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물어본 20가지 질문에 답하기 - 1
20년 해온 바이올린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날부터, 그만둔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받는 질문이예요. 재미있는 건 사람마다 질문하는 톤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어떤 분들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어떤 분들은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어떤 분들은 마치 모든 걸 다 짐작한다는 표정으로.
제가 악기를 그만둔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그만둔 직후에 생각하던 2가지 이유와 지금 와서 돌아보는 2가지 이유가 조금 달라졌어요. 어느 쪽이 더 맞다 아니다 할 수는 없고,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하는 것은 아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그 시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바뀐 것 뿐입니다.
아주 양가적인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원없이 해봤기도 하면서,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어떤 한계를 일찍 깨달았던 것이기도 해요. 대한민국 최고의 클래스에서 인정받는 학생으로 성장하고 한 해에 몇 번씩 비행기를 타고 해외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저는 꽤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더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운 것은, 그 때는 '올라가는' 것만이 저의 가야할 길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멀리서 바라보면 상하좌우가 없는 둥근 예술인데, 견고한 높낮이의 프레임 안에 갇힌 듯한 순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탁월함은 모두가 가질 수 없더라도 얼마나 다양한 층위의 예술가들이 세상에 필요한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음악가의 길을 벗어난 것은 과거의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제게 예술 안에서의 다양성을 일깨워 주었다면 저는 조금 더 오래 예술의 범주에 머물렀거나 예술에 뿌리를 둔 다른 활동으로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인생은 한 번 뿐이라 경우의 수를 다 눌러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해요.
제게 음악가들은 동료이고 친한 선후배인 것과 동시에 '챙겨주어야 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연주자 중 한 명이었지만...! 함께 여행할 일이 유독 많았던 20대 시절을 회상해보면 머릿속의 60% 쯤은 제 연주와 연습, 하지만 30% 쯤은 복잡한 일정표가 늘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10%는 딴 생각이랄까)
본의 아니게 주어진 역할에 억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그렇지만 누구에게 대신 맡기는 것은 더 불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재미있어서 죄책감이 들던 일이었고요. 언젠가는 연주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리라 꿈꾸었습니다. 해외 축제를 다니면서도 늘 운영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악기를 그만두면 무얼 하겠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너무 빨리 답변이 떠올라 스스로도 당황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되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순간'으로 이 때를 언급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지만, 한동안은 아예 예술과 무관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살짝 있기도 했었음을 고백합니다.
다른 분들이 저의 '중단'에 대해 수많은 이유를 상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쳐서 못하게 되었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하며. 연주자의 길을 매진하지 않기로 한 이상 모든 것을 한번 리셋할 필요도 없지 않았지만, 뭔가를 그만두기 위해서보다는 뭔가를 새로 해보기 위해 전진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합니다.
제가 연주자였던 순간을 기억하고 지금도 아깝다 말씀해 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예술과 몹시 가까운 삶을 살고 있으며, 과거보다 현재가 아주 많이 더 행복하다고, 음악하던 시간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고 말씀드립니다. 왜인지 다들 잘 믿지 않으시는 것 같지만 말이죠!
* 다음 질문 - 저는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어요. 다른 걸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