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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Jun 17. 2024

기대치 조율의 중요성

스키장 앞 카페에서

2024년 1월의 메모에서 발췌하여 완성한 글입니다. 지금은 초여름인데 글의 계절은 겨울이네요.


채널톡에 와서 가장 강력하게 주입된(배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기대치와 가시성. 오늘 아이를 스키 수업에 들여보내고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3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들려오던 부모님들의 대화를 들으며 기대치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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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리가 어떤 일에 실망하는 건 바라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해서이다. 실망의 여파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과 이야기가 되고, 부정적인 파장은 타인의 감정과 공동체의 분위기에도 반드시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일까?


과거의 나였다면 노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타인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 등등을 답으로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널톡 생활 3년 잘 단련된 나는 이제 이런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초반에 기대치 조율이 잘 되지 못했네요."


기대치 조율이란, 상대방과 내가 기대하는 과정과 결과가 같은지 맞춰보는 것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 단계가 생각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익숙한 사람일수록, 익숙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의례히 '그러려니' 하는 비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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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동안 어깨 너머로 듣게 된 부모님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스키 수업 운영 불만족이었다. 서비스 정신으로 총 무장된 한국의 사교육과 캐나다의 학교 밖 교육은 애초에 출발점도 지향점도 다르다. 그 현격한 차이를 알고 오시는 분들보다는 모르고 오시는 분들이 더 많은 듯 했다.


캐나다의 삶에, 특히 아이들이 겪을 일들에 대해 막연한 바람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바람'만 크고 '정보'가 없는 장면을 보게 되면 아쉽다. 일상이든 업무이든 실패를 줄이는 정도는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이고 가장 정확한 정보는 대개 당사자에게서 나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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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을 줄이려면 반드시 양쪽이 동일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끈질기고 집요한 질문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 때 유추와 짐작은 기대치 조율의 최대의 적이 된다. 일이 잘 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나다. 그럼 정보를 구하는 것도,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도, 끊임없이 결을 맞추는 것도 나여야 한다.


짐작이 얼마나 폐해를 일으키는지 채널톡에 들어와 무수히 겪었다. 모두가 눈치와 짐작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또 달랐겠지만 채널톡은 철저하게 원팀이기 원하고 여기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걷어내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 사이에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사람은 금방 티가 난다.


여기에 정말 핵심이 되는 기술은 바로, 제대로 질문하기. 과정과 목적지를 같이 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질문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열심히 묻고 들었다 생각했는데 뒤돌아 정리하다 보면 빈틈이 숭숭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확한 답은 하나, 바로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많은 동료들이 처음 질문은 용기 있게 잘 한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겠는 지점을 발견했을 때 재확인하기 무척 어려워 한다. 나도 그랬다. 혼자 메꿔보려다 부질없는 에너지 낭비와 실망스러운 결과로 되돌아오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깨지고 넘어지며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함도 알게 되었다.


기대치 조율은 서로의 가시성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채널톡의 공동 대표 두 분은 지금도 매일 통화를 한다. 급하거나 중요한 문제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관점을 확인한다. 가시성이 높아지면 불안하지 않다. 예상 가능한 범위의 시행착오라면 좌절 대신 배움을 얻고 기꺼이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


나는 상대방이 내게 "000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라고 묻거나 내가 타인의 업무를 생각하며 "000 하는 목적이 뭐지?" 의구심이 들 때 기대치 조율 혹은 가시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감지한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공유 못하고' 놓친 건 없는지 수시로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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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남과 무언가 함께 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불안과 실망을 동반한다. 이를 안전 지대로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기대치를 조율하고 가시성을 높이는 노력. 과거에는 이걸 몰라 원망도 상처도 참 많았다. 지금은... 그냥 안심하고 어떻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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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수업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국 돈도 아깝고 퀄리티도 마음에 들지 않다던 부모님들은 환불 정책도 못마땅했고 불만스럽지만 수업을 완주해야 하는 상황도 몹시 언짢아했다. 부디 저 생각들을 아이들 앞에서 쏟아내지는 말기를 바랬지만... 끝은 목격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어른의 관점과 아이를 대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 언젠가 나중에 한번 써보는 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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