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싶고, 잘 하고 싶다
나는 스스로를 설명할 때 종종
- 먼 거리를 연결하는 사람
- 빈틈을 메꾸는 사람
으로 표현하곤 한다.
갤럽에서 제공하는 강점진단을 서로 다른 시기에 몇 번을 반복해도 늘 최상위 5개에 포함되는 내 강점 하나는 Restorative - 복구이다. 복구는 말하자면 Maximazer - 최상화와 반대 지점에 있는데, 마이너스 상태의 것을 끌어올려 0 또는 1로 만드는 데 큰 강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설명을 처음 듣던 순간을 기억한다. 내가 정말 아끼는 나의 성향이면서도 많은 순간 많은 이들과 나 자신에게조차 상처를 주기도 했던 바로 그 성향을 처음으로 정의하고, 이름 붙이고,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럿이 참석한 워크샵이 아니었다면 아마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을지도.
많은 육아서에서 아기가 처음 자아를 성립해갈 때 부모가 중요하게 도와줄 지점을 설명한다. 다양한 감정을 생전 처음 겪는 아기가 오로지 울거나 악쓰는 것으로만 표현할 수 있을 때, 그 감정 혹은 상황을 정의하고 이름을 붙여주어 아이로 하여금 각 감정을 분별하고 이해하며 이를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 관점은 동일해서, 감정 뿐 아니라 성향 혹은 기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고 세상 만사에 핑계를 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성향 혹은 기질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도 내 주변을 위해서도.
(나라는 사람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신 루다 코치님)
https://blog.naver.com/heejin79
복구 강점이 동작할 때 여기에 완벽하게 결합하는 나의 다른 강점은 Individualization - 개별화다.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는 비교적 사람과 상황의 맥락을 각각의 스토리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호기심이 많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맥락을 고유화하는 회로가 어딘가 장착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러한 성향/기질이 모여 멀고 먼 길을 돌아 나를 운영 영역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나처럼 운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곳곳에 숨어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맞아, 그들은 늘 ‘숨어’ 있고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 이제 강점의 이름을 찾았으니 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 되는 걸까? 그건 또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주 오래 전에는 내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틈새를 발견하는 게 스스로 기특했고, 다음에는 누구보다 먼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나의 효용 가치를 '문제를 평화롭게 무마하는' 것으로 인정 욕구를 많이 채웠던 기억이다. (이 단계에서 자기 자신이 부서질 수 있어 몹시 주의해야 함)
하지만 조직에서 점점 더 넓은 뷰와 권한을 갖게 될수록 비교의 마음이 자꾸 커지며 불안해졌다. 나는 언제쯤 최상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도 전략이나 분석 같은 강점을 더 상위 강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나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마이너스를 원점으로 복구하거나 개선하는 데 몰입한다. 즉, 어떤 상황을 펼쳐놓으면 -10, -5, -3, 이런 수치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7, 8, 9 는 금방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안타깝게도(?) 성장하는 조직의 핵심은 매출이고 매출의 견인은 7-8-9 의 요소를 10 혹은 그 이상으로 증폭시키는 데 있다. 그런데 나는 늘 완전히 반대쪽에 시선이 가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지적받거나 깨달을 때면 커지는 억울함과 함께 얼마나 좌절감이 밀려오던지.
대신 내가 정말 잘 하는 게 있었다. 상대의 문제로 완전히 들어가 함께 타고 흐르며 막힌 지점을 찾아내는 것. 이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상황을 다듬어간다. 학습된 프레임워크나 프로세스를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구조화에 항상 발목 잡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장 겁없이 뛰어드는 영역이다. 내 강점이 자연스럽게 빛나는 지점.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큰 금액이 오가는 협상을 테이블에 올리며 정면 돌파 세일즈를 해내는 건 내게 엄청난 노력으로도 닿기 힘든 무엇이었다. 대신 그만한 신뢰를 얻어오는 건 감히 자신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최상화를 가진 누군가와 짝을 이루어 일하는 걸 좋아했다. 배우고, 영감을 얻고, 내가 완벽하게 뒷단을 메꿀 수 있기에.
강점 진단의 궁극적인 취지는 취약점에 매달리는 대신 강점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데 있다고 한다. 인간인지라, 부러움이 때로는 흘러 넘쳐버릴 때도 있지만, 이제 인정하면서 사는 것은, 다른 강점을 가진 사람은 다르게 빛난다는 것이다.
다른 재료와 다른 기술을 가졌음에도 똑같이 빛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 다양성이라는 키워드가 내 삶에 등장한 이후로는 목표와 목적이 많이 달라졌다. 모두가 똑같이 빛나려고 애를 쓰는 세상이 아니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완전히 빛나는 사회를 위해 애쓰게 되었다. 이 관점 자체가 '먼 거리를 연결하고 빈틈을 메꾸는' 내 강점과 찰떡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