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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Oct 23. 2024

고객은 어떤 순간에 AI 를 원할까

기계를 원하지 않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배경 설명을 위해 개인적인 상황 먼저 TMI로 늘어놓아 보자면, 나는 몇 주 전부터 한국에 남아있는 나의 어떤 금융 관련 서비스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에 들고 와 있는 모든 디바이스에서 공인 인증서를 전부 날려먹은 탓도 있지만, 한국 비자(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저는)가 만료된 탓에 휴대폰 문자 인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신분증 인증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부터 신용카드사 한 곳에서 줄기차게 전화가 온다. 소액의 카드 대금이 미납되었기 때문인데, 지금 계좌 이체도 못하고 금액 조회도 못하고 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다. (2주 후 한국 가면 이거부터 해결을) 그러다 남편이 옆에서 ‘그러지 말고 일단 받아서 상황을 설명해라 그럼 그들도 편하고 너도 편하지 않냐’ 하는 말에 며칠 전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여기 00카드입니다, 카드대금 일부가 미납되어 연락드렸습니다‘ 하는 상냥하고도 감정 싹 빠진  목소리로 얘기할 상담원님의 피곤함을 짐작하며 ‘네 여보세요’ 했는데, 약 1초 정도 정적이 흐르는 거다.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자동 IVR 이구나.


기계음은 내 이름을 부르며 000 고객님이 맞는지 물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네 맞아요’ 라고 음성 입력(=대답)을 했더니 곧이어 기계음이 말하는 거다. 반갑습니다, 개인정보 확인을 위해 생년월일과 000 를 입력을...


여기까지 듣고는 그냥 끊어버렸다.


나는 최신 AI 기술과 고객 상담의 접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탁월한 구현 기술이 얼마나 코앞에 다가와 있는지를 24시간 주7일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를 어떤 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을 만큼 (으악 하면서 전화기 던질 뻔)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프로세스를 완료하지도, 상담원과 통화하지도 않았으니 전화는 또 오겠지만 저 시스템에 나는 내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오래된 트라우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한번쯤 들어본 온갖 금융 스캠. 똑같이 생긴 웹사이트에 뭘 입력하라더라, 똑같은 문자메시지에 깜박 속았다, 누르라는 대로 눌렀는데 그게 홀라당 다 뺏긴 거였다... 내 가족 중에도, 친구 중에도 있다, 당한 사람들.


고객 터치 포인트를 저런 식으로 설계한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설계 담당자 혹은 리더가 왜 저렇게 설계했고 어떤 효율을 높이고자 했는지 이해는 하지만, 나는 도저히- 도저히 저 경험을 다른 고객들에게도 익숙해지게 하라고 추천할 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해당 부서 직원이었으면 누가 디자인을 지시했다 한들 끝까지 토를 달았을 것 같았다. 정말 고객들이 여기서 순순히 생년월일이나 비밀번호를 입력할 것 같으세요? 휴먼 터치 없이 바로 넘어가는 순간 질겁을 할 거예요.


주관적인 견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객들은 겁이 많다. 평범한 고객들이라면 화를 내는 것도 대부분이 불안해서다. 컴플레인 하는 분들 마음 속에는 주로 ‘제발 나의 이 걱정을 해소해줘!’ 하는 외침이 어딘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불만 그 자체가 아니라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막막한 요소를 제거해주면 대부분 이해와 안심을 통과하면서 만족스런 결론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무조건 죄송하니까 할인해준다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이거랑 일맥상통.


아무튼 저 카드사의 자동화 설계는 잘못됐다. 뭔가 문제를 안고 있을 게 뻔한 카드 대금 미납자에게 인간을 앞세워 총알받이 만들고 싶지 않았을 관리자의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계의 개입을 적절하게 설계하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 게다가 미납자들이라면 돈을 받아내야 하는 엄청난 목표가 있는데, VIP보다 더 세심하게 디자인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쓰다보니 ai 기술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아닌데, 이제 곧 customer service 의 수많은 영역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AI 로 뒤덮일 날도 멀지 않았기에 주저리 주저리 써놓는 (공개된) 혼잣말이다. 프로덕트 개발하는 분들 뿐 아니라 이를 고객 여정에 적용하는 분들 혹은 그들의 보스들! 제발 이 경험을 ‘당할’ 엔드유저 입장을 생각하면서 기능도 만들고 붙이고 키우고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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