가 아닌 분들을 위해 쓰여진 글입니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길 때, 오프라인 기획자라면 이걸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무대 위를 날아오를 때 뒤에는 폭포가 흘러내리면 좋겠다!"는 외침 앞에서 기획자는 배우의 몸에 묶을 도구와 폭포 효과를 만들어낼 장치를 고민한다. 날아오를 배우가 누구인지에 따라 어떤 기구를 써야할지, 혹시 모를 사고 대비는 어떻게 할지, 연출에 맞는 기술자는 어디서 구하고, 투입되는 인원은 얼마가 필요하며, 필요한 장비는 어떻게 채울지, 예산에 맞는지도 챙긴다.


온라인 기획자라면 A가 동작해서 B라는 결과가 나오기 위한 모든 경우의 수를 보려고 노력한다. "이번 프로모션 소식은 무조건 앱을 열자마자 나와야 한다고!" 라는 외침 앞에서 기획자는 '앱을 열자마자'의 다양한 조건에 대한 고민을 한다. 로그인 상태인가 비로그인 상태인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프로모션 화면이 떠야 하나 로그인을 먼저 시켜야 하나, 프로모션 화면은 전면을 가리는 모달인가 상단 배너인가, 배너를 누르면 일단 프로모션 상세 화면을 보여줄 것인가, 만약 이 과정에서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차근 차근 따진다.


이렇게 고민 끝에 탄생하는 오프라인의 기획은 어떤 물리적 행사의 형태가 되며, 코로나 시국을 맞아 온라인으로 전환된 행사들마저 최대한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감각을 자극하는 행사 현장이 만들어지면, 그리고 그 행사가 사건사고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게다가 만약에 어떤 흥행 요소가 있어 입소문을 타면 '기획 잘했다' 라는 소리를 듣는다.


온라인 기획자의 결과물은 새로운 기능이나 성능의 개선이다. 실제 사용하는 제품에 변화가 생긴다. 항상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넣어 로그인하던 화면에 갑자기 카카오톡으로 1초만에 가입하기 버튼이 생기고 비밀번호 누를 필요도 없이 앱 전환만으로 로그인이 된다거나, 이전에는 내 계좌의 정보만 보여줬다면 이제는 가족 보험을 한 눈에 취합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런 제품의 변화는 모두 개발자가 하는 줄 알았다. 개발자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도 구분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 구조와 흐름을 모두 설계하는 사람을 '기획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더불어 이런 기획자들 대부분 그렇게 탄생시킨 기능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만드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러면 운영은? 운영 담당자들이 따로 있다. 기획과 운영을 단 한 번도 분리시켜 생각해본 적 없는 작은 오프라인 기획자는 이 지점에서 가장 세계관의 변화를 많이 겪었다. 


오프라인에는 명백하게 크리에이터와 청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기획자는 어떻게 하면 크리에이터의 의도를 청중으로 하여금 잘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 '운영'에 심혈을 기울인다. 물론 간혹 기획자가 크리에이터와 동일한 인물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 기획과 운영이 완전히 한 몸처럼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한 꺼풀 더 열어보면 결국 크리에이터 옆에서 누군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곤 한다.


온라인에서 프로덕트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일종의 크리에이터에 가깝다. 그리고 기술의 특성상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다. 차이를 몰랐을 때에는 '디자이너'가 다 같은 디자이너인 줄 알았지. 개발자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디자이너는 예쁜 이미지를 넣고 소비자는 이를 소비하는 줄만 알았다. 그 틈새에 얼마나 촘촘하게 다른 기술과 역할이 필요하고 팀에서 역학 관계도, 명칭도 다른지는 '기획해야 한다면서요?' 하는 질문을 30번 이상 해본 즈음부터 어렴풋하게 감을 잡았다.


오프라인에서는 대개 좋은 고객경험이란 신선한 충격을 의미하곤 한다. 어떻게든지 익숙함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아무 자극 없이 매끄럽기만 하면 (이조차도 물론 몹시 어렵다) 감흥을 일으키기 어렵다. 받아 마땅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을 줄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놀라움이 더해져야 한다. 공기같은 편안함에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 한 스푼이 반드시 들어가야만 고객으로부터 '아, 정말 좋다'라는 반응이 얻어낼 수 있다. 이 한 스푼을 위해서 기획자들은 머리를 쥐어 뜯는다.


