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편협한 내 자신을 매일 반성하며
작은 강연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기록해 둡니다. 생각의 초안의 초안이예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다양성]이 특히 인생의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경험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다양성'은 저에게 너그러움, 인내, 수용, 그리고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 함께 있다는 의식 같은 것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저의 경험들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다양성과 연결되는지 여러분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다양성이 중요한 삶의 키워드가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저의 커리어 전환기 덕분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 엄마가 되면서 겪은 많은 일들 때문입니다.
1. 저는 크게 두 번의 커리어 변화를 겪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20년을 보낸 후 무대 위 대신 백스테이지를 선택하여 아티스트 매니저가 된 것이 첫번째 큰 사건이었고, 공공기관의 예술교육 기획자에서 테크 스타트업의 고객경험 매니저로 건너온 것이 두번째 전환입니다.
2.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낯선 분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꾸게 되면 우리는 몇 가지 비슷한 단계를 통과하게 되는 것 같아요.
3. 가장 먼저 과거의 유익한 것을 어떻게든 현재의 새로운 상황에 도입하려는 마음에 시동이 걸립니다. 그 다음에는 나의 유용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리소스를 필요 이상으로 쏟아붓게 되죠. 어쩌면 꼭 분야를 바꾸지 않더라도 새로운 팀, 새로운 조직에 합류할 때 누구나 비슷하게 보이는 반응일지도 모르겠어요.
4. 안타깝게도 모든 노력과 의도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특히 예술계에 오래 머무르던 제가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로 넘어왔을 때 이런 노력의 대부분은 실패했습니다. 프로젝트를 망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지름길 대신 멀리 돌아가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어요.
5. 사실 가장 첫 단추로 끼웠어야 하는 일은 과거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흐름과 지식을 최대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어요. '배워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끓던 어느 날 문득 나의 시도와 주장이 실은 팀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6. 이 때부터는 자신이 정말 쓸모없게 느껴지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어요. 극단적이죠? 시야가 좁아지면 사람은 정말 쓸데없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가 봅니다. 다행히 이 때 저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초보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예요.
7. 한동안 다능인(multi-potential-lite)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능인을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낸 TED 의 연사 에밀리 와프닉은 저서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 일정 시간 몰두하고 유효 기간이 다하면 다음 새로운 일을 찾게 되는 다능인은 계속해서 초보자 신세를 반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요.
8. 저는 이것이 비단 다능인 뿐 아니라 과거와 다른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정값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커리어가 쌓일수록 우리는 초보자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두려워 합니다. 하지만 사실 신입의 포지션은 '기회'죠. 기꺼이 배우고 실수하고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때입니다.
9. 제 자신을 초보자로 인정한 순간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해지던 것을 기억합니다. 과한 부담을 덜어내고 타인의 기대나 시선에도 초연해지고요. 스스로가 가벼워지니 담을 수 있는 용량이 늘어나면서 실수나 변경에 대한 두려움도 훨씬 작아지게 되었습니다.
10. 한동안은 초보자의 기쁨을 누리며 지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안정을 찾으며 저는 '초보자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 준 아주 중요한 요소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 동료들의 관용입니다.
11. 동료들은 제가 완전히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온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떨어진 관점의 이야기도 하나의 다른 의견으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제가 새로운 영역에 맹렬하게 적응하는 동안 수많은 실수와 재도전의 기회를 기꺼이 허용했습니다. 쉬운 일이었을까요? 결코 아니었을 거예요.
12. 저에게 편견의 시선을 씌우지 않고, 저를 '틀린 사람'이나 '잘못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고, 조금 다른 사람으로 수용하며 너그럽게 기회를 열어준 동료들에게 지금까지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특히 처음으로 저와 팀을 이뤘던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도전의 어느 지점에선가 이미 부러져 버렸겠죠.
13. 문득 이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저는 저의 책임을 한 가지 더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수용되었던' 것처럼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나와는)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함께 어우러져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팀의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임팩트를 만들기 위함이예요.
14. 획일적인 시야 안에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드라마틱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창조적인 불꽃이 튀려면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다양성을 곁에 두면 수많은 가능성을 만날 수 있게 되죠.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해요.
15. 어느새 5년차에 접어든 테크 스타트업 커리어를 돌아볼 때 저는 저 한 명이 더해짐으로서 조직에 가져다 준 다양성의 가치, 그리고 다른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게 적응해준 동료들이 보여준 포용의 가치를 항상 기억하게 됩니다.
16. 제가 새로운 분야에서 이만큼까지 성장하는데 동료들의 신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어요. 그 마음을 기억하며, 저 역시 다른 동료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열심히 살피려고 노력합니다. diversity and inclusion 은 그저 착해지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더 큰 시너지를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1. 누구나 얘기합니다. "맞아,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야."
아이가 삶에 등장하면 행복하고 힘들고 아름답고 슬픈 일들이 무한 반복되는, 나 홀로 살아온 인생과는 전혀 다른 챕터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과정에서 삶에 꼭 갖춰야할 새로운 태도를 하나 더 배웠습니다.
2.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유아차를 끌고 나가서야 비로소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신체가 불편한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나의 평상시와 다른지 깨달았습니다.
3. 분명 어디선가 읽거나 듣고 알고 있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머리로 지식으로 아는 것과 내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 실제로 경험을 하는 것과는 (이해도에 있어서)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이 말조차도 누군가 저에게 해준 적이 있었죠, 아주 나중에서야 실감하게 된 것이지만.
