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친구들과 종종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워야, 보내야, 새로운 것이 온다는 진리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과도기에 항상 놓여있고 늘 선택을 고민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포기, 단념이라는 단어를 쓰고 누군가는 내려놓음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보낸다' 그리고 '비운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2022년, 그 동안의 그 어떤 보냄, 비움보다 더 많은 빈 자리를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메일로 캐나다 정착기를 전해드리겠다 호언장담 했는데,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2023년이 시작한 지금까지 내내 생각한 것은 빈 자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틈틈이 기록했던 빈 자리에 대한 조각들로 캐나다에서 생사의 안부를 전합니다.
랜딩 30일 이후 한 달을 돌아보며 보내는 메일은 삽질썰로 가득할테니 기대해 주세요 :)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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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남편을 보내고 남은 것은 빨래 속에 섞여있던 그의 양말 몇 켤레와, 며칠 방치되어 있던 일회용 마스크, 그리고 빈 침대였다. 나는 시트와 이불을 한번씩 힘껏 털어내고 페브리즈 오리지널을 뿌려 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더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남편이 쓰던 방의 스탠드를 그대로 켜두고, 이불을 잘 개어두고, 비워두고 있다. 3월이 되어 이 집을 비우기 전 혹시라도 남편이 돌아오면 마치 잠깐 출장 다녀온 것처럼 다시 편히 몸을 뉘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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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부재는 당장에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어쩌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그저 손 꼭 마주잡고 건강하시라 말씀드리는 사이였다. 가끔 나에게 미안하다 하신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건 그냥 막내 며느리에게 가지시는 괜한 마음 탓이라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었고 장례도 함께 치르지 못했다.
멍한 마음의 정체는 슬픔 외에도 여러 기억이 올라온 탓이다. 벌써 십년이 훌쩍 넘은 엄마의 장례식도 오래간만에 떠오르고, 급히 귀국한 남편을 보내고 났더니 아이와 둘만 덩그러니 남은 것도 조금 막막하니까. 그러다 아이에게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은 할아버지의 존재를 설명할 때는 몇 마디 말을 뱉지도 못하고 목이 메였다. 몇 번이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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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하기 하루 전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들렀다. 눈 감고도 찾아갈 것 같은 길이라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처럼 나를 따라 출근한 아이가 온갖 사물에 '그동안 고마웠다'며 인사를 건넸다. 지에스타워야, 그동안 고마웠어. 엘리베이터야, 그동안 고마웠어. 아, 채널톡 참 좋았는데.
나는 아이의 마음에 혹시나 허전함이나 우울감이 밀려올까봐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었다. 아쉬움도 있지만 그만큼 또 새로운 재미가 있을거야.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이는 순수하게 정든 것들과의 이별을 슬퍼했고 다가올 것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말했다. 헤어짐이 아무렇지 않은 듯, 미래가 겁나지 않은 듯 애를 쓴 것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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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인사가 많았다. 한번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다 만나지 못했고, 연락하려 했지만 틈이 나지 않기도 시간이 맞지 않기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노션에 '보고싶은 사람' 리스트가 있었지만 굳이 무리하지 않았고 초조하게 시간을 쥐어짜지 않았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스스로 계속 다잡았던 것 같다.
오래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 정말 다시 안 돌아올 것처럼 일상을 정리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으면서. 고운 인연들은 다시 만나지게 되더라, 놓치는 것들은 어쩔 수 없고. 얼만큼 사랑했나 하는 것과도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흘러가버리기도 돌아오기도 하는 것들이 있음을 이래저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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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메신저를 보고 있으면 모든 일들이 무탈하게 돌아간다. 세상은 원래 나 없이도 빛나고 아름답고 격렬하게 돌아가는 법이고, 사람이 가진 적응력이란 놀랄만한 것이어서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빈틈이 채워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새로 랜딩한 곳을 '살만하게' 세팅하느라 하루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는 어떤 공백이 있다. 갑자기 웃음 터지던 순간들, 고개만 돌리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지난 일년 반 동안 누구보다 가까웠던 동료들과 엄청, 아주 엄청 멀리 있음을 문득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SNS 도 실시간 라이브도 해소해주지 못하는, 한 공간에서 등으로 마주보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함께 메시지를 읽는 감각을 아마 다시 얻기 어렵겠지.
