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그 때의 이야기
저녁식사 후 피곤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무심코 SNS 피드의 스크롤을 내리다가 이 포스팅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파이콘의 ‘현장 아이돌봄’은 지금의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해 준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의 나는 아직 예술의 언저리에서 한참 침체되어 있던 내 삶을 간신히 일으키며 조금씩 다시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하던 때였다. 존경하는 지인들과 '유스엠 YouthM'을 만들어본 것도, 우연히 발견한 카오스재단 강연들 덕에 난데없이 인생이 말도 못하게 신선해진 것도, 별천지 같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쩌다 만난 것도 모두 2017년의 일이었다.
그 와중에 스치듯 파이콘 행사 소식을 ‘읽었고’ 파이썬이 뭔지도 모를 때였지만 주말 현장에는 ‘아이돌봄’이 있다는 몇 줄의 안내가 내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대주의적 마인드여서... 해외에서 들어온 행사라 가능한가보다, 라고 생각해버렸던 기억이 있음)
그 충격은 한참 자아의 날갯짓이 퍼덕이던 내 가슴에 아주아주 또렷하게 남아있다가 두 가지 아주 큰 임팩트를 낳았다(?)
첫번째로는 -
무슨 행사만 가려고 치면 주관기관에 연락해서 ‘아이 데려가고 싶은데 돌봄 있냐’ 물어보는 나를 만들었다. 특히 여성이나 아동 관련 공공기관 행사가 나의 주 타겟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가슴 속에 온갖 분노가 불타고 있던 시절이라 여성이나 아동 관련 각종 발표, 세미나, 지원사업이 어린 아이를 둔 엄마가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많이 났다.
어떻게 그러한 고려조차 없이 여성 000 아동 000 하는 행사를 개최하시냐,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냐, 나와 통화하는 담당자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전화로 메일로 어지간히 민원을 넣었었다. 나름대로는 소심한 1인 운동이었다....... (지금도 쓰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짐)
그리고 두번째로는 -
그렇게 찾아간 행사 중 하나가 당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의미있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던 구글캠퍼스의 [대담한 여성들, 담대한 이야기]라는 2회짜리 행사였다. (여기서도 인생 인연들을 만나는 바람에 타이틀 절대 못 까먹음...)
첫날은 아이를 자란다 선생님에게 맡기고 헐레벌떡 달려갔으나 결국 좀 지각을 했고 살금 살금 들어가 맨 뒷줄에 앉았는데, 나와 먼 무대 사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모두 너무나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운... 방금 졸업이나 퇴근했을 2-30대 여성들인 거다.
그 땐 정말 눈물이 났다. 늦지 않고 싶어 애가 타던 심정과 그 무렵의 내 상황들과 눈앞의 장면이 다 겹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렇게 갑자기 울면서(?) 강연을 듣고, 당일 행사 후기를 모바일 설문으로 적어내면서 행사 타이틀에 있는 '담대하고 대담한 여성들'에 나처럼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포함되지 않는 거냐고 썼다. 그리고 당장 다음날 (단골이던) 자란다에 연락해서 대표님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대표님 이메일로 내가 속상했던 순간들을 설명하고 자란다에서 먼저 이런 행사들에 현장 돌봄을 제안해주실 것을 한 명의 소비자로 촉구(!)하면서 파이콘의 현장 아이돌봄을 레퍼런스로 내밀었다. (벌써 몇 년 전이지만 그 때 주고받은 메일들은 아직도 내 메일 수신함에 곱게 보관되어 있음)
그래서? 2회차 행사에는 구글캠퍼스 현장에 자란다가 출동했다!
그 때 처음으로 자란다 대표님과 팀을 만났고 인연이 이어지며 결국 그로부터 일년 정도 후 나는 자란다 팀에 최초의 부모 팀원으로 합류했다.
2017년 당시 아이는 (한국나이) 6살이었고 여기저기 들쑤시기 시작한 에미 덕분에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동안 어린 아이가 단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을 것 같은 공공기관이나 세미나 행사장을 많이도 끌려다녔다. 12살이 된 지금은 여기 캐나다에서 스타트업 데모데이에 따라와 능숙하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가끔 발표도 들으면서 커서 사업하겠다는(안돼...) 허세 가득한 어린이가 되었다.
이 모든 파장의 시작점에 스치듯 ’읽은‘ 2017년 파이콘의 ’아이돌봄‘이 있는데 그 뒷얘기를 이제서야 만나게 되다니, 게다가 그게 박조은 님의 사연(?)이기도 했다니,
혼자 폭풍 감동 쓰나미로 주절거린 결론없는 글, 끝.
(누워 있던 나를 벌떡 일어나게 만든 포스팅은 이것)
https://yozm.wishket.com/magazine/detail/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