4. 통제 안되는 아이와 함께 바깥 세상을 돌아다니며 '점잖은 성인 어른'이 아닌 존재가 얼마나 일상의 공간을 향유하기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아이를 너그럽게 봐달라고 감정에 호소해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물건과 동선과 쓰임새와 표시는 어찌나 획일화된 인간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5. 제가 말하려는 것은 성평등이나 아동인권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이슈들은 또 다른 하루를 소비해도 모자랄 거예요. 오늘 제가 나누려는 것은 조금 다른 지점입니다.
6. 좀 더 자기반성에 가까워요. 숨쉬듯 익숙하게 살아온 사회에서 아이와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이질감을 겪게 되었고 정말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바로 '같은 입장이 되기 전까지는 타인을 이해한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7.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순간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불편들에 대해 듣게 될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자 거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럴 수도 있구나,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를 진심으로 고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8. 그동안 꽤 교만한 마음으로 '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교적 공감 능력이 높고 다른 사람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여 맥락 파악이 빠르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무언가 상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만큼 금방 감정을 이입하고 동기화할 수 있다고 믿었죠.
9. 하지만 아이와 동행하는 모든 순간마다 반성했습니다. 얼마나 낯설고 충격적인 순간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것도 보지 못했었구나, 이것도 미처 몰랐구나, 이걸 처음 알게 되는구나. 내가 고작 이 정도인데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아는 것과 겪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구나.
10. 한동안 뉴스의 정치 영역을 소란하게 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the Solidarity Against Disability Discrimination)의 출근 시간 지하철 탑승 집회를 기억하시나요? 이 집회는 지금도 간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SNS에 사내 메신저에 지역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와요. 왜 하필 번잡한 출근 시간에 온갖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며 시위를 하느냐고.
11. 그 분들이 온 몸을 던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속도로 살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자명하게 보여주는데, 협력하고 개선하려는 논의 대신에 불편을 내 눈 앞에서 지워버릴 궁리만 하다니. 절망이 오는 한편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관심해질 수 있는지.
12. 저는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태운 유아차를 밀며 어려움 없이 경사로를 지나는 것도, 통로 끝 엘리베이터로 지하와 지상을 오가는 것도, 좀 더 작고 약한 존재들이 안전하게 사회적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도 모두 그 분들의 싸움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변화를 만들려면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도요.
13. 보이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게 되고, 고려하지 않으면 제외하게 되죠. 불편함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밝은 탁자 위에 꺼내어 치열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다양한 모습들이 더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하고 나와 다른 모습들이 도처에 존재해야 시야가 열리면서 조율과 타협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4. 그리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우리는 쉽게 단정짓거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들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가장 피해야 하는 태도는 내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하는 것(나는 본 적 없는데? 요즘 세상에 누가 아직도 그래) 그리고 타인의 감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그럴 일이야? 너무 예민한 것 같아)이라고 생각합니다.
15. 타인의 어려움과 두려움 자체를 수긍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해결을 위한 대화로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없애는 방식으로의 해결이 아니라 함께 있는 방식으로의 해결을 찾으려 애쓰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의 가치는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에 있습니다.
16. 이 때 좁게 파고들면 양자택일 흑백논리로 휩쓸리기 쉬워집니다. 제3의 방법, 동쪽과 서쪽 사이의 무수히 많은 중간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요, 포기하지 않고 서로 포용 가능한 적정선을 찾으려면 인내와 끊임없는 시도가 이어져야 합니다. 때론,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애써야 하나 현타가 오기도 하겠죠.
1. 여기에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의 또 다른 중대한 착각에 대한 것입니다.
2.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지극히 상식이었던 싱글 청년이 어린 아이를 둔 엄마가 되면서, 저는 제가 언제나 '평범한 다수' (majority) 의 일부임을 기본값으로 하고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조건은 정말 쉽게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저와 비슷하실 거예요.
3. 사람이 사회의 안전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타적인 마음이 아니라 극도의 이기심 때문이어야 한다고 해요.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한 당사자가 언제든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아직 내가 그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때 잘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4. 다양성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항상 수용하자고 전파하는 것은 majority 인 내가 minority 인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minority 가 된 나를 누군가 기꺼이 수용해 주기를 바라는 불안한 마음에서 더 간절하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5. 예를 들어, 저는 제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염려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보수주의자인 저희 부모님이 들으시면 충격을 받을 만한 의견들을 거침없이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내 아이가 언제 사회적 약자가 될지 알 수 없고, 내 아이와 공동체를 이룰 친구들이 안전하게 성장하기 바라고 (그래야 내 아이의 좋은 동료들이 되어줄 수 있겠죠) 아이가 성인이 되어 만날 사회가 너그럽고 자유롭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6. 이런 이기적인 (그러나 이타적으로 보이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더 넓은 다양성을 추구하고 사회 곳곳의 안전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기꺼이 마음과 정성을 쏟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단순히 창조적인 임팩트를 위해 다양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낯선 것이 주는 미지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다양성의 가치가 우리 각자의 생존의 질을 높이는 관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수천만가지 다름이 존재하는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거리낄 것 없이 편안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요? 서로 조율하여 선을 지키면서, 서로가 누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챙겨주는 것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에게 무조건 내 것을 내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내게 너그러움을 내어주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말이예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관점에 대해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를 어떻게 소화하는지는 여러분 각자의 몫이겠지요.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그만큼 다양한 방식을 기대해 봅니다. 이 자리를 떠나 다시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장면들을 마주칠 때 문득 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저에게는 충분히 이 시간이 의미있게 남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