어쩌면 아주 어쩌면 2022년이 내게는 그런 불타는 재미와 열정의 마지막 해는 아니었을까. 캐나다로 이주를 결정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떠나 보내기로 했고 그 중 가장 크고 무거운 한 가지가 바로 우리 팀이었다. 비우고 나면 다른 것이 오는 법인데 과연 무엇이 그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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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피스 마지막 출근 날, 아이 병원에 들를 시간이 다 되었다. 평소 같으면 열렬하게 고객 상담을 하고 있을 시간에 나는 노트북 포맷을 완료하여 오피스팀에 넘기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그런 나를 보는 동료들의 표정에서 가지각색의 마음이 전해졌다. 계획은 12월 내내 집에서 짐 정리를 하는 동안 한명 한명 떠올리며 손편지를 쓰고 마지막 출근일에 쥐어주려는 것이었는데 (야심차게 목록에 열 명도 넘게 있었다지) 현실은 막판 열흘 정말 잠을 잘 시간조차 모자랐다. 내 인생 손꼽히는 롤모델이 된 매니저와는 일년 반동안 단둘이 밥 한끼 먹지 못했다는 사실도 한참 책들을 버리던 새벽 2시에 간신히 떠올랐었다.
우리는 여전히 동료로 일하겠지만 그게 '오늘'과 같은 동료일수는 없겠구나 싶어 온몸에 왈칵 수분기가 올라왔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내가 비운 자리에는 어떤 것이 채워질까? 갑자기 개별화 강점이 동작해서 한분씩 인터뷰하고 싶어졌다만... 에바야 에바. 설문조사 돌릴 생각일랑 접어라. 멀리 있어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면 되지. 고마운 사람들, 내게 축복이었던 시간은 죄다 당신들이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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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비우고 또 비우며 생각했다. 무슨 욕심을 이렇게 부리고 살았나. 2년에 한번 꼬박 꼬박 이사를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니던 짐들을, 대륙간 이주를 앞두자 그제서야 털어내기 시작했다.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더 잘 버렸을텐데 하는 변명이 합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우선순위를 나눠가며 짐을 버렸다. 1차 버리고, 2차 버리고, 3차까지 살아남은 것들은 다시 리뷰해서 또 버리고. 그러느라 막판까지 온 집구석을 다 훑어내질 못했다.
마감에 맞추는 것과 퀄리티를 높이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 선택해도 된다고 누가 그래. 둘 다 중요하다. 둘 다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짜만 맞추고 내실 없는 결과물이 나오거나 제때 완성하지 못하고 마감을 넘겨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사람마다 타입이 다를텐데, 나의 경우 업무 효율이 떨어질 때 99% 확률로 후자가 된다. 이번에 이주 준비할 때는 전형적인 그런 상황이었다. 아니 나 최근 혹독하게 훈련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잘 안됐지. 후회는 캐나다에 도착해서 짐들을 뒤져보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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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고 아이가 등교를 시작했다. 눈 돌릴 틈도 없던 나의 24시간에 빈 자리가 생겼다.
10년 전, 아니 5년 전의 나만 되어도 빈 자리를 대비해 to do list 를 준비하거나 뭘 이미 잔뜩 등록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2022년 12월의, 2023년 1월의 나는 빈 자리를 어떻게 메꿀지 미리 정해버리지 않았다. 어느새 불확실함이 주는 약간의 긴장과 충격에 적응했거나 혹은 중독됐는지도 몰라! (차마 자포자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
불안하지만 불안하지 않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웬만한 일은 어떻게든 통과해낼 것이라는 근자감이고, 두번째는 계획해봤자 어차피 그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치이다. 무언가 오겠지, 그리고 나는 그런대로 해낼 수 있겠지. 빈 자리는 꼭 절망이나 좌절이 아니라 희망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걸 그동안 많이 겪었다. 그래서 가시성 0%에 수렴하는 2023년이지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