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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Nov 18. 2024

초등 아이와 단둘이, 1년 6개월의 캐나다 밴쿠버 -2

2022년 12월 20일, 폭설이 쏟아진 밴쿠버 공항에 내린 기억이 벌써 2년 전이다. 그 해 여름 다소 충동적으로 캐나다 이사를 결정한 후 4개월만에 나와 아이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국했고, 배우자는 짧은 주기로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다가 지난 여름 드디어 완전히 밴쿠버로 입국했다. 우리가 떨어져 지낸 기간은 꽉 채워 1년 반. 그 18개월 동안 많이도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


각 개인이나 가족마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정해진 답은 없다. 4개월 정도 세 식구가 완전히 붙어 지냈는데, 모처럼 배우자만 한국에 가 있게 되자 (그래봤자 2주) 처음에 아이와 둘이 정착하던 시기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기억이 아쉽게 더 희미해지기 전에 회고 겸 기록을 남긴다.




18개월을 돌아보면 정말 치열했다.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돈은 더 많이 들었다. 타협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혹은 지켜낼 때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갈팡질팡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다행인 건, 하루 하루 새롭게 해결할 일들이 밀려들어 고민 자체를 오래 할 겨를도 없었다는 거다. 그냥 직감 믿고 가는 수 밖에.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문 밖을 나서면 펼쳐지는 침엽수림의 산과 맑은 공기, 20분만 운전해서 나가면 당장 만날 수 있는 (내 사랑) 호수들과 숲길이 좋았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희석되었고, 체감상 스트레스 지수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낮았다. 오래 쌓았다가 터뜨려야 할 일이 없었다.


모르는 게 생기면 주로 검색한 건 구글 - 구글맵 - 레딧 - 네이버 헬로밴 카페 순으로 찾아봤다. 일단 현지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 후 한인 커뮤니티에서 확인하는 식이었다. 때로는 집주인, 리얼터, 은행 직원, 카페 직원, 마트 직원, 레스토랑 직원을 붙잡고도 물어봤다. 그래도 '모르는 줄도 몰라서' 항상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아래 기록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것들이다. 계획한 대로 모든 게 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기대에 어긋나기 일쑤여서 기억에 남았고 배움이 되었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를 때마다 엄마가 늘 내게 해주시던 말씀, '삶의 모든 경험은 유익하다' 를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1. 예산을 잡을 때 아이 사교육 비용을 충분히 책정하기

내가 초기 정착 비용의 예산을 잡을 때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아이의 사교육 비용. "사교육 싫어서 캐나다 간 거 아니예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그래도 한국만큼 무언가 아이의 시간을 때우거나 지식적 훈련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쓰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지난 18개월 간 총 지출의 가장 큰 비중은 아이의 교육비였다. 이유는 매번 달랐다. 한국에서 하던 활동을 유지하려고, 여기 계절에 맞는 운동을 새로 배우려고, 학업에 맞는 언어를 빠르게 익히기 위해서, 저렴한 지역 센터의 방과후 등록을 놓쳐서, 아이가 너무 간절하게 원해서, 등등... 


처음에는 한국 강습료와 비교하고 계산기도 두드렸지만 조금 지나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시기마다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확연하게 구분되고, 특히 한국과 달리 몸 쓰는 활동이 종류별로 많은 이 곳에서, 그저 집에서 책 읽고 게임하거나 놀이터에서 해질 때까지 놀다 들어오라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매 분기 등록하는 활동이 2-3개, 방학마다 등록하는 주 단위 캠프가 4-5개는 되었다. 그러니 3-4개월마다 목돈 지출이 이어졌다. 특수 지출이 아니라 고정비로 책정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준비하지 못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약간 후회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예산의 우선순위 배치를 조금 다르게 했어야 했다)


2.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인건비 아까워하지 않기

인건비라 함은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출하는 모든 비용이라 생각하면 된다. 대신 식재료 장을 봐주고 대신 집안 청소를 하고 대신 아이를 위해 운전을 해주는 서비스 뿐만 아니라, 몇 초의 고민과 방해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동화 기기와 간편 제품들도 모두 포함된다. 