반대로 온라인에서는 그 경험이 물 흐르듯 매끄러울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생각하게 만들 겨를 없이 별로 고민할 일 없이 목적지까지 순식간에 도착하면 더더욱 찬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 아주 가끔 유머러스한 터치가 있을 경우 최고다. 그러면서도 온라인의 마지막 킥은 '오프라인과 같은' 경험이기도 하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인걸까? 간단과 편리의 극단을 추구하면서도 아날로그의 향수를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개발자나 디자이너와 얘기하면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항상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고 나는 늘 준비 부족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빈틈이 나로 하여금 배움에의 열정을 끓게 만들었다. 나도 상대의 말을 못 알아듣고 그도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설득이 먹히고 협상에 성공할 때는 뛸듯이 기뻤다.


오프라인 기획을 처음 시작할 때 문서를 열고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한숨이 나왔지만 어느새 수십 장 성과보고서도 혼자 뚝딱 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온라인 비즈니스에서도 시야가 차츰 확장되면서 플랫폼 전체의 플로우를 읽고 큰 그림을 그리는 일들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나는 늘 떠올렸다. 공연기획자 시절 현장 구석구석에서 마주쳤던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자신을 불태워 현장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많은 동료들을, 그리고 그들의 박봉을, 그들이 일하는 업무시간과 환경을, 그들의 탁월한 멀티플레이 능력을, 의전은 기본으로 하면서 (내부 권력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겐 이 세상에 왜 이리 갑들이 많은지) 어려움을 감내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a.k.a. 사고 없이 일을 매듭짓는) 그들의 노고를 자주 떠올렸다.


코딩을 배워도 엣지 케이스를 다 감지하고 코딩할 것만 같은 그들, 광고를 띄워도 문구와 단어 하나까지 검수하고 오탈자는 없는지 챙기면서 업로드할 것 같은 그들, 목소리 높이는 고객을 만났을 때 격한 표현 아래에 궁극의 욕구를 곧바로 읽어낼 것만 같은 그들, 사건을 회피하기보다 일단 문제를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다급한 =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는 그들이 많이 보고싶었다.


공연기획자, 예술경영인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내가 음악인들을 생각하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요새 뭐 해?" "어, 000 아티스트 담당해." "이거 끝나면 뭐 있어?" "0000 성과보고회." 이렇게만 말해도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밖에 없는 동료들에게 가지는 애틋한 마음. 그 능력을 예술 시장 저변 확대에 쏟는 것도 좋지만 넓고 다양한 필드로 들어와 새로운 기술들과 만나게 되면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까, 그들의 삶에 어떤 만족이 더해지고 그들의 팀에는 어떤 긍정 효과가 일어날까, 늘 상상하곤 한다.


온라인 네이티브인 조직일수록 오프라인 DNA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IT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느낀다. 다만 아무래도 양쪽의 표면적인 차이점이 워낙 크고,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나 공통점은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조직에서도 개인으로도 서로에게 (불필요한) 심리적 허들이 존재한다. 


다양성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온라인을 익히기 위해 애쓰는 만큼 팀에서도 나를 다양한 영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서로가 의심하는 대신 신뢰하고 같이 노력한다면 창조적인 영역일수록 단일민족보다 다국적 팀이 훨씬 더 좋은 시너지를 내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아닐지. 그래서 예술 곁에 있던 분들이 테크 비즈니스에 더더욱 잘 어울릴 것으로 기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항상 똑같다. 오다가다 방황하는 예술경영인을 만나면 덥썩 손을 잡고 물어본다. "스타트업은 어때요? 우리 팀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요?"




사실 이 글의 말미에는 채널톡 입사 초기에 쓴 채용 이야기가 들어 있었는데 삭제했어요. 너무 매운 맛이라서. 대신 업계의 대표적인 채용 플랫폼 원티드의 링크를 걸어둡니다. https://www.wanted.co.kr/jobsfeed 원티드 외에 로켓펀치도 있고, 링크드인에서도 요즘 구인구직이 활발해요.


시도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절대로 알 수 없는데다 '한 번 해보는' 것, 이 바닥에서는 흠도 아니라구요. 다른 경험을 얻고 싶다면, 비록 실패하더라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고 싶다면 꼭 선을 넘어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아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강의 있음!

수많은 콘텐츠와 도서가 존재하는데, 웬만한 거 제가 다 접해봤고 그 중 하나만 딱 고른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얘기만 다 씹어먹고 시작해도 이미 출발선이 다른 거예요 :)


https://taling.me/vod/view/34121

(개인적으로 강사/저자님 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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