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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다 입사 282일차.

자란다에서 일했던 기록

by 마음씨
자란다에서 이것 저것을 담당하고 있는 마음씨의 글입니다.


KakaoTalk_20210207_001315816.jpg 2019 코엑스 서울국제유아교육전 자란다 부스의 한쪽 벽면 모습 (c) 마음씨, 윤성원


어제 자란다의 투자유치 소식이 주변에 전해졌다. 서로 다른 커뮤니티 모임이 둘이나 있었는데, 양쪽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다. 내가 무언가 손에 잡히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관련한 일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같이 고민도 하고 같이 응원도 하면서 기다려왔다. 기쁘고 기대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도 같이 밀려드는 것이,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자란다인이 다 되었나보다 싶었다. 오프라인으로 온라인으로 쏟아지는 격려를 팀 멤버들에게 전하면서 잠시, 자란다와의 인연을 돌이켜봤다.


손 벌릴 곳 없는 독박육아와, 분담되지 않는 집안의 여러 일들과,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직장 생활들이 뒤엉켜 하루하루 말라가던 시절 우연히 알게 되었던 자란다. 그 이전에도 늘 육아의 손을 덜기 위한, 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검색과 아웃소싱 전쟁을 몇 년이나 해왔었다. 그러던 중에 스타트업들의 돌봄 시장 진출 소식을 접했을 때 뭔가 ‘시대가 달라진다’는 느낌보다 ‘이건 또 무슨 돈 벌려는 장난이야!’ 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 때는 누구한테나 화가 많이 났다)


그래도 아쉬운 건 나였기에 여러가지 방법을 찾던 중 자란다에도 놀이 선생님을 신청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하는 불안감 쯤이야 넘어선지 오래였지만, 새로운 무엇을 시도할 때는 언제나 스트레스가 있는 법이다. 그 때 내가 마음이 움직였던 포인트는 온라인과 메시지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믿기지 않겠지만 그 때만 해도 자동화된 서비스라는 것이 체감상 많지 않았다) 실제로 아이가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나와, 아이를 챙겨주는 방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때의 고마운 첫 인상이 오래 남아 지금까지 나를 자란다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가 진화하다 보면 높낮이 변화도 생기고 좌우로 흔들릴 수도 있지만, 자란다가 아이를 생각하는 진심은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키가 크면서 성장통도 뒤따르다 보니 가끔 자란다의 가장 큰 장점이 다 전해지지 못해 마음이 아쉬울 때도 많다. 마치 뛰기 시작하고 말이 많아지는 세 살이 되면 올라타고 넘어지고 하느라 아이 몸에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거절도 자기 주장도 세지면서 부모 마음에도 상처가 나는 것처럼, 자란다의 세 살도 왠지 상처 투성이인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상처들이 회복되면서 아이의 몸과 마음도 단단해지고 부모도 성숙하는 거지. 자란다의 모습은 아이의 성장과 똑 닮았다. 자란다 아이들이 자란다 선생님처럼 멋진 청년이 될 때까지, 자란다 서비스도 쑥쑥 잘 컸으면 좋겠다. (일을 많이 하고싶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아, 내적 갈등이로다)


https://platum.kr/archives/122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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