시간을 정말 정말 타이트하게 써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1시간 단위 스케줄이 아니라 30분 15분 10분 단위로 쪼개어 캘린더의 퍼즐을 조정해 봤다면 - 덩어리 시간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와중에 딱 1-2분의 방해가 얼마나 멀리까지 집중의 도미노를 무너뜨리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매일 아이의 아침 식사와 점심 도시락을 동시에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서 학교로 배달 오는 유료 도시락을 가능한 일수만큼 100% 사용했다. 캐리어 가득 실어온 햇반 작은밥이 동나면 일부러 대량의 밥을 지어 반공기씩 소분해 얼렸다. 에어 프라이어와 전자렌지에서 10분 내로 완성되는 간편식과 간식들을 냉동실에 쟁였다.


세제도 캡슐형, 유연제도 페이퍼형, 냄비 하나 그릇 하나로도 푸짐하게 먹는 온갖 레시피(덮밥, 파스타, 국수류 짱), 자잘한 일상 용품들은 어딘가 잘 수납하는 대신 컨베이어 벨트를 모니터링하듯 적절한 동선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사용 후 반드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원칙으로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살면서 가장 간절하게 바랬던 자동화 기능은 싱크대에서 식기 세척기로 그릇을 옮겨주는 로봇과,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빨래를 옮겨주는 기계였다. 우선순위의 갈등에서 늘 다른 일이 집안 살림을 이겼고, 덜 어지럽히고 오래 버티기의 일등 공신은 한국에서 매번 박스채 사오는 알콜 티슈였다.


3. 보험이냐 저축이냐, 나에게 맞는 의료 지출 비용 준비하기

캐나다 의료 보험과 병원 진료가 한국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익히 들었고 나름 꽤 공부를 하고 왔다. 그런데도 아이를 데려왔다 보니 치과 치료 쪽을 최소화하기 어려웠다. 일하던 회사는 캐나다에 법인이 따로 없어 기업(그룹) 보험을 제공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국가 보험에 더해서 민간 보험까지 제법 많은 옵션을 추가했다.


그 후로 18개월간 이런 저런 의료 서비스를 겪었다. 매칭에 오래 걸린다던 패밀리 닥터도 운좋게 금방 찾았고 소아 전문의와도 연결되었다. 아이의 시력이 저하된다는 걸 발견해 안경도 새로 맞추고 치아 정기 검진도 꼬박 꼬박 했다. 나도 미뤄뒀던 강도 높은 잇몸 치료와 추적 검사 성격의 피검사도 받았다. 


어떤 날은 깜짝 놀랄 만큼 아무 비용도 내지 않았고 (결제 0원) 어떤 날은 놀라 자빠질 만큼 비싼 금액이 나왔다. 보험 서류도 정책 설명도 그렇게 읽고 또 읽었건만, 커버리지가 정확히 언제부터 유효하고 얼마까지 지원되는지 내가 혼동한 탓이었다. 덕분에 갑작스런 지출이 몇 번이나 발생했다.


비용이 그 정도 되는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치료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굳이 대안을 찾아 헤매거나 민원을 넣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기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한국에서의 어떤 서포트에도 기대지 않고 현지에서 여러 진료와 의약품 공급이 가능한 흐름을 설계하는 데 집중했다.  


그나마 민간 보험을 높은 등급에서 시작한 잘한 일이었다. 이번에 남편 추가하며 재설계를 했는데, 다운그레이드 때에는 최초에 넣지 않은 옵션을 추가할 수 없더라. 그러고 보니 나중에 신청하려고 미뤄둔 의약품 관련 정부 지원 정책은 내가 등록을 이미 했는지 안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올해 다 가기 전에 꼭 체크해야지.




딱 세 가지만 골랐는데, 셋 다 돈 문제라니. 이 뒤로도 '그렇게 쓰지 말걸' 또는 '이거 대신 저거 할걸' 시리즈는 밤새 줄을 세울 수도 있겠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고군분투할 주제일 거다.


지나간 일을 후회한다기 보다 다가올 일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거라 배웠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시행착오란 시행착오는 겪을 만큼 다 겪었다 싶은데 - 알 수 없는 일이다. 내년이면 아이가 세컨더리로 진학을 할 것이고, 어쩌면 우리도 동네를 옮길 수도 있다. 나와 배우자의 취업이나 학업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걱정해서 뭐하겠나, 닥치면 순간 순간 잘 맞닥뜨리고 잘 넘어설 방법을 궁리해야겠지.



다음 편은 아이의 학교 생활과 여러 활동에 대한 회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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