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다에서 일했던 기록
그러니까, 저는 한밤중에 갑자기 보금 님의 이 글을 읽고 삘을 받은 것입니다.
https://brunch.co.kr/@bogeum/61
제가 자란다 입사한 사연도 조금 특별한데, 일단은 입사 후 Day1 부터 Day500 까지의 기억을 추려봤습니다. 해본 일, 하고있는 일들 5가지. 막상 돌아보니 제 고유한 성향에 잘 맞게 almost-all-rounder로 맷집을 키워가는 중이라 무척, 매우, 뿌듯하기 짝이 없습니다. (회고의 계기가 되어주신 보금 님 감사해요)
선물과 할인이 있었던 첫 겨울방학 패키지, 재능있는 선생님들을 대대적으로 알렸던 (덕분에 빛의 속도로 마감) 원데이클래스, 소비자에게 답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겼던 자라는방학, 그리고 새로운 시행착오와 도전을 동시에 던져준 두번째 겨울방학 프로모션. 지금은 자란다 역사상 최초로 정식 콘텐츠 파트너와 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단독 개발하고 런칭하여 파일럿 운영 중에 있습니다. 새로운 파트너들과는 늘 '자란다스러우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개발만 애자일한 것이 아니죠! 상품기획이야말로 항상 가능성을 타진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수없이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습니다. 문어발처럼 모든 팀에 촉수 하나씩 꽂고 일해야만 하는 것도 안비밀... (다행이라면, 저는 멀티를 즐기는 자기학대적 성향이 있음)
사실 조직에서 제가 이런 역할을 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는데, 뭐랄까 상황이 도와주어 그렇게 되었어요.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를 다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전 구성원이 같은 마음으로 우리 서비스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물론 우리가 작은 팀이었으니 저 같은 아마추어도 다들 너그럽게 받아주셨죠! 어쨌든 자란다 창립 이래 첫 시무식을 열어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워크숍을 통해 가치와 우선순위를 정제해보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퍼실리테이터 꿈나무가 된 것도 이때쯤이 아니었나! (아직 그 꿈, 버리지 않았다)
한동안 자란다의 메시지 톤을 맞춰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현미경 들여다보듯 작업했던 기간도 있었네요. 많은 분들을 피곤하게 해드렸던 것 뒤늦게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아쉬운 건 연초에 뿌린 씨앗을 체계적으로 잘 가꾸어 수확하기엔 제 사지가 찢어지는 한 해였어서... 올 2020년에 다시 도전해볼 겁니다. 팀 자란다,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행사 운영 인력 1명도 없는 팀에서 대학 채용 박람회 비슷한 D-Match 부스 두 번, 코엑스 컨퍼런스룸을 장악하고 몇십만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 두 해 연달아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션의 '전화번호'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스타트업 대축제 IF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네요. 선생님 선발 교육도 일상적인 행사 운영인데다, 자란다의 본업인 일대일 선생님 방문 외에도 기업들의 행사 현장 아이 돌봄이라던지 여러 컨퍼런스에 부모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아동 프로그램을 종종 운영합니다. 이런 날은 현장에 선생님들만 보낼 수 없죠. 기획하고 현장 관리하는 매니저가 붙어야 하는데, 그게 누구? 우리 회사에서 현장 제일 많이 뛰는 사람, 바로 나야 나.
신기한 건, 저는 태생이 어쩔 수 없는 born to be 오프라인 인(人)이라 그런지, 현장에서 불태운 날은 밤에 잠도 안 오고 오히려 머리가 팽팽 움직이긴 합니다. 행사 얘기에는 정말 할 말이 많지만, 너무 많아서 뒷얘기는 빈 칸으로 남겨둘래요. 가끔 옆에서 보시는 분들 체력 걱정하시는데, 괜찮아요, 너무나 익숙한 일들이거든요.
총 세 팀의 팀빌딩을 함께했습니다. 가장 먼저, 입사 첫날부터 지금까지 소중함 1순위인 마케팅팀이 머리만 있다가 팔다리가 완성되는 진화를 경험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운명적인 사랑처럼 유일무이한 퀄리티의 디자이너가 합류했고(그와 처음 만난 날 제가 뭣도 모르고 말을 걸었던 순간이 생생하네요), 찰떡 궁합의 모터손 제작자가 올라타면서(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어떤 표정으로 그를 설명했는지도 생생하고요) 삼박자 완성. 이제 뼈 자라고 근육 키워야 하는데 적극 지원할 예정입니다. (리크루터 아닌데 항상 누군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사람도 바로 나야 나... 지인들 사이에서는 좀 알려져 있죠)
저의 커리어플랜에 전혀 놓여있지 않았지만 막상 뛰어들어보니 더도 않고 덜도 않고 딱 나의 역할이었구나, 날마다 자각했던 서비스 운영. 팀도 개인도 아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한 무리였던 이 그룹이 이제 어엿한 두 개의 독립 팀으로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잘 순환되도록 기초 다지기를 하고 있어요. 아직 손대지 못한 구석들도 말끔하게 안정될 때까지 애써보려 합니다. 옛날에는 누군가 저에게 '팀빌딩을 해보셨나요?' 물어보면 정의내리기 어려운 경험들만 흩어져 있었는데, 자란다에서의 경험은 이를 잘 집결시켜 성과로 만들어내도록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레주메에 기분좋은 한 줄 추가 완료요.
완성 버전 말고, 자란다에 등장하는 모든 0.1버전의 역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언급했던 '온갖 프로모션'이 잘 포장한 상품을 매대 위에 보기좋게 올려놓는 일이라면 운영 효율화는 제작 공장을 잘 돌리기 위한 모든 노력인 듯 해요. 플랫폼 비즈니스의 순환, 그로스 휠, 이런 것들이 불과 2년 전만 해도 어디 먼 은하계에서 들려오는 외계인의 말씀 같았다면, 이제는 제가 마치 눈앞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주로 제 상대는 안드로메다 외계어 듣듯이 저를 바라보고 있기는 하죠)
업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종종 생각했습니다. 논리를 세우고 시나리오를 전개하고 경우의 수와 문제 지점을 파악하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코딩과 데이터를 직접 만지고 싶은 욕구가 이렇게 끓어오르다니, 역시 나는 예체능이 아니라 이공계 근처라도 갔어야 하는가봉가. (대외비가 섞여있어 횡설수설)
이 모든 일들 위에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절대로 혼자 할 수는 없다' 라는 절실한 깨달음. 그래서 저는 저의 동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원하고, 제가 더 나은 동료들과 일하기 원하고, 동료들에게 제가 더 나은 동료이고 싶어서 성장을 갈구합니다. 큰 일일수록 조급함을 내려놓는 방법은 동료를 믿는 길밖에 없더라고요. 자란다 입사 전 암흑기에 쌓았던 많은 것들을 자란다에 와서 하나 하나 목격하고 경험하고 실천하고 성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 같아요.
1000일 찍을 때, 제가 어떤 소리를 하게 될지, 그건 일단 두고 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내가 더 잘 할게요, 자란다. (실질적으로 500일을 살아낼 힘이 되어준 두 명의 별★이 있는데, 당사자들은 알수도 모를 수도... 몰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